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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받아도 지원 불허"…작가 블랙리스트 어떻게 작동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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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소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기자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신경림 시인, 박범신 작가 등이 한국문화번역원(이하 번역원) 해외교류사업에서 블랙리스트로 올라 지원 배제를 받았다는 자세한 정황이 드러났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30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지사에서 진행한 언론 브리핑에서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번역원은 지난해 9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중국 항주 한국문학 행사'에서 신경림 시인과 박범신 작가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 추천했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 변경 요청 및 참석 불가를 통보했다.

박범신 작가. (사진=자료사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입수한 지난해 9월 작동된 블랙리스트를 보면 '한국문학번역원 해외교류' 부분에서 '신경림'과 '박범신' 이름 뒤에 '엑스'(X) 표시가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애란 작가와 김연수 작가는 2015년 11월 1일부터 2일까지 미국 듀크대학에서 열렸던 북미 한국문학회의 초청 사업에서 배제됐다.

북미 한국문학회가 한국문학번역원 측에 김애란 작가와 김연수 작가의 초청을 요청했음에도 번역원 측은 두 사람의 작품 중 영어로 번역돼 출간된 작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해 다른 작가들을 추천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이유가 문체부의 배제 지시사항을 실행하기 위한 명분이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번역원이 지난 12일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당시 문체부는 번역원에 김연수 작가와 김애란 작가의 해외 파견에 대해 불허를 통보했다. 당시 이를 전달했던 문체부 출판인쇄산업과 담당과장은 정확한 불허 사유는 밝히지 않았으며 '상부 지시'라고만 이야기했다.

(자료=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제공)

 

번역원 측 담당자는 2015년 9월 2일 듀크대 측 담당자에게 해당 통보를 알리는 이메일을 보내면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이번 정부가 작가들에 대한 검열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는 내용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시영 시인과 김수복 시인 또한 배제되는 일을 겪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 2월 17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미국 하와이대 및 UC 버클리대 한국문학행사'에 초청받았지만 당시 번역원은 국제교류 예산 부족을 명분으로 지원을 배제했다. 결국 두 시인의 항공비용 등을 버클리대 측에서 부담해 사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 마찬가지로 문체부의 지시에 따른 배제였음이 확인됐다.

(자료=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제공)

 

번역원이 제출한 답변서에는 김연수, 김애란 작가와 동일하게 이시영 시인과 김수복 시인의 파견을 문체부에서 불허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당시 담당 과장과 주무관은 정확한 불허 사유를 밝히지 않고, 상부 지시라고만 통보했다.

번역원 측 담당자가 사업진행 과정에서 버클리대 측 담당자에게 보낸 메일에는 '정부에서 이시영, 김수복 시인의 파견을 지원하는 데 허가를 해주지 않아 더욱 곤란한 상황이다. 이번 정부가 저희가 지원하는 작가 지원 명단을 좀 까다롭게 보고 있다'는 자세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특히 이시영 작가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관리된 단체인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이런 약력이 이시영 작가의 배제 사유로 추정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국정감사의 많은 자료들이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에서도 적극적으로 블랙리스트가 작동했음을 밝혀냈다. 해외 교류 작가들의 전반적인 활동을 통제하고 검열했다는 것은 심각한 블랙리스트의 작동"이라며 "진상조사위는 해당 작가들의 구체적 배제 사유는 무엇인지, 이 외에도 블랙리스트가 작동된 사례가 있는지 지속적으로 조사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3일 진행된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적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입장을 전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측은 문체부가 설치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훈령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조사 권한이 없는 조직이라며 조사 권한을 갖는 건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자유한국당 측이 우려하는 것처럼 법 제도를 넘어서는 강압적 조사는 있지 않다. 조사는 제안과 협조를 통해 진행되고 있으며 문체부
훈령에 따라 블랙리스트 관련 활동에는 조사 권한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블랙리스트가 문체부를 넘어 굉장히 광범위하게 작동했기 때문에 만약 법적으로 해결해나갈 문제가 있다면 법률적 조치나 권고를 문체부에 제안하는 게 우리 역할이다. 검사 파견은 문서를 검토하거나 협조를 위해 한 것이고, 법률적 제재나 이런 건 전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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