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 측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않았다던 김호곤 축구협회 부회장의 발언이 거짓으로 드러나며 본인은 물론, 축구협회는 신뢰에 큰 상처를 입었다.(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사면초가(四面楚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를 의미하는 이 사자성어는 2017년 9월 현재 대한축구협회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다.
한국 축구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감독 교체라는 승부수 끝에 힘겹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지만 경기력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여기에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최종예선 9, 10차전에서 불거진 태도 논란이 더해지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끓는 기름까지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임설로 한국 축구계는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됐다. 히딩크 감독은 14일 네덜란드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진심을 털어놨다. 히딩크 감독 측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적 없었다던 김호곤 기술위원장 겸 부회장은 연락은 있었지만 자신이 결정권이 없을 때 받은 것이라며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같은 날 조중연 전 회장을 포함한 전현직 임직원 12명이 1억원이 넘는 협회 공금을 업무와 무관하게 유용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등 2017년 9월 14일은 ‘축구협회 치욕의 날’이 되고 말았다.
한국 축구를 위해 다시 한번 기여하고 싶다는 히딩크 전 감독의 발언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 축구에 불어닥친 '태풍'이 됐다. 박종민기자
◇ 하겠다는 히딩크 감독, 선 긋는 축구협회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감독이라는 구체적인 역할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분명한 의사를 피력했다. 분명 히딩크 감독의 의사를 전달하는 과정상 절차와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의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예전과 달랐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아닌 어느 정도 제 힘으로 걸을 줄 아는 아이가 된 듯 이제는 스스로 뛰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지난 수년간 여러 차례 낮은 곳으로 임하라는 축구협회의 과도한 제안을 묵묵히 받아들였던 신태용 감독에 대한 미안함도 더해진 결과다.
여기에 예전만 못한 ‘태극마크’의 무게감도 축구팬을 깊은 실망에 빠지게 했다. 엄청난 대우를 받으며 외국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대부분인 축구대표팀은 축구팬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며 논란이 수그러드는 듯했지만 이란, 우즈베키스탄전의 경기 내용과 경기 후 태도 논란은 더욱 축구팬의 분노를 들끓게 했다.
한국 축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여러 상황이 히딩크 감독의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복귀 열망과 만났고, 축구협회의 초보적인 대응과 이 과정에서 발생한 미숙한 실수가 결국 ‘축구협회=없어져야 할 조직’이라는 인식을 더욱 깊게 새겨지게 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가려졌던 불만은 2017년 현재 한국 축구가 직면한 '광풍'으로 커버렸다.(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진퇴양난의 축구협회, 韓 축구가 위험하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처한 악재는 단순히 현재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의 잘못도 땅속에 파묻혔던 고구마 덩이처럼 줄지어 대중에 공개되며 엎친 데 덮친 꼴이 되고 말았다. 히딩크 감독이 유럽 현지에서 취재진을 만나기 바로 전 전임 조중연 회장 재임 당시 임직원 12명이 공금 유용 등의 비위 행위로 불구속 입건되며 축구팬의 질타가 쏟아졌다.
특히 선수 출신으로 처음 축구협회장을 맡은 조중연 전 회장을 비롯해 이회택 전 부회장, 김진국 전 전무이사, 김주성 전 사무총장, 황보관 전 기술위원장 등 과거 그라운드 위에서 한국 축구를 화려하게 빛냈던 이들이 축구협회의 요직을 맡아 업무와 무관하게 법인카드를 사용한 혐의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현재 축구협회의 상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다. 적극적인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지켜보며 그저 시간이 흐르길 바라고만 있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축구협회는 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