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서 제출자 이완용, 박정희', '전화번호 010-1910-0829(경술국치일), 010-1979-1026(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일)'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론조작 의혹에 관한 교육부 자체 조사 결과는 당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교육부 등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팀은 현재 교육부 문서보관실에 보관돼 있는 찬반 의견서 103박스 가운데 53박스(4만여장)가 일괄 출력물 형태의 의견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인쇄소에서 같은 날 한꺼번에 제작돼 제출돼 '차떼기 제출'이라는 의혹을 받아온 의견서다.
의견서가 출력된 날짜는 '중고등학교 교과용 국·검·인정구분(안) 행정예고'에 대한 의견수렴 마지막 날인 2015년 11월 12일이다.
교육부가 찬성의견서 26박스(약 2만8천장)를 우선 조사한 결과, 대부분 4종류의 동일한 양식의 찬성 의견서인 것으로 드러났다.
형식 요건을 충족한 찬성 의견 제출자는 모두 4천374명이었으며, 이 중 1천613명은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5동 000-00번지'라는 한 주소를 사용했다.
찬성 의견서 가운데는 동일인이 찬성 이유를 달리해 수백 장을 낸 경우도 있고, 제출자 개인정보란에 상식을 벗어나는 황당한 내용을 적어넣기도 했다.
이름과 주소, 연락처 칸에 '이완용/대한제국 경성부 조선총독부/010-1910-0829(경술국치일)', '박정희/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010-1979-1026(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일)', '박근혜/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010-0000-1102(의견 수렴 마지막 날)'이라고 적은 의견서도 있었다.
일부 찬성 의견서에는 '개xx/뻘짓/456890, 지x/미친짓/12346578'라고 적기도 했다.
일괄 출력물 형태 의견서 중 중복된 의견서를 제외한 4천374명에 대해 무작위로 677명을 추출해 유선전화로 진위를 파악한 결과, 252명만 응답했다.
응답자 중 찬성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답한 경우가 51%인 129명에 불과했으며, 제출 사실이 없다는 이가 64명(25%),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한 경우가 47명(18.6%)이었다. 12명(4.7%)은 인적사항이 일치하지 않았다.
의견접수 마지막 날 당시 학교정책실장 김모씨(퇴직)가 "밤에 찬성의견서 박스가 도착할 것이므로 직원들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사실은 김씨가 모처에서 사전에 연락을 받았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교육부의 조직적 공모나 여론조작 협력 사실 등이 드러나면 관련자에 대한 신분상 조치도 교육부에 요청하기로 했다.
진상조사위는 "일부 혐의자는 교육부 소속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진상조사팀의 조사권한이 미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를 요청하기로 했다"며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수석의 업무노트와 안종범 전 수석의 메모노트, 국정역사교과서 비밀TF 현장 공개 등에 비춰보면 청와대와 국정원, 교육부가 조직적으로 국정화 여론조작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