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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학살한 민족은 유대인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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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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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영화제를 돌아보며 ②] 영화 '장고'가 고발하는 나치의 집시 학살

영화 '장고'를 연출한 에티엔 코마르 감독. (사진=이명희 영화평론가 제공)

 

에티엔 코마르 감독의 데뷔작 '장고'(Django)는 전설적인 집시 재즈 기타리스트이며 작곡가인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1910~1953)에 관한 첫 영화다.

영화는 장고 라인하르트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이면서 동시에 나치가 저지른 집시 대학살의 역사를 담아낸다. 나치는 유대인만 박해한 것이 아니었다. 동성애자, 부랑자 등도 박해의 대상이었고, 전 유럽의 가난한 소수민족이며 약자에 불과한 집시들을 수용하고 학살했지만, 이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레지스탕스도 집시를 무시했고, 구출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점이 영화에도 그려진다. 예술적 능력이 출중한 유명 뮤지션 장고 또한 본래 나치가 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도 진퇴양난의 순간이 온다. 자유가 국적 그 자체인 집시 뮤지션 장고는 나치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베를린 연주 투어를 거부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그의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부터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박해받는 자신의 민족에 대한 애정으로 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에티엔 코마르 감독은 코르부치 형제 감독의 유명한 스파게티 웨스턴 '장고'(1966)와 타란티노 감독의 리메이크작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의 제목도 장고 라인하르트의 이름에서 왔다고 말한다. 웨스턴 '장고'의 주인공이 왼손을 다쳤기 때문에 이름이 장고라는 것이다.

재즈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 장고 라인하르트는 젊은 시절 화재로 왼쪽 다리와 손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두 손가락이 마비됐으나 불굴의 의지로 세 손가락만 사용하는 독특한 연주법을 개발했다. 지금도 그는 집시들의 전설이자 우상으로 남아 있다. 다음은 에티엔 코마르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나치의 집시박해를 그린 영화가 또 있는가?

- 없다. 토니 가틀리프의 '자유'만 전쟁 시기의 집시 문제를 다루고 있다.

▶ 제천영화제 개막작이지만, 베를린영화제도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한 것은 좋은 일이고 의미 있어 보인다. 나치가 집시를 박해한 사실을 독일이 스스로 반성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 제천영화제에도 개막작으로 왔으니 내 영화는 개막작용 영화인가 보다. 베를린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선택한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영화에서 장고는 베를린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가지 않았다. 결국 50여년 후에 음악가 장고는 내 영화와 함께 베를린에 가게 된 것이다. (웃음)

▶ 아시아에서 일본은 독일과 달리 반성의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는데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나.

- 알고 있다. 독일에게는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일이 아주 중요했고 오래 전부터 추모 반성작업을 훌륭하게 해왔다. 프랑스가 집시박해에 관심을 둔 것보다, 실제로 독일은 그들이 자행한 일을 기억하기 위해 더 크게, 더 많이 자성했다. 예를 들어 베를린에는 나치에 희생된 집시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있다. 한쪽에 유태인 홀로코스트 추모 기념물이, 또 한쪽에 집시 추모 기념물이 있다.

▶ 영화에서 집시 언어가 많이 사용된다. 그들이 모두 집시인지 아니면 전문 배우들인지 궁금하다.

- 그렇다. (주인공을 제외하고) 영화에서 집시언어를 쓰는 그들은 실제 집시들이고 배우가 아니다. 그들은 프랑스 동부에 있는 스트라스부르, 포르바크에서 살고 있는 집시들이다. 그들은 프랑스어와 집시언어를 모두 구사한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아름다운 모험이었다. 제작에 함께 한 집시들에게도, 집시 공동체에도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었다.

▶ 영화 안에 삽입된 음악은 모두 장고 라인하르트의 음악인가.

- 집시를 추모하는 레퀴엠은 재발견된 음악이다. 내 영화의 음악감독 워렌 엘리스에게 부탁해 장고가 작곡한 레퀴엠에 보충하여 그 나머지를 만들게 했다. 처음과 마지막의 오르간 부분이 장고가 작곡한 곡이고, 나머지 콘서트는 워렌 엘리스의 작곡이다. 코러스도 집시들이다. 물론 영화 '장고' 음악의 80% 이상이 장고 라인하르트의 음악이다.

▶ 영화화될 만한 역사적 인물인데 지금까지 장고 라인하르트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 이미 장고 라인하르트에 관한 영화가 나왔어야 했다. 사실 그에 관한 영화 제작은 오래 전부터 시도됐다. 미국 유명 제작자인 프랭크 마샬이 몇 년 전에 장고의 전기영화를 만들려 했다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도 시도되었다. 장고의 팬이었던 우디 앨런도 그에 관한 영화를 만들 계획이 있었지만, 그 대신 세상에서 기타를 가장 잘 연주한다고 믿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스윗 앤 로다운'을 만들었다. 장고 라인하르트 때문에 2인자일 수밖에 없는 숀 펜의 코믹 캐릭터가 등장한다. 장고는 그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그래서 장고 라인하르트의 음악과 삶을 최초로 영화화 한 것에 대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라 기쁘다.

▶ 우리에게는 집시라고 통칭 불리는데 집시민족과 문화도 다양하지 않은가. 장고 라인하르트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 집시, 찌간(tzigane)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정확하게 집시는 남부지역의 집시를 말한다. 영어로 집시는 사실 이집트에서 왔다는 뜻이다. 토니 가틀리프의 영화 '라쵸 드롬'에 잘 그려지고 있듯이, 집시 민족은 인도에서 흘러나와 14~15세기에 소아시아에 이르렀고, 거기서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북부, 독일로 흩어진 이들은 씬티(sinti) 혹은 마누슈(manouche)라 부른다. 장고 가족은 오래 전부터 프랑스와 벨기에 등에 살아온 마누슈 집시의 후손이다. 그래서 그가 연주한 음악은 마누슈 재즈다. 남부 집시는 주로 플라멩코 음악을 연주한다. 집시 민족공동체의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 음악 성격은 더 다양하다. 영화에서 듣는 언어는 마누슈어이다. 그들의 공통언어를 총체적으로 '로마니'(romany)라 하는데, 언어의 70~80 %만 서로 이해하고 나머지는 고유단어로 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영화 '장고'를 연출한 에티엔 코마르 감독(왼쪽)과 이명희 영화평론가. (사진=이명희 영화평론가 제공)

 

▶ 영화의 제목은 어떻게 '장고'인데 이것이 장고 라인하르트의 이름 외에 의미하는 바가 있을까.

- 장고 라인하르트, 그의 진짜 이름은 장이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모든 집시는 한 명도 빠짐없이 자기 이름 외에 별명을 부여받는다. 장고는 그래서 별명이다. 영화에서 장고의 어머니 이름도 네그로스이다. 피부와 머리색이 짙어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 마누슈어로 장고는 '잠에서 깨어나다', '깨우다'라는 뜻이다. 영화 내용과 비춰도 의미 깊은 이름 아닌가. 그의 음악이 사람들을 깨어나게 한다. 의식, 각성, 민족이 겪는 박해에 그 자신이 눈을 뜬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고는 주인공 이름일 뿐 아니라, 영화 내용이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한 것이다.

▶ '장고'라는 영화 제목이 많은데 이 또한 장고 라인하르트와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 장고 라인하르트는 50~6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아주 유명했다. 영화를 만든 코르부치 형제는 장고의 마니아였고 그래서 영화 제목을 '장고'(1966)라고 불렀다. 주인공이 장고처럼 왼손을 다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주인공 이름은 장고 라인하르트의 오마쥬라 볼 수 있다. 내 영화 제목을 '장고'라 했더니,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도 '장고'(2013)인데 왜 하필 같은 이름으로 하느냐며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그러나 타란티노의 영화가 코르부치 영화의 리메이크이며 곧 장고 라인하르트의 이름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이 웨스턴 영화들 때문에 '장고'는 흔한 이름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혀 흔치 않다. 장고는 집시 이름인데, 집시들 사이에서 장고는 대단히 희귀한 이름이다. 그가 너무나 유명하고 존경받고 신화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감히 아무도 그의 이름을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그는 전설이며 신이다. 음악으로 집시의 정신을 살아있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 전기적인 요소를 빼놓을 수 없는 만큼, 음악 외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장고의 자료들을 실제 영화에 참고했다면 어떤 자료였는지 알고 싶다.

- 그를 알았던 사람들의 증언과 문헌자료는 아주 드물고, 구두로 전해지는 소문들만 있다. 서간도, 영화도, 책도, 개인적인 자료도 없다. 심지어 라디오 인터뷰도 없다. 그래서 그가 더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에 관해 남아있는 건 약 400장의 사진, 5분 분량의 영상, 3분 분량의 라디오 자료, 그리고 그의 음악뿐이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그의 음악기획자샤를르 들로네가 책을 쓰기도 했고 역사학자들의 문헌도 있지만, 어디에도 괄목할 만한 자료가 없다. 장고 라인하르트를 기억하는 숭배자들의 논평이 뒤따르겠지만, 시나리오를 그의 가족에게 읽게 했을 때 사실과 다름없음을 인정했다.

▶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장고 라인하르트라는 인물 때문인가 아니면 집시 민족이 겪은 박해의 역사 때문인가.

- 처음엔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적 시기에 처한 음악가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아마 우리 예술가들에게도 공통된 문제일 텐데, 인생의 어느 순간 닥치는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계속 작품활동을 하고 예술 앞에 처신하는지 스스로 궁금했다. 장고의 인생에 관해 읽고 탐구하면서 그의 어려운 순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전쟁 중에 그가 타협했을까, 비겁했을까, 용기가 있었을까, 이 혼란의 상황에서 어떻게 음악을 계속했을까 되물으면서, 바로 내가 다루고 싶었던 주제가 이것이라는 걸 깨닫는 지점이 있었다. 게다가 나도 재즈를 좋아하고 나의 아버지는 장고의 열혈 팬이었다.

▶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시대 속에서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겠다.

- 그의 인생 전체를 말하는 전기영화가 아니라, 역사의 어려운 지점에 선 예술가의 존재에 관해 질문하는 영화다. 우리 주변 모든 게 혼란스러운 오늘날, 우리같은 예술인들, 영화인들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영화를 계속해야 하는가, 음악만 하면 되는가, 예술가는 정치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가 등등. 장고라는 인물에서 내가 흥미있었던 것은 그가 정치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음악만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걸 표현한 것이다.

이명희 평론가의 글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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