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소속 라디오PD들이 오늘(28일) 오전 5시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감에 따라 '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를 비롯해 MBC라디오 FM 4U 다수 프로그램이 결방됐다. (사진=MBC라디오 홈페이지 캡처)
'세상을 여는 아침 이재은입니다'(05:00~), '굿모닝FM 노홍철입니다'(07:00~),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09:00~), '이루마의 골든디스크'(11:00~),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12:00~), '두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14:00~), '오후의 발견, 김현철입니다'(16:00~), '배철수의 음악캠프'(18:00~), '정유미의 FM데이트'(20:00~),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22:00~), '푸른 밤 이동진입니다'(29일 0:00~), '미쓰라의 야간개장'(29일 02:00~), '이주연의 영화음악'(29일 03:00~), '비포 선라이즈 허일후입니다'(29일 04:00~)MBC 라디오 PD들이 오늘(28일) 오전 5시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감에 따라 결방했거나 결방 예정인 MBC FM4U 프로그램 목록이다. 28일 오전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결방된 MBC 라디오 프로그램명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MBC 라디오PD들은 지난 21일 총회를 열어 제작거부 및 총파업 참여를 결의했고, "제작자율성 말살의 최종책임자인 김장겸 사장,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백종문 부사장, 그리고 라디오 추락의 주범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은 사퇴하라"는 성명으로 28일 제작거부 돌입을 알린 바 있다.
'PD수첩' 제작진, 보도국 취재기자들, 보도국 밖 기자들, 카메라기자들, 콘텐츠제작국PD, 시사제작국 기자·PD들, 편성국PD들이 그랬듯, MBC 라디오PD들도 사측 간부들의 부당한 지시를 받아왔고 무수한 아이템 검열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MBC 라디오PD들은 2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거부에 돌입하게 된 배경과 그간 있었던 부당 검열 사례를 공개했다.
◇ 세월호 참사 관련 대통령 언급 한 번에 담당PD 추궁 당해
MBC 라디오PD들은 2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부들의 부당검열 사례를 공개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제공)
라디오PD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MBC TV뿐 아니라 라디오에서도 함부로 나가서는 안 되는 아이템이었다. 2014년 4월 16일부터 참사 이후 한 달 정도까지는 제작자율성이 보장됐지만 5월 중순부터 축소돼 민간잠수부, 구조 참여자 등의 연결은 금지됐고 1주기 추모방송 등에 대해서도 통제가 심했다는 설명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4월 16일, 표준FM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는 별도의 특집을 기획하지는 않았다. 담당 부장이 "세월호 특집은 가급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평일 구성대로 하면서 세월호 관련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던 중 진행자인 강석우 씨가 즉석에서 "빨리 수습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런데 대통령은 어디 밖에 나가신다고 그러고, 국무총리는 이상한 일에 연루되어서 공백상태가 될 거 같고… 그럼 이거 해결이 되겠습니까? 결정권자가 없는데…"라고 말했다.
이에 노혁진 당시 라디오국장은 생방송 중이었던 담당PD를 국장실로 호출해 발언 경위를 추궁하면서 방송 통원고(전문) 제출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유족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면 '감정적인 반응 왜 듣냐. 언제까지 조문방송할 거냐'고 막아서 점점 위축됐다"는 표준FM '세계는 우리는' 전 담당PD의 증언이나, "민간잠수부나 민간 전문가를 연결하지 못하게 하니 어쩔 수 없이 해경이나 해수부 등 정부 측 사람들을 연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시사 프로그램 작가의 증언도 '세월호 아이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뒷받침한다.
같은 날 표준FM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20여 명을 구조한 어민을 만나 참사 당시의 상황과 심정을 상세히 취재·구성했으나 3차례에 걸친 사전시사로 '정부', '해경', '헬기'라는 단어가 삭제됐고 '세월호 기름 유출로 미역 양식에 어려움을 겪는 사연'만 강조됐다.
세월호 추모를 의미하는 노란리본. MBC라디오에서 세월호는 대표적인 금기 아이템이었다. (사진=황진환 기자)
'그건 이렇습니다 이재용입니다'에서는 세월호 기록단 활동을 한 박민규 다큐 감독 인터뷰가 취소됐다. 노 국장이 "이 사람은 내가 아는데 위험한 사람"이라며 인터뷰 취소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라디오PD들은 '위안부 합의' 또한 세월호와 함께 대표적인 금기 아이템이었다고 기억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1년 동안 표준FM '신동호의 시선집중'은 3회, '세계는 우리는'은 2회밖에 다루지 못했다. 같은 기간 타사 시사 프로그램인 CBS '김현정의 뉴스쇼'가 총 20회를 방송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3월 18일 '세계는 우리는'은 일본 교과서에서 독도 영유권 관련 주장이 는다는 아이템으로 전문가 인터뷰를 기획했다. 하지만 노 국장이 "한일 역사문제를 다루다 보면 위안부 문제와 엮이게 되어 민감해지니 자제합시다"라며 아이템 변경을 지시했다는 게 PD들의 설명이다.
라디오PD들은 또한 지난해 2월 25일 '이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도 위안부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귀향'의 배우 임성철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나, 노 국장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 등 관련 내용을 대폭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 출연 배제, 목소리 삭제 등 부당 지시 이어져MBC라디오에서 금기시되었던 건 특정 아이템만이 아니었다. MBC본부 소속으로 2012년 170일 파업에 참여했던 아나운서들에 대한 '출연 배제'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실제로 2012년 파업 이후 회사의 '간판'이었던 오상진·박혜진·문지애 등 다수 아나운서는 TV뿐 아니라 라디오 출연까지 제한됐고, 결국 이들은 퇴사했다.
라디오PD들은 김소영·손정은·최현정 아나운서도 간부들의 부당 개입 피해자라고 전했다. 김 아나운서의 경우 지난해 9월 가을 개편 당시 '두시의 데이트 지석진입니다'에서 해외토픽을 소재로 한 오락 코너 진행자로 섭외했으나 임원회의 과정을 거치면서 출연 불가 결정이 났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MBC 김소영 아나운서, 최현정 아나운서, 손정은 아나운서. 김소영, 최현정 아나운서는 퇴사했다. (사진=MBC 제공)
최 아나운서는 2015년 1월, 제작진 의사에 따라 신설 프로그램 '여행의 맛' 코너 내레이터로 선정됐으나 라디오 국·부장단 회의를 통해 '불허' 통보를 받았다.
손 아나운서는 프로그램명을 말하는 짧은 음성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라디오PD들은 "지난해 3월부터 '세계는 우리는'의 코너 타이틀, 중간 ID 등을 손 아나운서 목소리로 녹음해 방송했으나 4월 중순에 손 아나운서 목소리를 모두 빼라는 지시가 왔다"고 밝혔다. 당시 담당PD는 "단 5초, 10초도 방송하면 안 된다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경영진의 뜻에 맞는다는 이유로 방송 기회를 얻은 사례도 있었다. 라디오PD들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메이크업 담당이었던 김모 씨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는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에서 패션 관련 코너에 3개월 간 고정출연했고, '굿모닝FM 전현무입니다'에도 1회 출연했으며, 심야~새벽시간대 프로그램에도 총 4회 출연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과 함께 정치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C 씨는 2015년 가을 개편 때 주말 정보 프로그램의 새로운 MC로 결정됐고, 이듬해 가을 다른 정보 프로그램의 코너 고정 출연자로 6개월 간 출연했다. 라디오PD들은 "국장 지시를 받은 담당 부장이 C 씨에게 고정 코너를 맡겼으면 좋겠다고 PD에게 말했고, 결과적으로 코너가 기획되기도 전에 고정출연자로 선정된 이례적인 경우"라고 지적했다.
안광한 MBC 사장 취임 직후인 2014년 4월 녹음된 '백종문 녹취록'에 등장하는 극우매체 '폴리뷰' 편집국장인 박한명 씨는 백종문 당시 미래전략본부장에게 직접 출연을 청탁해 2014년 12월 26일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나왔다. 그는 2015년 2월 10일 '100분 토론' 667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 지속적인 부당노동행위·편성규약 위반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한 2015년 9월 5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 (사진='뉴스데스크' 캡처)
라디오PD들은 사측 간부들이 사원을 뽑을 때와 뽑고 난 후에 부당노동행위를 지속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 경력PD 입사 면접 당시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천막을 언제 걷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거나, "박원순 시장 아들 관련 MBC 보도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입사 전 직장에서의 노조 경력과 노조에 대한 견해도 면접 질문 중 하나였다.
라디오PD들은 또한 2015년 11월 노 국장이 신규입사자 전원을 회의실로 불러 언론노조의 규약을 보여주며 '노조가 정치적인 중립을 어겼다. 민주노총 소속이다.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하지 않는 정치노조라서 잘못돼 있다'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너희는 라디오PD로 뽑힌 게 아니"라며 "다른 부서에서도 일할 수 있다"고 반복 언급해 전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는 게 라디오PD들의 전언이다.
라디오PD들에 따르면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은 최근까지도 시사 프로그램 PD, 작가들에게 메신저로 방송 관련 메시지(진보 성향 출연자 인터뷰에 대한 경고, 뉴데일리 등 특정 매체 기사 포워딩)를 수시로 보내 '방송 내용에 대한 최종 책임은 국장에게 있다'고 명시한 MBC 편성규약 제5조 3항을 위반했다.
라디오PD들은 "그간 MBC라디오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추락을 거듭해 왔다"며 "MBC 라디오PD들의 제작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당했고, 세월호와 위안부, 국정농단 같은 중요한 이슈들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신입 PD들의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고, 일부 PD들을 일방적으로 전출시키는가 하면, PD 개인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까지 바꾸라고 요구하는 등, 도를 넘는 부당노동행위도 만연했다"고 고백했다.
라디오PD들은 "이 싸움(제작거부)은 MBC 라디오가 잃어버린 청취자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는 첫 걸음이며, 망가진 MBC라디오를 다시 세우는 긴 길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MBC본부는 지난 24일 오전 6시부터 오는 29일 오후 6시까지 '블랙리스트 노조파괴 저지', '공정방송 단체협약 체결 쟁의행위 확대'를 걸고 총파업 투표를 진행 중이다. 투표 종료 후 빠르면 9월 초에 총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28일 오후 6시 20분 현재 MBC 제작거부 상황은 다음과 같다.
△MBC 'PD수첩' PD들 제작거부(39일째) △MBC 시사제작국 기자·PD들 제작거부(26일째) △MBC영상기자회(카메라기자들)·콘텐츠제작국 제작거부(20일째) △MBC 보도국 취재기자들 제작거부(18일째) △전국MBC기자회 서울MBC로의 기사송고 거부(15일째) △MBC 보도국 밖 기자들 제작거부(12일째) △MBC 라디오국·편성국PD들 제작거부(1일째) △MBC예능국·드라마국 PD들은 제작거부 결의 후 돌입 시점 조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