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3·1 사건과 1947년 동아시아'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22일 오후 제주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미국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국제공조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진=이인 기자)
제주 4·3 사건의 미국 책임을 공론화하기 위한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2·28 사건으로 비슷한 시기 수많은 희생자를 낸 대만과의 공조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제주 4·3의 시발점이 된 3·1사건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가운데 이를 기념하는 '제주 3·1 사건과 1947년 동아시아' 국제학술대회가 제주 4·3연구소 주최로 22일 오후 제주 아스타호텔에서 열렸다.
한겨레신문 허호준 기자는 '1947년 냉전체제의 형성과 제주도'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4·3사건은 상당 부분 미 군정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이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면서 사상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미 군정이 진상조사와 함께 발포 책임자를 처벌했다면 3·10 민관 총파업의 명분도 없었고 1년뒤 4·3 무장봉기의 대의명분도 약했을 거라는 지적이다.
허 기자는 또 4·3 전개과정에서도 미국은 제주를 이데올로기의 전쟁터로 인식하며 진압작전을 직접 지휘했다고 강조했다.
1947년 3·1 사건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때 까지를 4국면으로 나눠 분석한 허기자는 고비마다 미국이 개입했고 특히 1949년 10월에는 주한미대사관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제주도에서 공산폭도들이 재기불능 상태가 돼 기쁘다'는 보고까지 미 국무성에 했다고 말했다.
'제주 3·1 사건과 1947년 동아시아'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22일 오후 제주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가운데 미국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국제공조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진=이인 기자)
이같은 미국 책임을 제대로 규명하고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대만 학자의 입에서 나왔다.
대만 국립정치대 주립희 교수는 '2·28과 4·3의 국제연대를 통해 미국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제의'를 발표하고 비슷한 시기 같은 비극을 겪은 4·3과 대만 2·28은 연합군 도쿄총사령부의 지시나 묵인때문에 빚어진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만 2·28 사건은 제주 3·1 사건 하루전인 1947년 2월 28일, 타이베이에서 밀수 담배를 팔던 여성을 전매국 직원과 경찰이 구타하자 민중봉기로 이어졌다.
중국에서 공산당과 전투를 벌이던 국민당 장제스 정권이 군대를 대만에 파견해 진압작전에 나서면서 1만 8000여명에서 2만 8000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주 교수는 4·3 대학살의 경우 연합군 도쿄 총사령부 명령으로 주한 미군정이 집행한 사건이기 때문에 미군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대만 2·28 사건은 당시 대만에 주둔한 미군은 없었지만 중국에 주둔한 미군사령관의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연합군 도쿄 총사령부의 묵인이 없었다면 대규모 학살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주 교수는 한국과 대만이 공조해 미 국회와 UN 인권위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사건의 진상을 미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두 사건에 대한 영문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미국 FOIA(Freedom of Information Act)를 통해 당시의 외교 문서와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심층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 교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