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꿈...' 제주 지역 고교 야구부에서 프로의 꿈을 키우던 A군이 선배가 휘두른 배트에 머리를 맞아 찢겨 피가 흐르는 모습.(사진=A군 아버지)
최근 충남 지역 모 대학 감독의 선수 폭행 사건이 야구계에 충격을 안긴 가운데 고교 야구에서도 폭력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피해 선수는 폭력과 고문에 가까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결국 프로의 꿈이 좌절될 위기에 놓였다.
숙소 생활을 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학교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운데 피해 학생이 결국 해당 고교 운동부를 그만 두게 된 안타까운 사건이다. 피해 학생과 부모는 어렵게 이어온 야구 선수의 꿈을 위해 폭력을 참았는데 결국 돌아온 것은 전학뿐이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제주 지역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 얘기다. 지난해 입학한 A군(20)은 당시 2, 3학년 선배들의 폭행과 집단 괴롭힘을 당한 끝에 결국 지난 4월 중순 체육특기자를 포기하고 고향인 대구로 전학을 오게 됐다.
지난해 어렵게 이뤄진 제주행이었다. A군은 중학교 시절 투수로 주목을 받아 대구 명문고에 입학할 예정이었지만 학부모들 사이의 갈등으로 진학이 무산됐다. 이후 2년을 무적 상태로 지내다 어렵게 제주 지역 고교로 입학하게 됐다. 그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학교 감독이 부른 것이었다.
하지만 입학 전부터 갈등이 생겼다. 당시 A군은 2학년 진학을 앞둔 선배보다 1살이 더 많았던 까닭에 지난해 2월 군기 확립 등의 명목 하에 집단 폭행과 괴롭힘을 당했다. 2, 3학년 진학을 앞둔 선배들로부터였다.
▲"투수 선배가 맞히려고 던져…죽을 것 같았다"A군은 "훈련 뒤 공을 정리하는데 선배가 야구공으로 허리 등 내 몸통을 맞히려고 했다"면서 "장난이었다고 하지만 투수였던 선배가 세게 던졌는데 시속 130km는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몸을 움직여 피했지만 공포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야구공은 145g에 불과하지만 전력투구나 강습 타구는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 경기에서 얼굴뼈가 함몰되는 부상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심각한 경우 사망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A군은 감독과 코치 등에게 사실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다. 늦깎이 신입생으로 공연히 팀에 분란을 만든다는 인상을 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후 해코지를 당할까 무서웠던 까닭이다. A군은 "무엇보다 2년 만에 간신히 다시 하게 된 야구를 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에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아버지에게는 이같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에 대구에 사는 A군의 아버지는 해당 감독을 찾아 가해 학생과 부모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A군 아버지는 "감독이 폭력 사건이 불거지면 야구부가 해체될 수도 있으니 이번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을 해서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아들을 잘 봐달라는 마음에 돌아선 아버지였다.
'묶인 채 방망이질' A군이 지난해 당시 2, 3학년 선배들로부터 묶인 채 야구 방망이로 맞아 부은 허벅지(왼쪽)와 스파이크에 찍힌 정강이 모습.(사진=A군 아버지)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감독과 코치가 매일같이 야구부의 상황을 점검했지만 숙소 생활을 하는 선수들에게 사각지대는 너무나 많았다. 집단 따돌림 속에 왕따가 된 A군은 갖은 욕설과 수모를 견뎌야 했다.
지난해 7월에도 과한 폭력이 이어져 아버지가 학교를 찾았다. A군은 한 1년 선배가 휘두른 배트 손잡이 부분에 머리를 맞아 터져 피가 흘렀고, 3학년 선배에게는 묶인 채 허벅지를 방망이로 맞아 멍이 들었다. 날카로운 스파이크에 정강이가 찍힌 자국도 선명했다. 이번에도 감독의 간곡한 만류에 아버지는 돌아섰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A군은 야구부를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야구였지만 목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A군 아버지는 "아들이 정말 말수가 적은데 '야구든 뭐든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자살할 것 같다' '여기서 살아서 나가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왔고, 이를 감독에게도 보여줬다"면서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결국 야구를 그만두고 전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폭력' 얼굴뼈 함몰에 이 4개 부러져해당 학교는 결국 사단이 벌어졌다. A군을 인간 과녁 삼아 공을 던졌다던 문제의 B군이 또 다른 폭력 사건을 일으킨 것. 지난달 1년 후배 C군과 숙소를 빠져 나가 술을 먹고 시비가 붙어 주먹을 휘둘렀다. C군은 얼굴뼈가 함몰되고, 치아 4개가 부러졌다.
이는 정식으로 제주 교육청에 신고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까지 열렸다. B군은 결국 2000만 원이 넘는 합의금을 물었고, 야구를 그만두게 됐다. B군과 같은 3학년인 D군은 이를 말렸지만 숙소를 무단 이탈해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학을 가게 된 상황이다.
A군은 B군 등의 폭력과 학교 감독의 관리 소홀로 야구를 그만두게 된 상황이 너무나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군은 "만약 B가 C에 폭행을 가하지 않았다면 결국 피해자인 나만 야구를 그만두게 된 상황이 아니냐"면서 "감독과 코치 선생님에게 얘기를 해도 일주일이 지나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방 배치 변경 등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주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해당 고교 감독은 "혈기왕성한 나이고 운동을 하다 보니 숙소 생활을 하면 더러 폭력이 일어난다"면서 "관리 소홀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후 매일같이 문제가 없는지 코치와 점검을 했다"면서 "24시간 붙어다닐 수 없는 상황이라 세세히 파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숙소를 빠져나가 술을 먹다 B군에게 맞아 얼굴뼈가 함몰되고 치아 4개가 부러진 C군의 모습.(사진=A군 아버지)
해당 감독은 피해 학생 측이 뒤늦게 폭력 사실을 문제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피해, 가해 학생 부모와 만나 원만하게 합의하고 '이제부터 잘 해보자'고 했다"면서 "그런데 야구를 그만둔 이후 이제 와서 폭행 얘기를 꺼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질 생각이 있고 실제로 물러날 의사도 보였다"면서 "그러나 감독이 그만두면 현재 27명 선수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학부모들이 만류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야구부 학부모회 총무를 맡고 있는 E 씨는 "A군이 폭력을 당한 것은 사실이고 가해 학생들의 얘기도 들었다"면서도 "그러나 당시는 가만히 있다가 본인의 실력이 부족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프로와 대학 진출 등이 어려워지자 야구를 그만둔 이후 공연히 문제를 삼는 것 같다"고 항변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총무를 맡아 A군 등 선수들에게 매일같이 물어봐서 확인했는데 이후 폭력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A군이 전학까지 마친 상황이고 B군이 징계를 받고 또 다른 가해자도 졸업을 한 상황에서 굳이 과거의 일을 들추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폭행 사건이 일단락된 야구부에 행여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걱정이다. 총무 E 씨는 "운동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갈등은 항상 일어난다"면서 "A군 역시 후배들에게 벌을 주고 다른 학생들의 간식을 먹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문제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A군이 순박하지만 행동이 느려 선배들의 타깃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학교 감독 역시 "현재 학생들이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야구를 해보겠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뒤늦게 불거진 폭력 사건에 이들이 피해를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A군에 대해서는 많이 신경을 써줬지만 야구부 전체의 성적을 위해 기회를 많이 주지 못했다"면서 "그것 때문에 아마도 서운함을 느껴 이전 폭력 사건까지 꺼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왜 뒤늦게 난리냐고? 폭력 정당화는 안 돼"하지만 A군의 입장은 다르다. A군은 "어렵게 야구를 다시 하게 된 만큼 선배들의 괴롭힘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면서 "그렇게 견디면서도 말을 했는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더 심해져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야구부를 떠나게 됐는데 이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 수 있느냐"고 호소했다.
운동부의 비정상적인 폭력 관행이 근절돼야 한다는 마음도 있다. A군의 아버지는 "전학까지 갔는데 다른 폭력 사건이 또 터졌다"면서 "이미 아들은 피해를 봤지만 더 이상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인 운동부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언론에도 제보를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감독과 총무 E 씨의 말대로 또 다시 폭력 사건이 불거지면 야구부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수 있다. 혹시라도 자식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도 일견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제주 교육청은 이번 폭력 사건을 예의 주시하면서 야구부에 대한 조사 방침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A군에 대한 학폭위는 2학기에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E 씨는 "A군은 우리 학교가 아니었다면 사실 야구를 하기 어려웠다"면서 "감독과 코치가 어떻게 해줬는데 지금 와서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 하지만 기회를 줬다고 해서 겪었던 폭력을 지난 일이라고 해서 가슴 속에 묻으라고 한다면 이는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억울한 피해자나 운이 좋았던 가해자가 지금도 몇 십년 만에 누명이 풀리거나 단죄를 받는 세상이다.
부당한 폭력 사건과 관리 소홀로 야구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한 학생의 꿈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입학부터 전학까지 괴로웠던 1년 반 가까운 A군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운동 선수, 특히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학생에게는 천금과 같은 시간이다.
올해 시즌을 앞두고 제주 지역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 선수들의 단체 사진. 폭행의 피해자인 A, C군과 가해 학생들이 함께 한 모습이다.(사진=A군)
결국 폭력에 대한 노출이 상대적으로 큰 운동부 학생에 대한 구조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 소재의 한 고교 학생부 교사는 "최근 학교 폭력이 워낙 이슈가 돼서 일반 학생들은 현재 거의 완전히 보호를 받고 있고 징계 등 후속 대처도 확실하다"면서 "그러나 운동부 학생들은 사실상 폭력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돼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숙소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지방 학교 운동부의 경우는 더하다. 꿈을 위해 한 순간의 아픔은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운동 선수 학생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 교사는 "어떻게 보면 운동부는 아직까지 선후배 규율 등 구습이 남아 있다"면서 "체육 특기자 학생들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A군은 대구 소재의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방과 후 야구 클럽에서 따로 훈련을 소화하며 야구 선수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주말에는 유소년들을 지도하기도 한다. A군은 "고교 선수의 길이 막힌 게 진짜 억울하고 하소연할 데도 없다"면서 "그러나 독립리그 등 어떤 방식으로 야구를 하면서 프로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A군은 프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남들보다 너무도 멀리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A군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인 운동부 학생들에 대한 보호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가뜩이나 최근에는 독자들이 많아 운동을 시키려는 학부모가 적어 각 학교들이 인재 확보에 애를 먹는 상황. 한국 야구, 나아가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위해서도 해결돼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