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터' 스틸컷(사진=더픽처스 제공)
"가난한 자를 구제하거나 궁핍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선한 행위라고 가르쳐야 한다." - 마르틴 루터 '95개조 반박문' 중에서부패한 교회 권력에 맞서 절대다수 민중들이 시름하는 낮은 곳으로 내려간 종교개혁이 올해로 500돌을 맞았다. 이를 기리며 영상 미학으로 풀어낸 방송·영화 등 관련 콘텐츠도 속속 선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 루터의 삶 따라가며 돌아보는 현실…'루터로드'
"루터의 길은 역사 속 순례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야 할 오늘의 길입니다."
CBS TV 특집 3부작 다큐멘터리 '다시 쓰는 루터 로드'(이하 '루터 로드')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돈과 권력을 좇던 교회를 비판하며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앞에 내걸었던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은 루터교단 목회자인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 한국기독청년협의회 남기평 총무, 싱어송라이터 제이미스톤즈까지 4명으로 꾸려진 '종교개혁 원정대'가 이끈다.
지난 13일 첫선을 보인 1부 '돈과 권력'에서 제작진이 루터의 행적을 쫓다 마주친 것은, 종교개혁 당시 루터가 강하게 비판했던 가톨릭과 빼닮은 지금 한국의 교회였다. 급속한 성장 속에서 목회자 한 명에게 권력이 쏠리고, 그 권력을 세습하는 현실 말이다.
이렇듯 '루터 로드'는 단순히 루터의 행적을 쫓으면서 그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500년 전 종교개혁을 거울 삼아 현재 한국 교회의 방향성을 짚어보는 까닭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루터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하늘(내세)이 아니라 땅(현재)을 봐야 된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접한 원정대가, 세월호 참사와 그 유가족들을 외면했던 한국 주류 개신교를 돌아보는 장면은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루터 로드'는 1부를 시작으로 20일과 27일 오후 1시에 각각 2부 '말씀과 실천', 3부 '프로테스탄트'를 CBS TV(케이블 TV 및 스카이라이프 182번)에서 차례로 방영한다.
◇ "하나님은 면죄부가 아닌 우리 곁에 있다"…'루터'
16세기 유럽 교회는 로마 교황의 성경 해석을 법전처럼 여기며 부흥을 위해 면죄부를 팔고, 민중에게는 하나님이 두려움과 경외의 존재라는 것을 강요한다. 당대를 사는 독일 청년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탓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부가 된다.
어느날 원장의 서신을 전하기 위해 로마에 가게 된 루터는 돈과 권력을 좇으며 타락한 교회의 민낯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절실히 원했던 자신의 모습과, 가난 속에서도 면죄부를 사는 것에 매달리는 성도들과 마주한다. 이에 루터는 신앙의 길을 바로잡기 위해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고, 결국 종교재판에 오르게 된다.
지난 18일 개봉한 '루터'는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고뇌와 갈등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루터는 성직자들만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도록 한 인물로도 이름 높다. 그가 당대 독일 기독교인들을 교회의 권위에서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루터가 "하나님은 성유물과 면죄부가 아닌 우리 곁에 있다"고 설교하는 신은 이 영화의 명장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교황은 '95개조 반박문'을 붙힌 루터를 아우크스부르크로 소환하는데, 그는 물러서지 않고 신도들에게 "만약 우리가 말씀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살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산다면 우리는 사람의 심판을 겁낼 필요가 없다"고 역설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연기파 배우들의 호연은 이 영화에 대한 믿음을 한껏 끌어올리는 요소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에너미 앳 더 게이트'로 한국 영화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배우 조셉 파인즈가 루터 역을 맡았다. '베를린 천사의 시' '몰락'의 브루노 강쯔는 청년 루터의 스승이자 후원자인 요한 폰 슈타우피츠로 분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2회 수상한 피터 유스티노브, '스파이더맨2'의 알프리드 몰리나 등 조연진도 탄탄하다.
◇ "가난뱅이가 세상을 구한다"…'내 친구 정일우'
"가난했기에 우린 친구가 됐다. 1988년의 나(감독)는 헝클어진 머리, 볼품없는 옷을 입은 한 신부를 만났다. 매일 같이 커피, 담배, 술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또 무슨 장난을 칠까' 궁리했던 개구쟁이, 노란 잠바를 입고 '노란샤쓰의 사나이'를 멋들어지게 불렀던 '파란 눈의 신부'는 그렇게 우리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가난뱅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믿음으로 모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됐던 고 정일우 신부는 모든 것을 초월해 사랑을 나누며 예수의 삶을 몸소 실천했던 '진짜' 사람이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내 친구 정일우'는 한국의 빈민들 곁을 지키며 '판자촌의 예수'라 불렸던 고 정일우 신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전작 '송환'으로 지난 2004년 선댄스영화제 표현의자유상을 받으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넓혔던 김동원 감독은, 9년 만에 내놓은 '내 친구 정일우'를 통해 고 정일우 신부의 79년간 삶을 재조명한다.
종교뿐 아니라 인종, 국적, 신분, 나이 등 권력자들이 그어둔 모든 경계를 초월해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만남을 이어온 정일우 신부의 삶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곁을 지키는 것이었다.
평생을 빈민운동에 바쳤던 그가 전했던, "함께하는 공동체에는 항상 아름답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엔 갈등도 있고 싸움도 있고 그런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치부도 서로 알고 있고. 그렇지만 함께 보듬고 가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라는 메시지는 반목으로 얼룩진 현재 한국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단초다.
개봉에 앞서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천진난만하고 소박했던 정일우 신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강제 철거 현장에서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철거민, 그러한 철거민을 따뜻하게 안으며 고통을 함께하는 정일우 신부의 모습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 '우리'의 죄와 마주한 인간의 간절한 기도…'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로마서 8장 37절
전도사 기섭(이현호 분)은 자신의 우상인 형 요섭(서동갑)을 돕기 위해 부순교회의 간사로 들어간다. 요섭을 둘러싼 무수한 의혹을 부정하던 기섭은 점차 사건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고,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세계 속에서 원죄와 마주한 기섭은 간절한 기도를 시작한다.
다음달 개봉하는 영화 '로마서 8:37'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은 '로마서'를 주제로 죄의 문제를 풀어내려는 시도다. 주인공들은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면서 우리 자신도 모르는 우리 모두의 죄를 목격한다.
'동주'의 각본과 제작을 맡고 '러시안 소설' '프랑스 영화처럼' 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신연식 감독은, 이 영화를 연출하면서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악과 나 자신의 죄를 직면하는 인간, 우리 모두에 대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 영화에는 제목으로도 쓰인 '로마서'를 비롯해 마태복음, 시편 등의 성경구절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신연식 감독은 영화에 성경구절을 활용한 데 대해 "실제 삶에 성경말씀을 적용시키는 우리의 모습을 대비시키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영화 속 성경구절은 단순한 장치적 요소를 넘어 극중 인물들의 서사와 함께 어우러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영화는 현재 진행 중인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부문에 공식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부산영화제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를 두고 "각본, 연출, 연기의 호흡이 좋다"고 호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