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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성폭력 공론화 폭발하는데…보조 못 맞추는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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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권한 없는 상담 창구, 2차 가해에도 속수무책

대학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당당한'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학교 당국 등 대학사회가 이에 맞춰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2차 가해가 되풀이되는 양상이다.

◇ '학내 성폭력' 폭로 뒤 '2차 가해'의 그림자

고려대학교 (사진=자료사진)

 

지난달 13일 고려대에 한 대자보가 붙었다. 남학생 A 씨와 B 씨가 같은 학과 동기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품평'을 한 것은 물론 지난 4월 한 여학생을 강제로 추행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대자보를 낸 해당 학과의 '17학번 여학우 일동'은 A 씨와 B 씨의 진심어린 사과와 대학 차원의 엄중한 처벌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같은 내용의 대자보가 게시된 한 SNS 계정에는 '남들 술 먹다 키스한 얘기까지 학교 게시판에서 보고 싶지 않다'는 식의 댓글이 달렸다.

고려대 학생 정모(21) 씨는 "반박 대자보가 오른 SNS 계정에 일부가 '남자 인생 망쳐놓으려고 작정했다'며 댓글을 달았더라"며 "'꿀잼'이나 '팝콘각'이라는 표현도 있었는데, 이 역시 2차 가해의 소지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대자보에서 피해를 호소한) 학생이 수많은 '악플' 들을 보고 분명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는 한편 "자신에겐 일어날 일 없다는 듯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학생들에게도 화가 났다"고 밝혔다.

이처럼 최근 학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학 차원의 해결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동시에 2차 가해의 가능성 또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성폭력 범죄는 본래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공론화가 쉽지 않다"며 "특히 대학 내 성폭력은 많은 관계들이 얽혀져 있는 만큼 피해자에 대한 평판을 따지거나 '가해자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식의 얘기가 따라나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한 사실에 대해 왜곡된 정보들이 덧붙여져 소문이 나는 등 2차 가해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자료사진)

 

학내 성폭력 문제를 토로하다 지난 12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성공회대 학생 역시 폭로 후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익명게시판에서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해당 학생은 "이건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공론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면서도 "우리 학과 사람들이 올린 듯한 글과 댓글이 보이면 불안하고, 그 사람도 나한테 욕을 했을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 강제성 없는 징계, 파악조차 어려운 실태… 2차 가해 '패턴화'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공론화가 2차 가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학 당국이 1차 가해자에 대한 신속하고, 제대로된 처벌을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은 양성평등기본법 31조에 따라 성희롱을 방지하고 고충을 상담하기 위한 공식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확실한 처벌, 곧 징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성희롱‧성폭력상담소를 산하에 두고 있는 서울대 인권센터 관계자는 "센터에서 확인한 내용을 토대로 징계를 권고하면 대학 본부나 단과대학에서 결정을 하는 방식"이라며 "징계는 해당 단위에서 규정한 학칙에 따를 뿐, 인권센터에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양성평등센터 관계자 역시 "양성평등센터는 징계기관이 아니라 사건을 조사하는 곳"이라며 "징계 수위와 이행은 학생처 등에서 열리는 징계위원회에서 판단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심지어 대학 사회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접근조차 어렵다는 평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초‧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은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성폭력 범죄 실태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자료사진)

 

실제 지난 2015년 여성가족부가 대학성폭력 상담소 협의회와 마련한 '대학성폭력 피해자지원 및 사건처리 매뉴얼' 이후로는 종합적인 통계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대학에서 단체 메신저, 악성댓글 등을 통해 일어나는 성폭력과 2차 가해 문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데 정부 차원에서도 접근조차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1차 가해에 대한 처벌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성폭력 사건을 '명백한 범죄'가 아닌 단순히 갑론을박의 논란거리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이 때문에 '성폭력 공론화'가 '2차 가해'로 이어지는 패턴이 고착화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안명자 강사는 "피해 학생이 용기를 내서 힘들게 피해 사실을 알렸는데도 대처가 미비하게 이뤄지면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학교 당국이 강력한 메시지를 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강사는 "한 대학생은 3월에 일어났던 사건을 무려 반년 동안 가슴앓이 하다가 8월에서야 상담을 청하며 사실을 털어놓더라"며 "학내 처벌이 부실한 상태서 당사자간 합의만 이뤄진다면 이러한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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