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MBC 파업콘서트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가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예상치 못한 깜짝손님이었다. 지난 2015년 복막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 파업 52일째에 열린 'MBC 파업콘서트'를 방문했다. 그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게 KBS-MBC 양대 공영방송 이사장 해임을 분명히 요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는 25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파업콘서트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를 개최했다. 밴드 혁오부터 전인권밴드까지 믿고 듣는 공연을 펼치는 가수들 출연이 예정돼 있어 준비단계에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날 파업콘서트에서 가장 큰 박수와 격려의 함성이 나왔던 순간은 암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가 무대에 올랐을 때였다. 허일후 아나운서와 공동 사회자로 나선 김민식 PD는 자신에게 언론자유의 소중함을 알려주신 선생님을 모시겠다고 말했고, 이내 이 기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기자는 광장을 채운 7천여 명(연인원 추산)의 참석자들을 바라보며 "민주시민 여러분,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정말 오랜만이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이 기자는 "민주시민이라는 말에 거부감 느끼셨나. 전혀 안 느끼셨죠? 민주시민이라는 말에는 민주주의라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명한 정치제도 중 가장 훌륭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국민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핵심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가운데)가 25일 오후 열린 MBC 파업콘서트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 무대에 올랐다. 왼쪽부터 김민식 PD, 이용마 해직기자, 허일후 아나운서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지난 9년 동안 MBC-KBS 공영방송은 독재자들의 나팔수로 전락했다. 그래서 지금 현재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 사실을 모르겠나. 알면서도 끊임없이 인내했던 것이다. 더 이상 참다못해서 지난해 드디어 촛불항쟁에 나섰던 것이고 박근혜 정부를 임기 4년 만에 끌어내렸다. 박근혜 정권이 국민들의 위대한 항쟁에 의해서 붕괴됐다. 도둑이 쫓겨난 것이다.도둑들은 사람들로부터 뺏어온 재물이 많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주인 찾아서 돌려줘야죠. 주인 찾아서 돌려줘야 된다. MBC-KBS 공영방송 여러분 누구 것인가. 국민의 것이다. 국민에게 돌려줘야 되지 않나. 이제 도적들이 쫓겨났다. 그렇다면 원래 주인에게 모든 것들을 돌려주자고 하는데 이것을 언론장악이라고 얘기한다.(중략) 그래서 저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이효성 방통위원장님 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도 있고 굉장히 신뢰하고 있다. 그분이 살아온 일생을 볼 때 그 어느 누구보다 굉장히 좋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가장 적합한 사람을선임했다고 본다. 이효성 위원장에게 이 자리에서 분명히 요구한다. MBC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KBS 이인호 이사장을 방통위 권한으로 당장 해임하시기 바란다."
복막암 투병 중인 이 기자는 요양시설에 있다가 최근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현재 자택에 머무르고 있다. 파업콘서트 방문이 더 뜻깊게 여겨진 이유다. 이 기자는 "그동안 제가 너무 지킬 수 없는 헛공약을 남발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왔다. 파업 중에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동안 지키지 못해, 오늘 그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마음먹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김 PD는 "이런 멋진 친구가 있는데 제가 어떻게 안 싸울 수 있겠나"라고 말했고, 허 아나운서는 "이 기자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MBC로 돌아올 수 있도록 큰 박수 보내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 밴드 혁오부터 전인권 밴드까지, MBC 총파업 응원
장기하와 얼굴들, 전인권 밴드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파업콘서트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의 첫 무대는 170일 파업 이후 5년 만에 2017년 버전으로 개사한 'MBC 프리덤' 라이브였다. 연주부터 노래, 춤까지 모두 MBC본부 노조원들이 맡았다.
정통 하모니 두왑 걸그룹 바버렛츠는 "이렇게 멋진 자리에 저희가 초대돼 노래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며 "오랫동안 이렇게 우리의 표현할 권리와 알 권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분들에게 용기 드리고자 저희도 용기 내서 올라오게 됐다"고 말했다.
'인디계 아이돌'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가장 핫한 밴드 혁오도 '와리가리', '위잉위잉', '톰보이' 등을 열창해 큰 환호를 받았다. 혁오의 보컬 오혁은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생각해 봤는데, 그냥 저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게 제일 싫다. 그래서 억울하신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거 파업 현장에도 공연을 하러 온 바 있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도 '우리 지금 만나', '그렇고 그런 사이', '별일 없이 산다'를 불렀다. 장기하는 "제가 지식이 짧긴 하지만 여러분들 MBC를 다시 MBC답게 만드시려고 나와계신 거죠? 저희도 그걸 바라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고 왔다"면서 "끝까지 잘, 목적하신 성과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셨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MBC 파업콘서트 '다시 만나도 좋은 친구'에 참석자들이 '김장겸 퇴진'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MB 정부 당시 작성된 이른바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하늘이 속한 DJ.DOC는 '런 투 유', '나 이런 사람이야', '삐걱삐걱'을 불렀다.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잘가요 미스박 쎄뇨리땅" 등의 가사로 여성혐오 논란이 일었던 '수취인분명'도 불렀다.
이하늘은 "사실 저희를 밖에서 양아치라고 얘기 많이 하는데 더 양아치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떻게 이렇게 양아치들이 있지? 김장겸은 물러나라! 아직도 안 물러나는 걸 보면 뻔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 이정현, 조윤선 등 구 여권 주요 정치인 실명을 거론하며 맹공을 이어나갔다. DJ.DOC는 김민식 PD가 시작한 구호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고 마지막 곡을 마무리했다.
파업콘서트의 마지막은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때에도 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났던 전인권 밴드가 장식했다. 전인권은 "언론이 바로 선다는 건 우리가 신나게 설 수 있다는 걸 말한다"며 '걱정 말아요 그대',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을 불렀다.
◇ 박혜진 아나운서 "동료들, 방송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이날 파업콘서트에서는 김 PD가 총 연출을 맡은 '2017년 버전 MBC 프리덤' 뮤직비디오가 최초로 공개됐고, 2012년 파업 이후 TV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아나운서들이 '출발 비디오 여행', '2017 MBC 적폐 올림픽' 등의 코너 사회자로 나서 박수를 받았다.
MBC 아나운서들은 단체로 무대에 올라 모처럼 시민들 앞에 얼굴을 비쳤다. 김상호 아나운서는 "기자가 취재현장을, PD가 제작현장을,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떠난다면 더 이상은 기자도 PD도 아나운서도 아닐 것"이라며 "그러나 공영방송 아나운서의 책무와 소임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임을 여러분들에게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또한 170일 파업 이후 MBC를 떠난 박혜진, 문지애, 김소영 아나운서가 파업 중인 동료들을 응원하기 위해 무대 위에 섰다. 문 아나운서는 "(파업 이후) 방송하지 못한다는 것보다 옆에서 힘이 돼 줬던 선배들이 모두 다 떠나고 혼자 남아있다는 공포, 두려움이 저를 짓눌렀다"며 퇴사 배경을 밝혔다.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퇴사한 문지애 아나운서(사진 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박경추, 강재형, 박혜진, 문지애, 김소영, 황선숙 아나운서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2012년 입사했다 올해 퇴사한 김 아나운서는 "제가 존경하던 아나운서 선배들이 저의 라디오 PD가 되고 선배들을 만나려면 주조정실로, 스케이트장으로 가야 되는 현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한 명 한 명 사라질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저도 방송을 못하게 됐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지금 여기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 아나운서는 "마음이 아프다. 사실 이유도 없이 방송을 해야 할 분들이 몇 년째 방송을 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쫓겨나서 보내야 했던 가슴 아픈 시간들을 저도 보면서 같은 마음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안타깝고 슬펐다"며 "해직 선배들 복직되고 우리 아나운서들 다시 제자리로 가서 아주 멋지게 방송하는 날을 소원한다. 또한 다른 부서에 계신, 동질감을 느꼈던 선후배 여러분들 또한 다시 제자리에서 열심히 뛰는 모습으로 방송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MBC본부 김연국 본부장은 공영방송의 역할로 '건전한 여론 형성', '즐거운 오락', '정치권력 감시' 3가지를 들며 "다시는 무너지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7년의 일을 뼛속깊이 새기고 좋은 뉴스로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파업콘서트 말미를 장식한 MBC본부 에필로그 영상에서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