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한 때는 같은 목소리를 내던 촛불시민들이 분화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책 방향에 따라 이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렸고, 전례 없는 참여를 보였던 보수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동력이 떨어졌다. 촛불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1주년을 맞아 기획된 촛불집회의 청와대 방향 행진이 논란 끝에 철회되는 과정은 촛불시민의 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 29일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기념하는 28일 광화문광장 1주년 대회는 행사를 하루 앞두고 공식행진을 취소했다.
◇ 좌적폐 vs 깨시민…보수세력은 일찌감치 떨어져 나가
오는 28일 촛불집회 개최 1주년 집회를 앞두고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촛불 1주년 선포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적폐는 국회에 남았는데 왜 청와대로 행진 하냐"는 날선 비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 출범 초기 민주노총 집회에 대한 반발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논란의 연장선상이다. 이른바 '깨시민(깨어있는 시민)'이 '좌적폐(좌파와 적폐의 합성어)'라며 공격하는 대상은 시민단체나 민노총 등 그간 진보 진영의 대표적 주체들이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부의 개개 정책에 따라서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가 다른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면서도 "다만 상대를 적대하고 증오하는 수준의 의견 표출은 다른 진영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독이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냈던 보수세력의 경우, 탄핵 이후 새 정부 출범을 거치며 급속하게 촛불시민에서 떨어져 나갔다.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으니 집회를 이어갈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 게시판 등에서는 집회를 주도했던 진영이 새 정부에 '촛불청구서'를 들이 밀고 있다며 비판하는 글들이 눈에 띈다.
◇ 탄핵은 분명 촛불집회 성과, 민주주의도 심화했을까는 고민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같은 촛불시민의 분화는 촛불집회 시작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순실 등 일탈적 개인이 문제인지, 아니면 이들이 '국가 약탈'을 할 수 있었던 정경유착이 근본 원인인지에 대한 해석이 다르면 풀어내는 방식 역시 판이할 수밖에 없다.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정치사회학)는 "넓은 전선이 가능했던 것은 성공 요인이었던 동시에 한계의 지점"라면서 "새 정부 들어서도 개인 단죄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 가고 있어, 촛불집회가 한국민주주의를 심화하는 힘으로 기능할 지는 아직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광장에 나올 수 있었던 노동과 환경, 여성 등 변방의 이슈는 탄핵과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현장의 열기를 다소 잃은 듯한 인상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공정위원회가 재벌개혁 같은 구조적 문제 대신 갑을 이슈 등에 집중하고 있는 사례를 짚으면서 "지금 진행되는 개혁은 시스템을 건드리지는 못하는 수준이라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주기적으로 광장 나올 필요 없이 '일상의 정치' 가능한 환경 필요
대통령 탄핵 같은 거대한 정치적 과업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촛불집회에 의의를 두면서도, 승리감에 도취돼 직접민주주의의 성공이라는 평가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촛불집회의 목적과 의미가 단순히 대통령 탄핵에 머물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심화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은 "촛불집회는 정치를 내 삶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 했다"면서 "이제는 시민들이 주기적으로 광장에 나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정치를 얘기하고 일상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