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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주년] 분노에서 축제로…기록으로 돌아본 촛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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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 23차례 집회, 1600만명의 大기록

2016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2016년 10월 29일, 서울 종로 청계광장에 3만개의 촛불이 켜졌다. 우리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던 '촛불혁명'의 시작은, 처음부터 거대한 물결을 이룬 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지만, 그때만 해도 촛불이 혁명이 될 거란 예상은 쉽지 않았다.

다만 국정농단에 대한 공분만은 선명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박진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공동 상황실장은 "시민들의 엄청난 분노를 느낀 특별한 집회"였다고 기억을 되새겼다.

◇ 촛불 2주만에 100만 명, 5주만에 200만 명 참여

2016년 12월 3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게 나라를 내줬다는 데서 오는 허탈감과 분노는 곧 촛불의 규모를 눈덩이처럼 불렸다. 언론 등을 통해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촛불은 2주 만에 100만개가 됐고, 한 달여 후 200만 개를 훌쩍 넘어섰다.

3차 집회가 열렸던 11월 12일은 참가인원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한 날이다. 특검이 당시 '문고리 삼인방'이라 불리던 청와대 비서관들을 구속하면서 국정농단의 윤곽이 확실해진 것이 계기였다. 이날 "박근혜 하야" 목소리를 누구보다 높인 이들은 10대 중고교생들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모교인 성심여고 학생들은 연단에 올라 "선배가 부끄럽다" 외쳤던 것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3주가 흘러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엔 사상 최대 인원인 232만 명이 모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29일 예정돼 있던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하고,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진퇴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며 정면돌파의 의사를 밝힌 직후라 공분이 극에 달한 결과다.

◇ "박근혜의 국가는 죽었다" 외친 시민들…국회 탄핵소추 동력으로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이 허용된 2016년 12월 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사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게다가 집회 전날 청와대 앞 100미터까지 행진을 보장하라는 법원 결정까지 참여 동력이 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의 국가는 죽었다"며 적폐 청산을 요구할 수 있었다.청와대 바로 앞까지 국화가 수북했고 광화문 광장에서 대한문까지 촛불파도가 넘실대는 장관이 연출된 날이기도 하다.

결국 국회에선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現자유한국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촛불집회에서 확인한 거대한 민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12월 3일, 최대 인파가 모인 6차 집회 이후 6일만의 일이다.

탄핵 소추안이라는 일종의 정치적 성과가 결실을 맺고 한파까지 불어 닥친 만큼, 이후 집회는 참가자들이 눈에 띄게 줄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 곧 확인됐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거치면서 국정농단 사태의 민낯을 접한 시민들이 추위에 아랑곳 않고 광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한 집회 참가자는 "혹시나 정치권이 '이만하면 됐겠지'하고 생각할까봐 걱정도 되고, 우리의 목표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 "송박영신(送朴迎新)"…2016년의 마지막 날, 참여자 천만 돌파

2016년 12월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9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청년산타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해 12월 24일 9차 촛불 집회에선 크리스마스 캐롤을 응용한 집회 노래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70만 명이 모였다. 12월 31일 2016년의 마지막 집회에도 어김없이 100만 명 넘는 시민이 광장을 채웠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보낸고 새해를 맞는다'는 의미의 '송박영신(送朴迎新)'이란 구호를 외치며, 탄핵의 공을 넘겨받은 헌법재판소 앞까지 행진했다. 이날은 10차 집회까지 누적 참여 인원 1천만 명을 넘어서는 대기록을 경신하던 날이기도 했다.

◇ 2017년…세월호 참사 1000일 그리고 탄핵 결정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둔 1월 7일 오후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로 304벌의 구명조끼가 놓여져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세월호 참사 1000일이기도 했던 2017년 1월 7일 11차 집회는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64만 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박 내려오고, 세월호 올라오라"라는 구호와 함께 촛불 소등 퍼포먼스가 펼쳐 졌다.

이어 2월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 수사가 급물살을 타던 시기였다. 2월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됐고, 3월 6일엔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란 이정미 헌재소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마자, 광장은 다시 시민들로 가득 찼다. 서로를 껴안으며 환호를 하는 시민들은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며 촛불의 승리를 만끽했다.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태극기 집회 측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만, 촛불집회는 파면 결정일은 물론 그 전에도 물리적 충돌을 빚지 않았다.

◇ 세계적 인정받은 '촛불 시민'…文 시상식서 "난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후 첫 주말인 3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독일의 비영리 재단인 프리드리히에버트 재단이 2017년 인권상에 '촛불 시민'을 선정한 배경에는 정치적 성과뿐 아니라, 이처럼 평화적 집회과정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2개월 뒤인 5월 10일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촛불집회가 시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창구였을 뿐 아니라 평화적 과정을 통해 정권까지 교체해낸 직접민주주의의 장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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