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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랑의 온도'에서 말하는 '여자짓'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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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감수성 부족한 대사·상황에 시청자들 지적 이어져

지난 3일 방송된 SBS '사랑의 온도'에서 현수는 힘든 일을 겪고 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여자짓'이라고 표현했다. (사진='사랑의 온도' 캡처)

 

지난달 18일 첫 방송된 '사랑의 온도'는 사랑을 놓쳤던 여자 이현수(서현진 분)와 여전히 현수를 사랑하는 남자 온정선(양세종 분)이 재회하면서 사랑의 온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닥터스', '상류사회', '따뜻한 말 한마디' 등을 쓴 하명희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서현진, 양세종, 김재욱, 조보아 등이 펼치는 본격 멜로 장르라는 점에서 기대작으로 꼽혔다.

총 40회(프리미엄 CM 때문에 하루에 2회씩 방송, 과거 기준으로는 20회) 중 12회까지 방송된 '사랑의 온도'는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을 몰입도 높게 묘사해 죽었던 연애세포도 살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시대에 맞지 않게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대사와 상황 설정 등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오는 중이다.

대표적인 대사는 지난 3일 방송에서 반복된 '여자짓'이다. 극중 드라마 작가인 현수는 '반칙형사'라는 자신의 작품 시청률이 낮아져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풀죽어 있는 현수에게 제작사 대표인 박정우(김재욱 분)가 위로전화를 할 때 '여자짓'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자기 때문에 손해보게 생겼다며 정우를 염려하고, 먹는 것으로 회피 중이라고 설명하던 현수는 사실 겁이 난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이에 정우는 "이거 여자짓이야? 그럼 받아줄게"라고 말했다.

씬이 바뀌고, 자신을 위로하러 온 정선이 눈물을 닦아주자 현수가 "어, 이거 여자짓이야. 이 상황에서 여자짓을 한다, 내가. 위로받고 싶어서"라고 말할 때에도 여자짓이라는 말이 반복됐다.

힘든 일을 겪었을 때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위로를 요청하는 현수의 행동은 성별과 무관한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여자짓'이라는 단어가 붙음으로써 단숨에 '특정 성별에 국한되는 행동'이 되어버렸다.

◇ 남녀 구분 표현 계속… 시선 폭력 상황에서도 "참으라"고만

성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대사와 상황 설정으로 비판이 나오고 있는 드라마 '사랑의 온도' (사진=SBS 제공)

 

'사랑의 온도'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짓는 표현이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현수와 정선이 재회해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할 때 각각 "이현수예요. 남자이름 같죠", "온정선이에요. 여자이름 같죠"라는 대사가 첫 방송에서 일찌감치 등장했다.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역할이 마치 성별에 따라 갈리는 것처럼 묘사된 경우도 있었다. 작품 시청률이 잘 안 나와 낙심해 있는 현수가 고민을 들어달라고 하자 정선은 "그냥 들어만 주는 거 어려워. 남자잖아. 뭔가 해결해주고 싶다고, 본능이"라고 했고, 현수 역시 "알았어, 그럼 그건 여자랑 할게. 우린 들어만 주는 거 잘하거든"이라고 답한 장면이다.

또, 극중 현수를 사랑하는 역할인 정우는 현수에게 대표-작가가 아니라 남자-여자 관계로 접어들고 싶다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연인'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이 도드라지는 만큼, 자연히 직업인인 '작가'로서 현수를 존중하는 면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가 시선 폭력(불순한 표정이나 눈빛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과 허리가 만져지는 추행을 당했을 때, 오히려 피해자에게 '참으라'고 한 장면에도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지홍아(조보아 분)가 "내가 댁 보라고 예쁜 줄 알아? 이거 성희롱이야", "눈 아래로 훑는 거 얼마나 기분나쁜 줄 알아?"라고 쏘아붙일 때, 정선이 "기분나빠도 참아. 대부분 사람들 기분나쁜 거 참으면서 살아"라고 어긋난 충고를 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굿스프 직원들끼리 치대며 장난치는 장면에서 "계집애 같이 왜 이래"라고 한 대사나, 미묘한 설렘이 오가는 관계에서 "끼 부린다", "교태" 등의 표현이 나온 것에 불편해 하는 반응이 있었다.

4일 오후 현재, '사랑의 온도' 시청자 게시판에는 드라마 곳곳에서 발견되는 젠더 감수성 부족을 지적하는 항의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드라마가 진행돼 오면서 꾸준히 쌓여왔던 문제가 3일 방송에서 유난히 강조된 '여자짓'이라는 표현 때문에 다시 환기되고 있는 것.

시청자 이모 씨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행동은 여자만의 것인가요? 이렇게 대중적인 지상파 드라마에서 성 편견을 심어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 너무 놀랍고 걱정되네요"라며 "이런 식의 불편한 대사가 한두 번 나온게 아닌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베스트셀러에 있는 페미니즘 서적 한권이라도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라고 밝혔다.

정모 씨는 "(여자짓이라는 말을) 여배우들이 자신이 부끄러운 행위를 했다는 듯이 질책하며 말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뒷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더라"라며 "요즘같이 여성인권 문제에 예민한 시대에 '여자짓'을 공중파드라마에서 저런 식으로 정의하다니 이 드라마가 많은 여성분들에게 코르셋을 채우지는 않을까 우려된다"고 적었다.

유모 씨는 "지금이 어느 시댄데 70년대 사고를 반영하십니까. 그리고 성희롱의 일종인 시선강간을 참아야 할 때도 있는 거라구요? 대체 평소에 어떤 사고를 가지셨으면 저런 대사들이 나올까 싶네요"라고 비판했다.

4일 오후 현재 SBS '사랑의 온도' 시청자 게시판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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