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문성의 헤드윅. (제공 사진)
제가 손톱이 깁니다. 배역 때문에....”
25일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정문성(37)의 첫마디는 ‘손톱’ 이야기였다. 아주 길다고도, 그렇다고 깔끔하게 정돈되지도 않은 손톱은 그가 지금 무엇에 빠져,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였다.
그는 지난달부터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 뮤지컬 ‘헤드윅’에서 헤드윅으로 열연 중이다. 여장 남자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야 하기에 손톱을 기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첫인상은 의외였다. 무대에서 헤드윅으로 분한 정문성은 관객을 향해 쉴 새 없이 농담과 심지어 욕설(?)도 쏟아 부었기에, 발랄한 성격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매우 진중했다. 질문이 무거워서였을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에 깊이 생각하며 답했다. 단답은 없었다. 오랜 시간 답했다.
그것은 그가 헤드윅이라는 역할을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 왔는지, 그래서 지금 어떻게 헤드윅을 대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했다.
◇ 포기했을 때 찾아온 ‘헤드윅’
배우 정문성. (제공 사진)
데뷔 10년이 조금 넘은 정문성은 배우가 된 지 1년쯤 지났을 때 영화로 ‘헤드윅’을 접했다. 그때 헤드윅에 푹 빠져 ‘나는 헤드윅을 해야 해, 반드시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2008년 뮤지컬로도 ‘헤드윅’이 있고, 배우를 공개 모집한다는 소식에 지원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왜 떨어졌냐고 전화까지 해서 따졌어요. 그 정도 하고 싶었던 역할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진 첨부가 안 됐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컴퓨터를 잘 못했거든요. 그 후로 7~8년은 기다렸어요. 그런데 배우 모집도 없고, ‘아, 이건 선택받은 특별한 어떤 사람들만 하는 공연인가 보다’ 생각하며, 내려놨죠.”
그렇게 마음을 비웠을 때 희소식은 도둑같이 찾아왔다. ‘헤드윅’에 캐스팅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그는 농담 삼아 “더 빨리 내려놨으면, 기회가 더 빨리 왔을 텐데”라며 웃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때 했다면, 지금처럼 못했을 거예요. 더 여성스러움을 강조했거나, 어리다는 것을 앞세운 ‘헤드윅’이었겠죠.”
◇ 정문성만의 헤드윅, ‘문드윅’을 만들다
수많은 배우가 헤드윅을 거쳤다. 조승우, 오만석, 조정석, 윤도현 등 자기만의 색으로 헤드윅을 그렸다. 누군가는 쇼를, 누군가는 노래를, 누군가는 연기나 관객과 소통을 잘했다.
정문성은 다른 배우를 보고 따라 하기보다, 대본과 스토리에 충실했다. 그는 인물 자체를 표현하고자 했다.
“배우마다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가 어느 배우처럼 노래를 잘하거나 할 수는 없잖아요. 가진 재능이 다르니. 저는, 완벽하게 헤드윅이라는 그 인물이 될 수 없겠지만, 최대한 그 인물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일까. 기본에 충실한 정문성의 헤드윅은 여타 배우와 비교했을 때 드라마와 스토리텔링이 가장 잘 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 다시 헤드윅…“나 혼자 이끄는 1인극 아니야”
(제공 사진)
지난해 ‘헤드윅:뉴메이크업’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무대이지만 정문성 여전히 어떻게 하면 ‘헤드윅’을 온전히 관객에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무대 오르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익숙해져서 애드립이나 쇼를 통해 관객의 반응을 끌어낼 법도 한데, 더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찾은 것이 자기 이외의 배우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헤드윅’이다.
“사람은 자신을 알리려고 발광할 때보다, 관계 안에서 더 색이 선명해지는 것 같아요. 말은 없지만 내 뒤에 있는 밴드와 사랑하는 남편 이츠학이 옆에 있잖아요. 이들을 비추기 위해 노력했더니 헤드윅이 더 입체적으로 표현됐어요.
그런 의미에서 헤드윅은 1인극이 아니라는 게 정문성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물어요. 2시간 30분을 혼자 끌고 가는 게 부담되지 않느냐고. 처음에는 부담됐죠. 하지만 지금은 같이 한다는 느낌이 강해요. 내 밴드와 이츠학이 날 어떻게 봐주느냐에 따라 내가 달라지죠. 또 관객이라는 사람을 인정하고 무대를 만드는 마지막 배우로 생각하니, 그때부터는 연기가 아닌 진심이 돼요“
◇ "나이 들어 인생을 더 알았을 때 다른 헤드윅 보이고파"
배우 정문성. (제공 사진)
그래서 정문성은 헤드윅을 하는 게 행복하고 재미있기만 하다.
“무대에 선다는 건 매번 겁이 나고, 그것을 이기고 버텨야 하는 시간이긴 하지만, 저는 그게 행복하고 재밌어요. 물론 힐을 신고 뛰는 건 힘들지만, 행복하고 재밌어요.”
정문성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헤드윅에 도전하고 싶다고 바랐다.
“이제 나이가 많아 못하겠다는 선배들도 있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헤드윅을 엄청 사랑할 걸요. 저는 나이을 먹으면 더 해보고 싶어. 내가 인생을 알면 알수록 더 다른 헤드윅을 관객에게 보일 수 있을 테니까요.”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도 마지막 말을 남겼다.
"세상 사는 게 힘들잖아요. 꼭 헤드윅이 아니어도 공연을 보시면서 위로받으시면 좋겠어요. 헤드윅을 보러 오신다면, 신이 빚어낸 신비한 언니가 기운도 북돋아주고, 격려도 해주고, 같이 욕도 해주고, 울고 웃어줄테니, 위로받고 힘 얻어 가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