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는다 vs 막는다' NC와 플레이오프에서 맹타를 휘두른 두산 김재환(왼쪽부터), 시리즈 MVP 오재일과 한국시리즈에서 이들과 맞붙을 KIA 20승 듀오 헥터 노에시, 양현종.(사진=두산, KIA)
두산이 NC를 3승1패로 누른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플레이오프(PO). SK와 롯데를 꺾은 NC는 2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진출을 노렸지만 두산의 벽을 넘지 못했다. 두산은 유격수 김재호와 포수 양의지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서도 NC를 누르며 2년 연속 KS 챔피언다운 저력을 보였다.
이번 PO의 특징은 '선발 야구의 실종'이다. 4차전까지 오는 동안 두 팀의 어느 선발 투수도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채우지 못했다. '판타스틱4'를 자랑하는 두산 선발진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연일 홈런포가 터지면서 화끈한 타격전이 PO를 장식했다. 3차전까지 만루홈런이 승부를 결정지었고, 4차전에서는 두산 오재일이 1경기 4홈런의 괴력을 뽐냈다. PO 승리팀은 모두 두자릿수 득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때문에 정규리그 우승팀 KIA가 선착한 KS에서도 이런 양상이 이어질지 관심이다. 워낙 두산의 타격감이 뜨거운 까닭이다. 역대 PO 최고 타율을 새로 썼다. 선발 야구가 강점인 KIA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두산 '판타스틱4'도 털렸다두산은 NC와 PO 4경기에서 평균 9.9득점을 기록했다. 거의 한 경기 10점 수준이다. 타격감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던 1차전만 5점에 그쳤을 뿐 2~4차전은 17-14-14점의 활화산이었다.
잠실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NC와 4개씩 역대 포스트시즌(PS) 1경기 최다인 8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예전 7시즌 넘게 잠실을 홈으로 쓰는 두산을 맡았던 김경문 NC 감독은 "잠실에서 이렇게 많은 홈런이 나온 것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뜨거운 방망이에 두산도 선발이 무너졌다. 원투펀치 더스틴 니퍼트와 장원준이 나란히 1, 2차전에서 5⅓이닝 6실점(5자책)으로 부진했다. 3, 4차전에서 이겼지만 마이클 보우덴이 3이닝 3실점, 유희관이 4⅔이닝 4실점으로 5회도 채우지 못했다. 두산 선발의 PO 평균자책점(ERA)은 8.67이나 됐다.
물론 단기전인 가을야구에서는 투수 교체 타이밍이 빠를 수밖에 없다. 매 경기가 사실상 결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해도 선발 투수가 상대 타선을 막아내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는 탓이 크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PO 2차전을 앞두고 "그래도 우리 팀의 강점이 선발인데 최대한 길게 가고 싶다"고 했지만 3, 4차전은 과감하게 빨리 선발을 내렸다.
자칫 선발 투수를 믿다가 흐름을 완전히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계산보다 선발 투수들이 초반에 많은 점수를 내준다"며 입맛을 다셨다. 선발이 강하다는 두산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PO였던 것이다. 오죽하면 시리즈 MVP 후보로 PO 불펜이던 함덕주가 거론됐을까. 함덕주는 4경기에서 6⅔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두산 PO 타율 .355, 10년 만에 기록 경신
'테임즈의 응원에도...' NC 에이스 에릭 해커(왼쪽)는 두산과 PO 3차전에서 지난해까지 팀 동료였던 에릭 테임즈의 시구 응원에도 4회를 채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사진=NC)
사실 롯데-NC의 준PO만 해도 선발 야구는 살아 있었다. NC 에릭 해커, 장현식과 롯데 외인 선발들은 그래도 가을야구답게 에이스의 투구를 펼쳤다.
해커는 준PO 2경기에서 13⅓이닝 1실점 짠물투로 시리즈 MVP에 올랐고, 장현식도 2차전에서 비록 졌지만 7이닝 비자책 1실점의 역투를 펼쳤다. 롯데 조시 린드블럼도 2경기 14이닝 3실점으로 제몫을 해냈고, 부상으로 1경기만 뛴 롯데 브룩스 레일리도 2차전 5⅓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하지만 가을야구 타선의 이상 과열 현상은 선발 야구의 실종을 낳고 있다. 지난 5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SK 에이스 메릴 켈리는 2⅓이닝 8실점의 충격을 안았고, 몸값 20억 원의 NC 제프 맨쉽은 4이닝 3실점했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불펜 투수인 맨쉽은 이후 선발에서 불펜으로 내려갔음에도 계륵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해커는 PO 3차전에서 4회도 채우지 못하고 7실점(6자책)했다.
타자들의 기세가 워낙 세기 때문이다. PO에서 두산과 NC 타선은 모두 3할 타율을 넘겼다. 두산의 PO 팀 타율은 3할5푼5리, NC는 3할2푼7리였다. 두 팀 합계 타율이 3할을 넘긴 것은 이번 PO가 처음이다. 4경기에서 두산은 12홈런, NC는 6홈런을 쏟아냈다.
무엇보다 두산의 올해 PO 팀 타율은 역대 최고를 찍었다. 이전까지 최고였던 3할5푼4리를 넘었다. 그 기록도 2007년 한화를 상대했던 두산이었다. 두산이 날린 12홈런도 역대 PO 2위다. 1999년 삼성이 7경기를 치르고 날린 15개가 최고. 두산은 4경기만 하고도 12개였다.
▲'3주 휴식' KIA 선발진, 성난 두산 진정시킬까이러다 보니 KIA로서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불펜이 상대적으로 약한 KIA는 PO 선발진의 붕괴를 예사롭지 않게 봐야 한다. 가을야구에서 타자들의 득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두산 선발진은 정규리그 이후 약 2주 이상을 쉬었다. 정규리그 최종전인 3일 등판한 니퍼트가 딱 2주 만에 등판했을 뿐 나머지는 그 이상 휴식을 취한 것이다. 힘은 충분했다. 그러나 올해 꾸준했던 장원준마저 두산 이적 후 1경기 3홈런을 얻어맞았다.
김태형 감독은 "니퍼트야 경기 중반 제구가 흔들렸다 해도 장원준은 올해 내내 공이 좋았다"면서 "그런데도 실투를 상대가 놓치지 않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타자들의 집중력이 거의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사실 가을야구에서 타자들이 이렇게까지 득세하기는 쉽지 않다. 투수들의 집중력이 높아 힘과 혼이 실린 투구를 하기 때문이다.
KIA 선발진은 KS까지 두산보다 많은 정규리그 이후 3주 이상 휴식을 취하게 된다. 체력과 컨디션을 회복하기에 충분하다. 20승 듀오 헥터 노에시와 양현종은 자체 홍백전을 통해 구위를 점검했다. 헥터가 18일 4이닝 5탈삼진 7피안타 2실점, 양현종이 19일 4⅔이닝 3피안타 1볼넷 1실점을 기록했다.
헥터는 올해 두산을 상대로 5경기 3승1패 ERA 4.06의 성적을 냈다. KBO 리그 첫 시즌이던 지난해는 두산전 등판이 없었다. 양현종은 올해 두산에 2경기 1승1패 ERA 6.17이었다. 지난해도 3경기 1승2패 ERA 6.50으로 좋지 못했다.
억대 PO 최고 타율로 바짝 방망이를 곧추세운 두산. 과연 3주 이상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KIA 선발진이 성난 두산 타선을 잠재울 수 있을까. KS의 성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승부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