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서 주인공 우아진 역을 맡은 배우 김희선 (사진=힌지엔터테인먼트 제공)
탁월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전직 스튜어디스 출신 전업주부. ㈜대성펄프의 창업자 아들과 결혼한 재벌집 며느리.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럭셔리한 삶을 사는, 이름마저 우아한 '우아진'.
지난 19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의 주인공 우아진 역을 배우 김희선이 맡는다고 했을 때,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시아버지 안태동(김용건 분) 간병인으로 고용된 욕망 가득한 캐릭터 박복자(김선아 분)를 만난 이후부터 '우아한' 삶에 뜻밖의 균열을 맞게 되는 우아진을, 김희선은 마치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능숙하게 소화해 냈다. 여기저기서 '김희선의 재발견'이란 기사가 쏟아질 정도로.
'품위있는 그녀' 종영 3일 전인 지난 16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희선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재발견'이라는 표현에 "20년째 재발견되고 있다"고 응수하는 그에게선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김희선도 첫 회 시청률을 보고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작품이 잘 돼서 다행이라는 안도 섞인 말이 인터뷰 도중 몇 번이나 튀어나왔다.
◇ "본방사수 인증샷 보며 인기 실감"
'품위있는 그녀'는 100% 사전제작 드라마로, 지난 6월 제작발표회 당시에도 촬영은 모두 끝난 채로 편집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6월 16일 첫 방송을, 김희선은 재미있게 보았다고 회상했다. 2015년작 '앵그리 맘' 이후 2년 만에 복귀한 김희선은, 당연히 시청률을 그 누구보다도 궁금해 했다. 결과는 2.04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였다. 기대 이하 정도가 아니라 '충격' 수준이었다.
"저는 1회를 열심히 봤어요. 떨리니까 4~5시에 깼다가 겨우 잠들었다 다시 눈 빨개진 채로 확인했는데도 2%니까 더 실망을 한 거죠. 제가 잘못 봤나 했어요. 그럴 정도로 안 믿겼는데. 처음이니까…"
김희선은 나왔다 하면 20~3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90년대의 대표적인 청춘스타였다. 201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지만, 종편 드라마는 처음이었기에 2%대라는 시청률은 더욱 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김희선은 "애국가 시청률만 해도 4~5%라던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아무리 종편이어도 2%대가 나오니 적응이 안 되는 거다. 이 기회를 통해 은퇴하란 얘긴가, 별별 생각이 다 들고 되게 힘들었다. 1회가 재밌길래 나름 기대를 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너무 안 나오니까 너무너무 속상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물론 작품(완성도)만 보면 배우들이 만족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의) 시청률을 보면 사기가 떨어질 것 같다. 저야 사전제작이라 영향을 덜 받지만 촬영 중간에 시청률이 안 나오면 배우들이 아무리 현장에서 으쌰으쌰하려고 해도 속이 탄다. 제 손을 떠난 시청률이지만 무시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품위 있는 그녀'는 입체적인 캐릭터와 얽히고 설킨 관계에서 오는 재미, 상류층 사회에 대한 블랙코미디적인 묘사, 박복자를 죽인 범인을 찾는 추리 등이 잘 어우러져 날이 갈수록 시청률이 올랐다. 인터뷰 당시 가장 최근에 나온 시청률이 9.74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달했다.
금토드라마로서 확실히 자리 잡아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김희선에게도 전해졌다. 인스타그램 유저이기도 한 그는 '품위있는 그녀' 본방사수 인증샷과 '우아진 헤어', '우아진 액세서리'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글들을 보며 인기를 실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사실 (드라마) 반응이 없으면, 귀걸이가 보이겠어요? 신발이 보이겠어요?"
결말에 대해 질문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도 인기를 느꼈다고. 어느 날은 식당에 갔는데 종업원이 화장실까지 따라오더니 자신한테만 말해달라고 요청했단다.
◇ "이슈 될 만한 게 없어 걱정했지만…"
배우 김희선 (사진=힌지엔터테인먼트 제공)
김희선은 어느덧 20년차를 훌쩍 넘긴, 만만치 않은 경력의 배우다. 소위 말하는 히트작도 많다. 스타성, 화제성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고 연기력에 대한 대중의 평가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상황. 이쯤되면 잘될 것 같은 작품은 촉이 바로 오지 않을까.
"모든 작품을 할 때 모든 배우들이 그런 생각 안 할까. 누가 안 될 걸 생각하고 들어가겠나"라고 답한 그였지만 초반에는 우려됐던 게 사실이었다. 투톱 주인공인 자신과 김선아가 20년차 이상의 배우라 이미 대중에게 익숙하고, 소위 '이슈 거리'가 없는 것 같아 많이 봐 줄까 고민했다는 것이다.
김희선의 설명에 따르면, '품위있는 그녀'는 갓 데뷔한 핫한 신인도 아니고, 20년 동안 이 세상의 인터뷰를 천 번은 했을 정도로 시청자들은 이미 '김희선'이라는 배우를 뼛속까지 알고 있고, 그 흔한 아이돌도 안 나오고, 로맨스는 없고 다 불륜만 있는 드라마였다. '비밀병기'가 없는데 뭘로 승부를 볼까 궁금한.
동시에 '품위있는 그녀'는 기본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었다. 스토리 좋고, 연출 좋고, 다들 연기를 너무나 잘하는 배우들로 구성된. 그래서 걱정은 접고, 마음을 다잡았다.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하고.
"다행히 미경언니(백미경 작가)가 워낙 저를 잘 봐 주셨어요. 언니는 딱 제가 할 수 있는 몫만큼만 주세요. 너무 우아진스럽게만 가면 인간미도 없어 보이고 제가 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지 중간에 엉뚱하고 어이없는 김희선의 모습을 넣어서 잘 섞어 주세요. 여배우를 잘 이해하고 그런 게 있었어요. 제가 할 것을 딱딱 짚어서 (대본을) 잘 써 줬어요."
김희선은 '품위있는 그녀'가 작은 배역들에게까지 저마다의 스토리를 부여해 시청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한 점을 '품위있는 그녀'의 매력으로 꼽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막장인 듯 막장 아닌 막장 같은 것"이랄까.
김희선은 "각자의 모든 입장에서 보면 '저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사정이 나온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 우리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악역이라도 욕을 덜 먹는 것 같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절대 악은 없는, 그런 게 좋은 것 같다"고 부연했다.
"조연, 단역이라도 다 그들만의 스토리가 있었어요. (보통 드라마에서는) 만약 주인공의 룸메이트가 드라마에 나와도 어떻게 해서 룸메이트가 됐는지 그런 스토리가 잘 없잖아요. (…) 개연성 있는 사연들이 있어서 각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돼서 다 각자 스토리로 연기를 한 것 같아요. 대사로도 그 인물의 스토리가 다 나오고요. 그럼 배우들은 (대사를 통해) 과거를 상상할 수 있는 거죠. 또 배우들이 다 워낙에 잘하는 분들이기도 했고요."
물론 흥미로운 줄거리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품위있는 그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였지만, 내용은 범상치 않았다. 한 여성이 부유한 집안에 들어와 부모 뻘인 남성을 유혹한다거나, 딸아이의 미술 선생님과 남편이 바람이 난다거나 하는 줄기는 자극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늘 뻔한 얘기만 나오면 누가 보겠나"라는 게 김희선의 생각이다.
(노컷 인터뷰 ② '품위녀' 김희선 "삶은 똑같아요. 촬영할 때만 배우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