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불금파티 참석자들이 'KBS·MBC를 국민의 품으로!'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지난 2012년, KBS-MBC-YTN-연합뉴스 등 언론사들은 '공동 총파업'에 나섰다. 이명박 정권 내내 이어졌던 언론장악 시도에 맞서, 불공정 보도를 주도한 경영진 퇴진과 '언론 정상화'를 위해 싸웠다.
꼭 5년 만에, 언론사 동시 총파업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권력 견제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가받아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은 두 공영방송 KBS-MBC가 그 주인공이다.
◇ KBS 양대 노조, 4일-7일 순차적 총파업우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와 KBS노동조합(위원장 이현진, 이하 KBS노조)은 각각 4일 0시, 7일 0시부터 노조원 전면 총파업에 들어간다.
이때 양대 노조는 따로 투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교섭대표노조 KBS노조가 지난 2월 28일 24시부로 잠정 중단했던 쟁의행위를 '재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양대 노조는 지난해 11월 투표를 벌여 85.5%(투표인원 대비)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가결한 바 있다.
총파업 명분은 '방송법 개정과 공정방송 사수, 단체협약 쟁취'다. 공정방송을 저해해 온 고대영 사장 등 경영진 퇴진도 요구에 포함된다.
KBS기자협회는 지난 28일 0시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사진은 같은 날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계단에서 열린 '고대영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출정식'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
앞서 KBS기자협회와 KBS전국기자협회가 각각 28일, 29일 0시에 제작거부를 시작해 총 470명이 일손을 놓았다. KBS PD협회는 오늘(30일) 7시부터 제작거부에 돌입하며, 이를 알리는 출정식을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계단에서 개최한다.
보직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KBS PD 88명은 "도저히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온전히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며 29일 오후 6시부터 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부서별로 보면 방송본부 22명, 제작본부 35명, 제작본부(라디오) 9명, 전략기획실·보도본부(스포츠)·미래사업본부·시청자본부 11명, 지역총국 11명으로, 이는 팀장·부장 PD들의 95%에 달한다.
KBS 기자 보직자(부장·팀장·앵커) 23명 일동은 지난 7일 '자신과 KBS를 지키는 길, 사퇴뿐이다'라는 성명을 내어 보직사퇴를 예고했으며, KBS 30기(14년차) 이상 기자 118명 일동도 고대영 사장의 보직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 언론노조 MBC본부, '역대 최고' 93.2% 찬성률로 총파업 가결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가 '블랙리스트 노조파괴 저지 및 공정방송 단체협약 체결 쟁의행위 확대'를 걸고 지난 24일부터 29일까지 진행한 총파업 투표는 93.2%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이는 MBC본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다. 파업 돌입 시점은 9월 4일쯤으로 점쳐진다.
MBC는 총파업 투표가 가결되기 약 한 달 전부터 직군과 부서를 불문한 제작거부가 확산 진행되고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 눈물 삭제', 'MB 비판 후 부당전보', '국정원 아이템 불허' 등 일상적인 제작자율성 침해를 고발하며 지난달 21일부터 일손을 내려놓은 'PD수첩' PD들이 그 시발점이었다.
회사 정책 친화도와 노조 경력 등을 기준으로 카메라기자들을 4등급으로 분류해 인사 불이익을 준 정황이 드러난 '블랙리스트'('카메라기자 성향분석표', '요주의인물 성향')의 존재가 밝혀진 후에는 카메라기자들도 제작을 멈췄다.
MBC 보도국 기자들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상암MBC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사진=이한형 기자)
제작거부 물결은 시사제작국 기자·PD들, 콘텐츠제작국 PD들, 보도국 취재기자들, 비 보도국 소속 기자들, 아나운서들, 편성PD들, 라디오PD들까지 이어져 현재 400여 명의 구성원들이 참여 중이다. 드라마PD, 예능PD들 역시 제작거부를 이미 결의했고, 돌입 시점만 정하지 않았다.
또한 서울MBC를 제외한 각 지역 기자들이 모여있는 전국MBC기자회는 지난 14일부터 서울MBC로의 기사송고를 거부했고, 28일에는 255명이 실명을 걸고 '공정보도·방송독립 쟁취를 위한 전면 투쟁'을 선언했다.
MBC에서도 보직간부들의 사퇴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3일 나온 MBC본부 노보 231호에 따르면, 최근 조합 가입이 늘어 서울MBC 노조원 수 1천 명을 다시 돌파했다.
최재혁 취재센터장, 보도국 이동애 국제부장, 황외진 뉴미디어뉴스편집부장, 민운기 콘텐츠제작2부장, 김형윤 시사제작3부장, 논설위원실 소속 논설위원 6명, 보도부문 국·부국장금 최고참 9명 등이 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임정환 보도NPS준비센터장도 제작거부와 보직사퇴 의사를 공식화했다.
◇ "권력의 공영방송 점령에 맞서는 파업"MBC본부의 파업 돌입 시점이 내달 4일로 정해질 경우, KBS-MBC는 '동시 총파업'을 하게 된다. 2012년에는 시작 날짜까지 겹치지는 않았다. 4일이 아니어도 MBC본부가 9월 초에 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연대 파업'은 사실상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이미 KBS 새노조와 MBC본부는 지난달 21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불금파티'를 열어 '공영방송 정상화'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기도 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재호 본부장, MBC본부 김연국 본부장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새노조 성재호 본부장은 "감격스럽다. 사실 저희는 이번 파업이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에게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과거의 죄는 둘째 치고 앞으로도 KBS, MBC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구성원들이) 당신들(고대영·김장겸)을 다 부정하고 일을 놓았으니 마지막 경고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절대로 이기기 전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적폐청산을 통해 KBS-MBC를 국민의 품으로 돌리는 것이 가장 첫 번째"라며 "다시는 방송이 짓밟히지 않고 우리(공영방송)가 다시 설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본부 김연국 본부장은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공영방송을 망가뜨리려는 권력의 노골적이고 집요한 점령 작전이 진행됐다"며 "양대 공영방송의 파업 시기가 우연히 겹친 것 같지만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새노조와) 꾸준히 내부 상황에 대해 공유하고 함께 도울 수 있으면 돕자는 얘기를 했다"면서 "(지난 9년 동안) 우리 사회가 쌓아올렸던 언론자유나 민주주의, 연대의 가치가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점들을 근본부터 점검해 다시는 언론자유가 무너지지 않게 하고 싶다. 우리 안의 취약점을 돌이켜보고 공영방송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진짜 주인인 국민에게 복무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는 파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새노조는 오늘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 새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댓글 공작 청와대 개입 특종 보도'를 KBS 보도국이 막았다는 내용을 폭로할 예정이다.
MBC본부는 같은 날 오전 11시 4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로비에서 총파업 투·개표 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상암동이 아닌 외곽 지역, 이른바 '유배지'로 부당전보된 노조원 30여 명과 해직자들이 참여하는 집회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