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제공)
"니 출세를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게 아냐!"현실과 공명하는 흥미로운 사회파 드라마의 서막을 알리는 클라이맥스 대사였다. 지난 4일 밤 첫 방송된 tvN 드라마 '아르곤'에서다. 이 드라마는 1시간 남짓한 첫 회 러닝타임 안에서, 기교보다는 '뚝심'을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간 덕에 자신의 남다른 가치를 스스로 입증했다.
'탐사보도극'이라는 수식어를 단 '아르곤' 첫 회는 앞으로 풀어갈 기자들의 세계와, 그 안에서 얽히고설키는 이해관계의 단초를 밀도있게 전달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 구조에 배우진의 호연이 덧붙여지면서, 그 여정에는 색다른 설득력이 부여된 모습이다.
평일 자정으로 시간대를 옮긴 방송사 HBC 탐사보도 프로그램 아르곤은 수난의 시대를 맡는다. 방송사 사장의 이해관계와 맞물린 보도로 사과 방송을 하게 된 김백진(김주혁)은 팀원들의 상심을 추스르며 아르곤을 지키려 애쓰고, 이연화(천우희)는 계약만료 6개월을 남겨두고 아르곤팀에 배정 받는다.
이 와중에 수십 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쇼핑몰 미드타운 붕괴 참사가 발생한다. HBC가 방송사간 속보 경쟁에서 뒤쳐지자 보도국장 유명호(이승준)가 이끄는 뉴스나인은 현장 소장 주강호의 과실 탓에 붕괴가 발생했고, 주강호 소장이 대피 방송 한 마디 없이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특종을 무리해서 보도하기에 이른다. 뉴스나인 보도 이후 SNS에서는 주강호 소장을 봤다는 사진이 줄줄이 올라오며 비난 여론이 들끓는다.
이에 아르곤팀장 김백진은 뉴스나인 보도 내용에 따르라는 상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에게 사실 관계를 찾아오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사고 원인을 분석해 줄 전문가들이 대중의 움직임에 압도돼 아르곤 출연을 취소하면서 김백진은 더욱 궁지에 몰린다. 그 사이 이연화는 주강호 소장이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된 주차장 건설을 반대해 왔다는 증거와 증언을 확보한다. 이연화가 찾은 팩트에 힘입어 김백진은 주강호 책임론을 제시한 자사 보도를 반박하기로 결정한다.
이로 인해 생방송이 진행되는 스튜디오에서는 김백진과 보도국장 유명호를 비롯해 뉴스나인과 아르곤 팀원들의 몸싸움까지 벌어진다. 그런데 이때 실종된 어린 아이를 지키려다 사망한 주강호 소장의 시신이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극단으로 치닫던 사태는 막을 내린다.
◇ "들풀은 밟혀도 진실은 밟히지 않는다…그러니 더욱 꼿꼿이 일어서야 한다"
(사진=tvN 제공)
8부작으로 기획된 이 드라마는 공교롭게도 KBS와 MBC가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5년 만에 동시 총파업에 들어간 첫날 첫선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를 대하는 언론계 군상은 지난 10년간 켜켜이 쌓여 온 한국 사회의 모순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첫 회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속보 경쟁에 밀려 상부의 질타를 받게 된 보도국장 유명호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정부 측 고위인사와 손잡고 사건의 프레임을 엉뚱하게 바꿔 버리는 과정이다. 그렇게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정부의 미흡한 사태 수습은, 언론사 간부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든다. 그리고 부당한 프레임 전환에 저항하는 아르곤팀의 움직임은 회사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억압당한다.
이는 지난 10년간 극단으로 치달아 온 '정언유착' '경언유착'이라는 지울 수 없는 흑역사 탓에 국민의 신뢰를 잃은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그간 많은 언론인들은 전근대적이고 반민주적인 정권의 비호를 받은 일부 언론사 언론사 경영진·언론인들에게 저항하면서 쓰디쓴 패배를 맛봤다. 이 과정은 최근 개봉해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세를 보이고 있는 '공범자들'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아르곤' 첫 회 말미, 아르곤팀의 뒤풀이 자리에 초대받지 못해 홀로 남은 이연화가 목격한, 마지막까지 사무실에 홀로 남아 사고 인명현황판을 보던 중 주강호 소장 아내의 감사 전화를 받는 김백진의 모습은 말한다. 그리고 "뉴스에서 자막으로 휙 지나가는 이름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란 걸 알려주자" "던져주는 대로 받아 쓸 거면 기자를 왜 해?" "들풀은 밟혀도 진실은 밟히지 않는다. 그러니 더욱 꼿꼿이 일어서야 한다" 등의 대사 역시 말한다. 언론의 눈과 발이 향해야 할 곳은 '위'가 아니라 '아래'라는 것을.
첫 회 평균 시청률 2.5%(닐슨코리아·유료플랫폼·전국 기준)로 순항을 알린 '아르곤'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