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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이 한일관계에 찬물? 일본, 부끄러움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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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 조각한 김서경 김운성 부부 조각가

- 예쁘게 채색한 소녀상, 151번 버스에 타다
- 제대로 된 정부에서, 소녀상도 일상의 평화 누려
- "일본 정신 차리게 하려고 조각을 했습니다"
- "할머니가 아니라, 꿈을 뺏긴 소녀로 보였어요"
- 소녀의 끊긴 머리카락, 주먹, 발 뒤꿈치, 나비의 상징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5)
■ 방송일 : 2017년 08월 14일 (금)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서경, 김운성 작가 (위안부 소녀상 조각가)

◇ 정관용> 오늘부터 9월 말까지 서울에는 아주 특별한 버스 몇 대가 운행됩니다. 실제 사람 크기의 위안부 소녀상이 타고 있는 151번 버스, 서울시 곳곳을 누비게 된다는데요.

이 소녀상을 비롯해서 여러 개의 아주 의미 있는 조각상을 만드신 분이죠. 김서경, 김운성 부부 작가. 오늘 스튜디오에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운성>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 버스에 이미 타고 계신 거죠? 소녀상이.

◆ 김운성> 네, 맞습니다. 45일간.

◇ 정관용> 계속 타고 있는 거죠?

◆ 김서경> 뒤에 뒤에 자리.

◇ 정관용> 뒤에 뒤에 자리? 놀랄 수 있겠어요, 사람들이 타다가.

◆ 김운성> 그러게 말입니다. 아시는 분은 좀 반가워 하실 테고요. 모르시는 분은 깜짝 놀라실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럴 것 같아요. 진짜 사람인가 하고.. 평화의 소녀상이죠, 이름이?

◆ 김운성> 이름이 두 가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 정신대 문제대책협의회에서 이 상을 세우려고 했던 게 아니고 비석을, 할머님들 1000일 수요집회 비석을 세우려고 해서, 그 비석이름이 평화비입니다. 정대협에서는 평화비라고 부르고 저희들은 이제 이게 비석은 아니기 때문에 소녀상이기 때문에 '평화의 소녀상'으로 저희들은 명명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평화의 소녀상은 의자에 앉아 있는 그 모습이잖아요.

◆ 김운성>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러면 버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니까 사실은 또 똑같은 겁니까? 조금 다르게 만드셨어요, 똑같이 만드셨어요?

◆ 김운성> 똑같은 건데 채색이 다르고 재료가 다릅니다.

◇ 정관용> 어떻게 달라요?

◆ 김운성> 평화의 소녀상,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것은 청동상이고요. 이 버스에 탄 것은 무거운 것을 거기다 올려놓을 수 없으니까 합성수지 재료로 해서 채색을 좀 예쁘게 채색을 한 겁니다.

◇ 정관용>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건 그냥 구릿빛이죠?

◆ 김운성> 맞습니다.

◇ 정관용> 청동 구릿빛인데 여기는 색을 일부러 입히셨다.

◆ 김운성> 그렇죠.

◇ 정관용> 어떤 색으로? 치마저고리?

◆ 김운성> 그렇죠. 치마저고리.

◆ 김서경> 회색치마에 약간의 베이지색 저고리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색깔도 제대로 사람의 머리색깔에 가까운 색깔로 했고요. 그리고 눈, 코, 입을 좀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눈썹도 그려드리고 입술도 약간 연한 연지를 발랐습니다.

◇ 정관용> 151번 버스에 모두 몇...

◆ 김서경> 5대 있고요. 다섯 분이 계속 타고 계십니다. 그래서 45일간 타고 계실 예정이고요. 그 이후에는 어떤 분이 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분께서 고향을 내려가실 때 소녀상과 함께 고향을 내려가서 부산, 목포, 전주, 대전, 대구 이런 곳에 들러서 저희가 만든 소녀상이 있는 곳까지 가서 옆 좌석에 앉아서 한번 함께 동행을 한 번 해보고 다시 돌아오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9월 말까지니까 10월 초, 추석 때. 할머님들 고향 가실 때 같이 간다 그 얘기로군요.

◆ 김서경> 네.

◇ 정관용> 이런 멋진 아이디어를 누가 냈어요?

◆ 김운성> 동아운수, 그 151번 버스하는 그 사장님께서 갑자기 연락이 오셔서 저희들하고 이런 걸 해 보자고 하셔서 아주 기쁘게 감사히 받고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분이 뭐라고 제안했어요, 처음에?

◆ 김운성> 그분이 저희 대학 동기입니다. 30년 만에 연락이 와서.

◇ 정관용> 원래 알던 친구예요?

◆ 김운성> 그렇죠. 저희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이고 거기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입니다. 수업을 같이 받았거든요. 갑자기 연락이 와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바로 본인이 버스회사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소녀상을 태워 가지고 이렇게 좀 자연스럽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떻겠냐. 그렇게 제안이 와서 저희들은 너무 감사하게 받았죠.

◇ 정관용> 그러면 그건 그 버스에 올라타시는 많은 분들한테 보여주고 싶다 그런 거죠?

◆ 김서경> 그렇죠.

◆ 김서경> 보여주고 싶다기보다는 좀 알리고 싶다. 본인도 함께하고 싶다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소녀가 매일매일 표를 끊고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카드로 찍고 들어가요.

◇ 정관용> 카드는 누구 거예요?

◆ 김서경> 그건 소녀를 위해서 하나 만드셨대요. 그래서 5장의 카드가 매일매일 찍히고요.

◇ 정관용> 유료 탑승이군요?(웃음)

◆ 김운성> 맞습니다.(웃음)

◆ 김서경> 그리고 소녀가 한 명의 승객으로 그 자리에 계십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그 버스를 같이 이용하시는 분들이 어, 이거 소녀상 있네 하면서 우리 역사도 생각하고 그런 계기를 만들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겠죠, 사장님이.

◆ 김운성> 그렇죠. 그런데 저희들이 조금 더 의미를 둬서,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굉장히 억압적인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니까 일상이 억압과 강제의 시기였는데 지금은 대한민국의 정부가 제대로 있고 우리나라 땅에 우리가 평화스럽게 일상을 평화스럽게 다닐 수 있는 곳이고 그런 속에서 지금 버스 타고 자연스럽게 다니면서 일상의 평화. 이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정관용> 그 할머님들의 일상의 평화. 서울 구경도 마음껏 하시라.

◆ 김운성> 맞습니다.

◇ 정관용> 이 버스회사 사장님 칭찬 좀 해 드려야 되니까 아예 151번 노선 좀 알려주세요. 어디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지금?

◆ 김서경> 일단 수유리를 거쳐서요. 조계사 앞을 지나서 중대를 갔다가 거기서 돌아서 다시 수유리까지 가는 코스예요.

◇ 정관용> 굉장히 기네요.

◆ 김서경> 네, 맞습니다. 한 3시간 20분을 왕복을 한다고 합니다.

◇ 정관용> 수유리, 시내 한복판 조계사 그리고 중앙대학교까지.

◆ 김서경> 그리고 조계사 앞에서 <아리랑>이라는 음악을 틀어드리고요.

◇ 정관용> 그래요?

◆ 김서경> 오다 가다. . . 아리랑이라는 음악인데 영화 <귀향>에 나왔던 음악입니다.

◇ 정관용> 조계사 앞에쯤 가면 그 음악이 딱 나온다. 그러면 그 기사분께서 우리 CBS 라디오 같은 방송을 틀어놓으셨다가 조계사 앞에 가면 바꾸시는군요.

◆ 김운성> 맞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김운성, 김서경 부부작가께서는 이 소녀상 하고 지금 벌써 몇 년째입니까?

◆ 김서경> 6년째 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6년째요? 맨처음 만드신 게 그러니까 딱 6년 전이에요?

◆ 김서경> 네, 2011년 12월 14일날 저희가 1000회 수요집회를 기리면서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게 처음이거든요. 6년째 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그것도 정대협 측의 제안이었습니까? 아니면 우리 김운성 작가께서 내가 지금 해 보고 싶다 하신 겁니까?

◆ 김운성> 저희가 91년도에 김학선 할머니께서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그러고 나서 2011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깜짝 놀라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저희들이 부끄럽고 반성을 해서 저희가 정대협을 찾아가서...

◇ 정관용> 직접 찾아가셔서.

◆ 김운성> 제가 미안함을 덜고 싶은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라고 했더니 그때 비석을, 비석 디자인을 해 달라고 해서 비석 디자인을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하는 이런 정말 말도 안 되는 그런 것이 들렸고.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둘이 다시 정대협을 찾아가서 비석 갖고 일본을 정신 차리게 못할 테니까 조금 더 정신차리게 하려면 좀 예술적으로 조각을 해 가지고 그 앞에 놓자라고 해서 시작해서 소녀상까지 된 겁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러니까 이건 철저히 김운성 작가님의 아이디어였던 거죠.

◆ 김운성> 맨 처음에 시발점을 제가 걸고 그다음에 소녀상으로 나온 것은 김서경 작가가 안을 또 내고.

◆ 김서경> 저는 할머님을 봤을 때 할머님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꿈을 빼앗겨버린 그리고 꿈을 착취당해버린 꿈이 수탈되어버린 그런 소녀로 보였거든요.

그래서 그런 모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요. 그리고 소녀상을 해서 세상에 알려야지만 그 피해자에 대한 본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소녀를 택하게 됐습니다.

◇ 정관용> 알고 계신 분들도 많습니다마는. 그 그 소녀상의 모습 하나하나에도 예를 들면 새가 한 마리, 그다음에 발의 모습, 머릿결, 이런 게 다 의미가 있다라고 하잖아요. 그것 좀 설명해 주세요.

김서경(왼쪽), 김운성(오른쪽) 작가(사진=시사자키)

 


◆ 김서경> 처음부터 이제 소녀상이 이런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소녀가 할머님들처럼 그 자리에 앉아서 수요집회를 진행하는 곳에.

◇ 정관용> 함께하고 있다.

◆ 김서경> 함께하고 있다라는 것에 시작을 했었는데. 일본의 압력으로 해서 점점 바뀐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처음에 소녀상은 손을 다소곳하게 손을 이러고.

◇ 정관용> 모으고 있는데.

◆ 김서경> 모으고 있는데. 일본의 압력으로 인해서 소녀의 손이 주먹을 쥐게 됐어요. 그런데 그 주먹이라는 것은 누구를 해하거나 가해를 하기 위해서 주먹을 쥔 게 아니라 우리의 다짐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일을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의지였고요.

그리고 머리카락 같은 경우에도 많은 머리카락을 해 봤어요. 댕기머리도 해보고 뭐 여러 가지 머리카락을 하는 과정에서 머리카락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부모가 우리에게 물려준 그런 생명인데 생명의 끈인데 그런 끈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인연이 본인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인해서 끊김을 표현하는 것으로 소녀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잘리워진 모습으로. 그냥 단발머리가 예쁘게 잘려진 게 아니라 아주 거칠게 뜯겨진 듯이 그렇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맨발이에요. 소녀의 발이. 그런데 그 맨발은 할머님께서 이 고국에 정말로 몇 분 안 되시는 할머님께서 돌아오셨어요. 정말 20만 명인지, 30만 명인지 알 수 없는 소녀들이 끌려갔는데. 간신히 돌아오셨는데 간신히 돌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사회에 외면당하고 나라에 외면당한. 그래서 그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을 맨발의 뒤꿈치를 들린 그런 모습으로 표현한.

◇ 정관용> 뒤꿈치도 들려 있는.

◆ 김서경> 그건 아직도 사과를 받지도 못했고요. 제대로 된 배상이든 보상이든 받을 수가 없는 지금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작년 같은 경우에 저희는 내일 8월 15일이잖아요. 해방된 나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작년 같은 경우에 부산에서 소녀상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은 소녀가 이렇게 끌려갔겠구나라는 상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이 발 뒤꿈치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녀에는 또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림자는 저희 딸의 아이디어인데 우연히 딸이 아이디어를 줬어요. 그런데 그 그림자 또한 할머님들이 여태까지 살아오신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한 것이고요. 그리고 또한 그림자 가운데에는 나비가 있어요. 그 나비는 돌아가신 분이 저희에게 환생하셔서 더 함께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요. 또 소녀의 어깨에는 새가 있어요.

◇ 정관용> 조그마한 새.

◆ 김서경> 그 새는 평화를 상징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돌아가신 할머님과 살아계신 할머님을 연결해 주는 어떤 끈, 고리 그런 역할을 좀 새가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또 저희가 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빈의자입니다. 그 빈의자는 누구나 다 앉아. . . 그러니까 와서 옆에 앉아서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돌아가신 할머님이 이 자리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봐. . . 돌아가신 많은 소녀들, 그 소녀들이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그 자리를 지나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한번 앉아보시는 자리.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왜 수요집회를 20년 넘게 그 자리에서 하고 계실까. 그것도 일본대사관 앞에서. 그런 의문을 한번 해보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해야 될까라는 약속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소녀상은 만들어졌고요.

또 하나 빠뜨리면 안 되는데. 평화비라고 처음에 소녀상 이름이 두 가지가 있다 그랬잖아요. 평화비라는 비문이 있는데 그 비문에는 평화비라는 글씨가 있어요. 그 글씨는 오늘 가수로 데뷔하는 길원옥 할머님이 직접 쓰신 글씨예요. 그래서 이 얘기를 꼭 해 드리고 싶었어요. 오늘 조만간 공연을 할 거거든요.

◇ 정관용> 저희도 한번 소개한 적 있어요. 김서경 작가님의 설명을 찬찬히 듣고 나니까 앞으로는 소녀상을 보면 또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아요.

왜 맨발인지 왜 머리카락이 저렇게 거칠게 돼 있는지 나비는 뭔지, 새는 뭔지, 빈의자에는 내가 왜 앉아야 되는지 그렇게 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전국적으로 몇 군데나 지금 있습니까?

◆ 김운성> 내일이죠, 내일 되면 55점의 저희들이 작품한 게 국내에 있고요. 외국에는 지금 8점이 설치가 돼 있습니다.

◇ 정관용> 다 똑같은 모습인가요?

◆ 김운성> 저희들이 제작한 건 8가지의 모습입니다.

◇ 정관용> 그래요? 어떻게 어떻게, 조금조금씩 달라요?

◆ 김운성> 조금씩 다른 것도 있고요. 많이 다른 것도 있고요. 또 시기마다 그런 현상에 맞춰서 만들어낸 그런 것도 있습니다.

◇ 정관용> 예를 들면 어떤?

◆ 김운성> 거제도에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습니다, 거기에는. 새를 손에 이렇게 안고 있는데 그때 당시 왜 서 있느냐 하면 그때 당시에 세 가지에 대한 문제가 있었어요.

교학사 교과서에 '우리 조선의 소녀들이 따라다니면서 돈을 벌었다'. 일본군을 따라다니면서 돈을 벌었다, 이런 것이 있었고.

또 하나는 미국 글랜데일 시에 소녀상이 설치됐는데 일본 정부와 일본 사람들이 이 소녀상을 철거하고자 하는 그런 서명운동을 했어요. 한 12만 명이 서명을 해서 백악관에 제출했고 또 하나는 일본이 그것을 수정 내지는 폐기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그래서 소녀가 이제 일본 현해탄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모습인데.

평화의 상징인 새를 더 보호하는 모습으로 이렇게 서 있는데 그런데 문제는 그때 당시 그런 위험성이 있어서 세웠는데 사실은 지금 다 진행이 돼버린 거예요. 국정교과서로, 교학사 교과서가 국정교과서로 되고.

◇ 정관용> 그나마 그건 폐기가 됐으니까.

◆ 김운성> 그렇죠. 평화헌법 9조가 그렇게 되고. 그리고 이제 LA의 글랜데일 시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지 못하니까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는 데 합의를 해 버리고. 그렇게 다 진행이 돼버렸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는 그렇게 돼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런 의미를 하나씩 좀 담아서.

김서경(왼쪽), 김운성(오른쪽) 작가(사진=시사자키)

 


◆ 김운성> 그렇죠.

◇ 정관용> 6년 그 사이에는 우리 두 분께서는 소녀상 외에는 다른 작업은 안 하신 거예요?

◆ 김운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 김서경> 작년 같은 경우에 저희 '부부전'을 했는데 매향리에 있는 포탄을 가지고 부부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저희가 소녀상을 통해서 평화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작년 여름에 시청 광장에서 그렇게 하기도 했고요. 또 올해는. . .

◇ 정관용> 다른 작업도 하시는군요.

◆ 김운성> 예, 징용자상도 했고요.

◇ 정관용> 징용자상. 그게 지난 주말에 용산역에 세워진 동상이죠, 그렇죠?

◆ 김서경> 맞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일제에 강제로 끌려간 노동자들.

◆ 김서경> 용산역에서 공출을 당하고 차출당하고 그런 용산역에 집결을 시켜서 거기서 신의주랑 부산쪽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그 장소가 의미 있는 장소여서 꼭 그 장소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 하고자 하셔서 쟁취해낸 부분이 있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원래 징용자상이 지난 3.1절에 공개됐어야 맞다면서요. 그런데 왜 늦어졌습니까?

◆ 김운성> 아무래도 그때 국토부 소관이었고 그쪽에서 굉장히 반대를 많이 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 .

◇ 정관용> 그러니까 동상이 세워질 장소가 관할권이 국토부에 있는 거군요.

◆ 김운성> 그렇죠. 국토부였죠. 국토부가 철도공사에 했고 철도공사는 아이파크라고 하는데 그 공간을 다 1년에 한 80억 정도 돈을 낸답니다. 그래서 아이파크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그런 과거의 슬픈, 아픈 그런 것이 되면 좀 안 좋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런 역사를 좀 묻고 싶었는지.

◇ 정관용> 이전 정부가? 그 장소 사용 허가를 안 내줬어요?

◆ 김운성>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설치를 못했던 거죠.

◇ 정관용> 왜 그랬대요?

◆ 김운성>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약간 좀 다르게 해서 설치를 했는데. 설치하기 전에 바로 앞에 우리 철도공사에서 나와서 계고장을 날리시면서 차후에 이 부분들이 완벽한 설치가 아니고 필요에 의해서 철거될 수도 있다라고 하는 그런 메시지까지 전해지면서 했는데 그런 행정절차를 밟으면서 저희들은 충분한 할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아, 그러니까 철도공사 측에서도 합법적으로 그렇게 설치하기는 조금 뭐하니까 그러나 이제 형식상 이런 경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하십시오. 이렇게 바뀌었다는 얘기군요.

◆ 김운성> 그렇죠.

◇ 정관용> 정권 바뀌니까 동상이 세워지는군요.

◆ 김운성> 그렇죠.(웃음)

◆ 김서경> 지금 그런 곳이 또 있습니다.

◇ 정관용> 어디요?

◆ 김서경> 익산역 같은 경우에는 소녀상을 세우고자 했는데 코레일역에는 세울 수 없다고 반대를 계속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익산 시민 분들이 계속 싸움을 하시고 1인시위도 하시고 하셔서 내일 제막을 합니다.

그 소녀상은 약간 좀 다른 모습의 소녀상이에요. 서 있고요. 또 한일합의문을 파기하는 그런 모습이고요. 우리의 요구사항을 적은 어떤 비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 정관용> 한일간의 이른바 합의라는 것 없애라라는 외침을 담은 소녀상.

◆ 김운성> 맞습니다.

◇ 정관용> 지금 시내버스에 평화의 소녀상 태우고 운행하는 거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라고 유감을 표시했다는데 한 마디 하시죠.

◆ 김운성> 미래지향적이 되려면 일단 본인들이 부끄러워하는, 본인들이 저지른 일을 반성하고 사죄를 해야지 미래지향적이 되는 거지 마치 뭐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이렇게 해야 된다라고 하는 본인들의 그 주장만 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그래서 일본은 좀더 많이 스스로도 반성을 해야 되는 부분들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진짜 미래지향적으로 되려면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너희들이 바뀌어라.

◆ 김운성> 그렇죠, 가해자들이 바뀌어야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151번 버스, 회사이름이 뭐라고요?

◆ 김운성> 동아운수입니다.

◇ 정관용> 동아운수. 사장님도 박수 보내드리고 김운성, 김서경 두분 작가님께도 박수 보내드리고요. 계속 좋은 일 좀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김운성, 김서경> 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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