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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성-김광일 PD, 우리는 귀한 이들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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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지인들, "불합리한 제작 관행 개선 필요" 한목소리

제작비 일부를 떼먹는 방송사의 관행에 반기를 들고 쉽지 않은 싸움에 나선 박환성 PD. 하지만 그는 일하면서 겪는 힘든 이야기는 가족들에게 잘 말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걱정할까 봐서였다. 김광일 PD는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 했던 인물이자, 해외 촬영 중에도 최소한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안부 문자를 해 가족들을 안심시켰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었다.

박환성-김광일 PD는 EBS에서 방송될 예정이었던 '야수와 방주'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다가, 지난 14일(현지시각) 저녁 숙소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한국독립PD협회(협회장 송규학)는 두 사람을 위한 장례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사건 경위를 정확히 파악해 이후 있을 공판에 대비하고, 시신을 고국 땅으로 무사 귀환시키기 위해 유가족, EBS 관계자와 함께 대표단을 꾸려 23일 오후, 남아공으로 떠났다. 출국 전에는 인천공항에서 두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는 간소한 '출국식' 절차가 있었다. CBS노컷뉴스는 출국식을 위해 모인 유가족과 고인의 지인, 주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형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

故 박환성 PD (사진=한국독립PD협회)

 

故 박환성 PD의 동생 박경준 씨는 사고가 일어난 지 5일이 지난 지난 19일 처음으로 형의 죽음을 알게 됐다. 19일 한국영사관 직원에게서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전화를 맞게 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 정도로 갑작스레 비보를 들은 것.

출국 전 가족들에게 특별히 어떤 말을 남긴 게 있는지 묻자 "형은 평소에도 일에 대한 힘든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걱정할까봐"라며 "최근 일(EBS와의 분쟁)에 대한 얘기도 SNS와 기사를 통해 아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형은 독립PD들도 권익을 공정하게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희 형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故 박 PD는 지난달 스스로의 힘으로 따낸 창작지원금조차 방송사가 '간접비 '명목으로 환수를 요구하는 현실을 고발한 바 있다. 오랜 관행으로 자리잡은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렸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슬퍼했다.

박 씨는 "형과 故 김광일 PD님의 무사귀환을 위해 많은 분들이 두 분의 뜻을 기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독립PD협회는 고인들의 귀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 계좌를 열었고, 'PD저널' 보도에 따르면 모금 시작 약 30시간 만에 성금이 5천만 원을 돌파했다.

유가족 대표로 23일 오후 남아공으로 출국한 故 박환성 PD의 남동생 박경준 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故 박 PD와 15년 간 인연을 맺어오며 함께 작업했던 현지 코디네이터 검비르 씨는 출국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인천공항을 찾았다. 검비르 씨는 본인 가게와 故 박 PD의 작업실이 바로 옆이어서 가족같이 지내는 사이였다.

故 박 PD는 '야수와 방주' 촬영 이후 다음 작품을 위해 내달 4일 검비르 씨와 함께 출국할 예정이었다. 이미 3번 정도 촬영했고, 나머지 부분은 네팔에 가서 찍을 계획이었다. 사고 전날까지 향후 함께 할 작업에 대해 보이스톡으로 얘기를 나눴다는 출국식 당시 고인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검비르 씨는 고인을 "일할 때는 맞고 틀림이 분명하고 돌려 말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되게 착하고 남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검비르 씨의 설명에 따르면 故 박 PD는 벌써 5년 넘도록 해외에 있는 아동 한 명을 후원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이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좀 더 나은 학교로 이동했다고.

그는 "네팔에 갈 때도 제작비 때문에 운전 우리(제작진)가 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 절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됐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 "방송계의 판을 바꾸는 시도해야 할 때"

이날 유가족 대표단으로 남아공으로 떠난 故 김광일 PD의 아내 A 씨는 이날 출국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故 김 PD의 페이스북에 마지막으로 나눈 카카오톡 대화와 짤막한 글을 올려 심경을 고백했다. 카카오톡 대화에 따르면 故 김 PD는 점퍼를 입고 자도 추울 정도로 나쁜 날씨에, 인터넷과 충전도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 이동이 많아서 운전을 많이 할 것 같다는 걱정도 함께였다.

A 씨는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내가 만든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변할 수 있고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뀐다면 뭐든 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하나의 빛이 될 거야"라고 했던 고인의 다짐을 전하며, "정말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자부심 넘치고 열정적으로 일했던 김광일PD!! 너무 열악한 방송 환경에서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던 그 사람은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서른 여덟 젊은 나이에 그는 이 세상에서 떠났다. 모든 역할을 완성시키기에는 어려웠지만, 이제 그 사람이 바라던 방송계의 판을 바꾸는 시도는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너무 안타까운 소식이었지만, 또 너무나 힘들게 달려온 그 사람이기에 원하는 것을 이뤄주고 싶다"고 밝혔다.

故 김광일 PD (사진=한국독립PD협회)

 


◇ "귀한 PD들을 잃었다…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한 사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야수와 방주' 촬영을 위해 출국하기 전 故 박 PD가 의원실에 들렀을 때, '무리하게 촬영하지는 말라'고 제대로 당부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추 의원은 "기금을 어렵게 따 와서 제작해도 (방송사에서) 많이 떼 가서 몸으로 때우는 등 제작할 때 위험한 환경에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 이야기를 하더라. 돈의 문제일 뿐 아니라 콘텐츠의 질, 제작진 안전 문제와도 직결돼 있으니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시스템이 너무 오래 유지돼 왔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눴다"고 전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마친 밤 고인의 죽음을 알게 됐다는 추 의원은 이 후보자도 독립PD들의 열악한 환경 개선에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하우스(방송사 소속) PD들도 있지만 험한 촬영현장에는 대개 독립PD들이 투입되는데 (현재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는)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하니 이 후보자도 매우 동의해 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 다큐 전문 PD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너무나 귀하고 좋은 PD들을 잃어버렸다.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은 뭘 해야 하는가.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 좋은 전례를 만드는 게 너무 중요하다. EBS 측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대처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기현 한국PD연합회장은 "이번 일은 EBS와 독립PD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사 전체와 독립제작자 간의 문제라고 본다. 구조적인 갑을 관계와 사회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한 불행한 사태"라고 강조했다.

오 회장은 "선진국의 경우 프리랜서 PD들이 을이라고 생각하거나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 작품을 만들고 방송사와도 대등한 관계에서 거래한다. 요즘은 독립PD들도 해외 마켓과의 거래가 늘고 있는데, 국내보다 그쪽에서 훨씬 더 대접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제작자가 어느 소속인지를 더 따지는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합회는 독립PD협회, 추혜선 의원실 등과 함께 위원회를 만들어 방송 제작환경의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자 한다. 독립PD들의 부당한 처우를 제보 받는 가칭 신문고를 만들어, 수집한 사례를 방송사에 전달하고 개선을 권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3일 낮 12시, 인천국제공항에서 故 박환성-김광일 PD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출국식'이 진행됐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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