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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김연경은 또 있다' 프로의 태극마크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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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남 대한배구협회장(왼쪽)이 1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여자 배구대표팀 김연경의 인터뷰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사진=황진환 기자)

 

한국 배구가 김연경(상하이)의 이른바 '실명 비판'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지난 시즌 터키와 유럽 리그를 평정한 뒤 쉬지도 못하고 국제대회에 불려다니고 있는 김연경이 7일 작심하고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후배의 이름을 거론하며 쓴소리를 한 것이다.

문제의 후배로 지명된 선수는 이재영(흥국생명). 지난 시즌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우승 주역인 이재영은 무릎과 어깨, 발목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고 한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7일 CBS노컷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재영의 대표팀 불참은 홍성진 감독과 협의된 내용"이라면서 "이재영도 합류를 위해 노력했지만 무산됐는데 김연경의 마음도 이해한다"고 밝혔다.

작심 발언을 쏟아낸 뒤 김연경은 제19회 아시아 여자배구 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필리핀으로 출국했다. 앞서 김연경은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전과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를 소화했다. 아시아 선수권 이후 다음 달에는 일본, 태국에서 열리는 그랜드 챔피언스컵과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 예선까지 치러야 한다.

사실 대표팀 합류 문제는 비단 배구만의 일이 아니다. 야구와 농구 등 다른 프로스포츠 종목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기나긴 리그를 치른 선수들은 지치고 다친 몸을 쉬게 하고 치료해야 할 비시즌에 각종 국제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태극마크의 막중한 의미에 대표팀에 합류하지만 선수들의 몸과 마음은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야구의 경우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교체 선수가 속출했다. 추신수(텍사스)는 부상 전력 탓에, 김현수(필라델피아)도 당시 볼티모어 주전 경쟁을 이유로 불참했다. 김광현(SK)과 강민호(롯데), 김주찬(KIA), 류제국(LG) 등도 부상으로 빠졌다. 이런 가운데 한국 야구는 2회 연속 본선 진출 실패라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지난 3월 7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서울라운드’ 한국과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대5 로 네덜란드에 패한 한국 대표팀이 고개숙인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그나마 상대적으로 체력 소모가 덜한 야구가 이렇다. 하지만 야구도 투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은 어깨와 팔꿈치 등에 무리를 줄 수 있다. 2009년 WBC의 영웅 봉중근(LG)은 이후 부상이 오면서 전성기 구위를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봉중근은 2006년 초대 WBC 4강 신화에 힘을 보탰고, 2년 뒤 2008 베이징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에 기여했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리그는 10월 시작돼 3월 말에야 끝나는 6개월 대장정이다. 높이 뛰어야 유리한 종목인 만큼 선수들은 슛과 리바운드, 블록슛 등 공수에 걸쳐 쉴새없이 점프를 해야 한다. 무릎과 허리가 성할 날이 없다. 그런데 비시즌에는 존스컵과 아시아컵 등 국제대회에 나서야 한다.

이는 소속팀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 슈터 조성민(LG)은 최근 3시즌 동안 이런저런 부상이 오면서 정규리그를 모두 소화하지 못했다. 강철 체력이라는 양동근(모비스)도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낸 뒤 리그에 복귀해 "마치 시즌을 끝내고 난 다음 날부터 다시 시즌이 시작되는 느낌"이라고 고된 일정을 에둘러 표현한 바 있다.

이러다 보니 구단들은 부상을 이유로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을 막는 추세다. 구단의 소중한 재산인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해 몸이 다쳐서 오면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MLB)도 WBC를 주최하지만 구단이 반대하면 출전을 강요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몸이 건강하고 성실하며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이 큰 선수들만 죽어난다. 소속팀 경기는 물론 대표팀 일정도 빠짐없이 소화하는 선수들은 피로도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김연경 같은 선수들이다. 정근우(한화)는 무릎 수술에도 WBC 출전을 강행하려다 어쩔 수 없이 불참해야 했다. 오죽하면 김연경은 최고 대우를 해주는 유럽 리그를 마다하고 대표팀 출전이 용이한 중국 팀으로 이적까지 했다.

축구 대표팀은 기성용(가운데)과 지동원(18번) 등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도 빠짐없이 합류할 만큼 출전 경쟁이 치열하다.(자료사진=노컷뉴스)

 

물론 야구, 농구, 배구 등과 다른 프로 종목도 있다. 축구의 경우 A매치는 선수들이 서로 가려고 한다. 자신의 기량을 전 세계 클럽들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월드컵과 올림픽, 각 대륙 챔피언십 등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이면 즉각 빅클럽에서 러브콜이 온다.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쇼케이스나 다름없다.

다른 종목 선수들도 선호하는 국제대회도 물론 있다. 특히 남자 선수들은 병역 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은 출전 경쟁이 뜨겁다. 구단도 이런 대회는 적극 출전을 장려하고 어떤 선수들을 보낼지 전략을 짜기도 한다. WBC도 초대 대회는 병역 혜택을 줬지만 이후 사라지면서 선수들의 출전 의지가 미지근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죽하면 선동열 야구 대표팀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세뇌시키겠다"는 얘기까지 했다.

프로 선수들의 태극마크 딜레마는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연맹과 협회 등 각 종목 단체들이 매년 대회를 늘리기 때문이다. 각 종목 단체들도 광고 등의 수익을 위해 대회를 열어야 하는 상황이다. 야구의 경우 WBC는 물론 프리미어12 등 대회가 신설되면서 대표팀의 부담이 늘었다. 농구도 흥행을 위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국제대회를 열고 있다.

프로야구의 모 감독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으로도 국제대회는 충분하다"면서 "사실 선수들이나 리그에 도움을 주는 병역 혜택이 없는 WBC 등은 불필요하지 않나 싶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국제대회를 포기할 수도 없다. 부진할 경우 팬들의 질타가 쏟아지는 데다 리그의 흥행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에 걸맞는 대우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선수들에게 희생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사명감이 투철한 몇몇 선수들에게 집중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각 종목 단체들의 노력도 필수적이다. 대회의 경중에 맞게 유망주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전략적으로 주축들을 집중시키는 지혜도 요구된다. 선수들도 태극마크의 무거운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딜레마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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