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 진생재, 위헌철 씨(왼쪽부터)는 2017 삼순 데플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의 국제수어통역을 맡고있다. 이들의 손모양은 각각 '국제'와 '수어'를 의미한다.(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전 세계 청각장애인(DEAF)의 올림픽(OLYMPIC)인 데플림픽(DEAFLYMPICS)의 23번째 하계 대회가 터키 삼순에서 열립니다. 대한민국 선수단과 함께 삼순을 다니며 미처 기사에 싣지 못한 소소한 이야기를 [2017 삼순 데플림픽의 깨알 같은 이야기. 오해원의 깨톡(TALK)]을 통해 전달합니다.터키 북부 흑해 연안의 도시 삼순은 왠지 모르게 낯익지만 생소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열리는 제23회 하계 데플림픽은 전 세계 97개국에서 약 5000여명의 선수단이 모여 치열한 열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19일(이하 한국시각) 개막한 대회는 어느덧 폐막을 향해 막판 일정을 가쁘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이스탄불을 경유해 삼순까지 이동하는 긴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스탄불에서 삼순으로 이동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부터였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로 붐볐던 공항이지만 청각장애를 가진 선수들이라 크게 외국어가 많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수어를 통해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데플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출신국가와 참가종목 등 여러 정보를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수어를 통해 소통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국적도, 피부색도 그 무엇도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손을 통해 희로애락을 나누는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어를 통해 소통하며 서로의 선전을 기원하는 모습에서 데플림픽의 진짜 의미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때만 해도 국제수어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그저 수어는 전 세계적으로 모든 단어의 쓰임이 같은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언어는 해당 국가의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지고, 또 변화하는 만큼 각 나라는 각자의 수어 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청각장애인이 공통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바로 국제수어였습니다.
참고로 과거에는 수화라고 불렸지만 2016년부터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며 수화도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언어로 공식 인정되며 ‘손으로 하는 대화’라는 의미의 수화(手話)보다는 ‘손으로 하는 언어’라는 의미의 수어(手語)를 지향하는 만큼 수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2017 삼순 데플림픽 참가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이 수어를 통해 활발한 소통을 하는 모습. 삼순(터키)=오해원기자
◇ 국제수어통역사가 설명하는 국제수어의 세계2017 삼순 데플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은 총 6명의 국제수어통역 담당자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선수단 행정 업무 및 종목별 감독자 회의 등에 참여해 한국 선수단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선수단의 국제수어통역을 맡은 진생재(29) 씨는 “국제수어는 전 세계 농인이 국제행사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서로 약속한 수어다. 음성언어 중에는 에스페란토와 같은 용도”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같은 영어를 쓰는 미국과 영국, 호주도 서로 다른 수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현재 국제적인 농인 행사에서는 국제수어와 영문글자 두 가지를 공식 언어로 지정해 사용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위헌철(28) 씨 역시 “국제수어는 미국수어(ASL)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ASL을 안다면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 않을 수 있지만 유럽과 아시아, 미국 수어는 크게 달라서 국제행사에는 국제수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진생재, 위헌철 씨는 어떻게 국제수어를 배우게 됐을까요. 이들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외국 농인과 소통을 위해 배웠다는 공통된 답변이었습니다. 청각장애가 없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진생재 씨는 2013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농아인청년대회를 통해 다른 나라 청각장애인과 처음 만난 뒤 국제수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국내에서 많은 외국 청각장애인과 소통하며 지내다 호주로 건너가 국제수어를 더욱 익혔다고 합니다. 위헌철 씨 역시 미국과 일본을 다녀오며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경험해 국제수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번 대회를 통해 더 많은 나라에서 온 청각장애인과 소통하며 더 넓은 국제수어의 세계와 만났다고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법정 등록된 청각장애인은 약 26만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농아인협회는 노화나 난청, 부모의 등록반대 등으로 등록되지 않은 이들까지 더해 약 3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열린 국제수어 교육을 받은 이들은 약 2, 300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비단 데플림픽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국제적인 행사가 늘어나는 가운데 국제수어의 필요성은 분명해졌지만 실제로 정식으로 배운 청각장애인이 적은 탓에 국제수어통역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국제수어를 하는 이들은 아직 국내 청각장애인 가운데 국제수어를 활용하는 이들이 적다는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위헌철 씨는 “국제수어의 단어 하나하나부터 배우기 시작해 대화하거나 뉴스를 읽으며 수어를 연습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현실적인 조언을 남겼습니다.
진생재 씨는 “국내 국제수어 강의는 기본적인 회화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이번 데플림픽 같은 전 세계 농인이 모이는 행사의 경험이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면서 “앞으로는 스포츠 영역의 전문 통역 강의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강의도 농아인협회에서 열어주길 바란다”고 제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