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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밝힌 #광주 5.18 #노무현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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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①] "민주주의 성숙, 평범한 사람들 있어 가능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원래 제 영화를 보면서 잘 우는 편이 아닌데 '택시운전사'는 울음이 나더라고요. 아마 객관적 사실에서 오는, 가슴 아픈 고통이 있었던 것 같아요."

송강호가 우리 시대의 '얼굴'을 연기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택시운전사'에서 택시운전사 김만섭 역을 맡은 그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인간 군상이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위에 눈살을 찌푸리고, 사회나 정치 문제보다는 생계에 더 관심이 많은 그런 아버지.

그러나 그가 연기했던 어떤 위대한 캐릭터보다 이번 역할은 많은 것을 남겼다. 송강호가 연기한 김만섭은 1980년 5월 광주의 상황을 몰랐던 수많은 시민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상한 외국인 손님,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랬다.

"당시 광주를 벗어난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죠. 김만섭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저도 중학교 때 라디오 뉴스에서 '폭도'를 진압했다고 이야기한 게 기억이 나요. 그만큼 언론 통제가 심각했고, 폭압적인 정치적 상황이 간접적으로 느껴졌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점점 그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 마음이었고요."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송강호는 '택시운전사'가 '고발'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다. 영화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의 카메라 워크처럼 철저히 관찰자적 시점에서 국가에 의한 참혹한 학살을 조명한다.

"당시 광주를 제외한 모든 국민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죠. 만섭도 그걸 알지 못하고 광주에 들어가는 대표적 인물이죠. 중학교 때 라디오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두고 '폭도를 진압했다'고 나온 뉴스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얼마나 언론 통제가 심했는지, 폭압적인 정치 상황이 간접적으로 느껴지죠. 촬영하면서도 점점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 그런 마음이었어요."

아마 광주 현장에 위르겐 힌츠페터 혼자였다면 그의 필름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한국에서 상을 받으며 당시 자신을 도왔던 수많은 시민들과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를 이야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택시운전사'의 지향점은 비극을 뛰어 넘어 어떤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가에 있어요. 80년 광주는 아픈 기억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만큼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었던 건 만섭처럼 수많은 평범한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만섭의 선택은 광주 사람들이 어떤 정치적 행위를 한 게 아니라, 기본적 도리를 다하다가 희생당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뤄졌죠."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1980년 5월 광주로 간 서울 택시운전사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 (사진=쇼박스 제공)

 

'택시운전사'가 묘사하는 시위 장면은 마치 전쟁터 같다. 바리케이트 뒤에 숨은 계엄군은 비무장한 시민들을 명중시켜 죽인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적대 관계가 아니라 같은 나라의 국민이었다.

"3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응어리가 남아있죠. 적과 적으로 만나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닌 상황이라 더 아픈 비극이에요.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뀐 후에 영화가 개봉했지만) 정치적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아픈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봐요."

솔직히 송강호는 '부담감'을 느낀다고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모팁로 한 '변호인'에서도 그랬고, 이번 '택시운전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배우 한 사람이 거대한 역사를 짊어지고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나, 광주의 아픔을 기억한 많은 분께 누가 되지 않을까 그런 부담담이 있었죠.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힘든 지점이었어요. 그래도 촬영 시작하면 유쾌하고 신나게 합니다. 사실 촬영 직전까지가 힘들어요."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지난해 겨울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그가 찾아 헤맸던 택시운전사 김사복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위르겐 힌츠페터, 그 분이 이후에도 한국에 와서 시위 현장을 취재했었어요. 광화문에 취재를 갔다가 경찰에게 맞아서 생긴 부상으로 기자를 관두셨죠.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독일에서 한 필름 인터뷰를 보면 마음이 짠해요. 당연히 시사에 모실 것까지 생각했는데 지난해 1월에 돌아가셨어요. 아마 아내 분을 VIP 시사회에 모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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