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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 제작한 '연분홍치마' 재정난… 모금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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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김일란 감독

저항의 현장에서 인권의 의미를 찾고 여성주의적 삶을 실천하며 연대하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다큐 창작집단이기도 한 연분홍치마는 그동안 '종로의 기적', '두 개의 문', '노라노'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사진=연분홍치마 페이스북)

 

돌아보면 '착취'의 시간이었다. 회원들의 후원비만으로는 사무실 월세와 공과금을 내기도 빠듯했다. 영화제 상금은 몇 달 간의 활동비로 대체됐다. 월급이 없으니 아르바이트는 일상이었다. 작품 편집 중에는 여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서로 더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13년이 지났다.

2004년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발족한 인권단체이자 창작집단인 '연분홍치마'가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연분홍치마는 게이 네 명의 커밍아웃 스토리 '종로의 기적'(2011),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2012) 등을 만들었고, 최근에도 '두 개의 문' 2탄 '공동정범'(2016),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삶을 자녀의 눈으로 바라본 '안녕 히어로'(2016), 케이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다룬 '플레이온'(2017) 등을 탄생시켰다.

MB 정권의 대표적인 국가 폭력으로 거론되는 용산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두 개의 문'이 널리 알려지면서, 독립영화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연분홍치마의 지명도도 올라갔다. '집단'이기에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여타 창작자들보다 상황이 낫기도 하다. 그런 연분홍치마가 SOS를 외친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겪는 열악한 상황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연분홍치마는 지난 10일부터 오는 10월 2일까지 100일 동안 "연분홍치마는 월 600만 원이 필요합니다-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의 제작자가 되어주세요"라는 CMS 충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600만 원은 연분홍치마의 활동가 5명이 월 12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는 가정 하에 책정된 금액이다. 2017년 현재 월 최저임금(135만 2230원, 209시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서로의 희생을 동력 삼지 않고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액수다.

연분홍치마의 CMS 충원 프로젝트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이 11일 올린 페이스북 글을 통해 처음 공론화됐다. 그의 글은 12일 오후 8시 20분 현재 공유 120회를 넘겼고, 연분홍치마를 격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CMS 후원으로 이어지는 큰 움직임은 보이지 않아 걱정이라는 게 연분홍치마의 설명이다.

'두 개의 문', '공동정범' 등을 연출한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감독은 12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에만 다큐 3편이 연달아 나왔다. 한편에서는 대단하다, 작품 수 많구나 하지만 그 밝은 부분을 뒤집어 보면 서로 엄청 힘들게 만들었던 구조가 있다. 이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지 않으면 (저희가 만든) 다큐도 허울 좋은 결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또한 이것은 연분홍치마만의 상황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독립다큐 제작자라면 누구나 겪는 '구조적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랐다.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

(사진=연분홍치마 페이스북)

 

▶ CMS 충원 100일 프로젝트를 하게 된 배경 설명 부탁한다.

연분홍치마는 인권단체 활동을 하기도 하고 영상을 제작하는 단체이기도 한데, 영상단체와 인권단체의 재정구조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을 하는 부분은 인권단체 활동가와 유사하게 활동비가 들어가는데, 장편 다큐멘터리와 같이 더 완결성 있는 하나의 작품이 될 때에는 목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장편 다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나 각종 영화제에서 제작지원을 받게 된다. 보통 다큐를 기획하는 것부터 관객과 만나게 하는 데까지 최소한의 과정이 있고, 3~4년 정도 걸린다. 그런데 그 돈(지원금)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제작 기간이 긴 데 비해 지원받는 금액이 유지 가능한 규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원금은 '제작지원용'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큐 제작에만 써야 해서, 월급 개념의 활동비가 이걸로 충당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작업하고 있는 감독의 생활비를 다른 활동가들이 알바를 한다든가 해서 재정을 보완해 왔다. 다들 지쳤고 이 문제를 조금 더 사회화해 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또, 이것은 연분홍치마만의 일이 아니다. 독립영화 제작 과정 전반이 달라지고 독립영화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다. 그런데 전체 구조를 바꾸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 저희는 너무 급하니까 CMS 후원을 요청하게 됐다.

▶ 연분홍치마는 다큐멘터리 창작집단이면서 인권단체다. 이렇게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나.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데, 다른 분들도 다큐를 통해 인권활동,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희는 (인권단체라는 점이) 정체성이라고 좀 더 조직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다. 장편 다큐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다양한 활동을 한다. 카메라 들지 않고 하는 것도 우리의 활동이라고 본다.

(* 연분홍치마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 4.16 세월호 참사 미디어 위원회 등 다양한 단체와 연대하며 차별금지법 대응 성소수자 차별 저지 긴급행동, 용산참사 '레아' 방송국, 서울학생인권조례 '서울시의회 점거 농성단', 서울시민인권현장 '무지개 농성단', 세월호 참사 미디어 및 인권침해 감시단,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등의 인권활동을 벌여 왔다.)

▶ 열악한 제작 환경, 재정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13년이나 활동을 해 왔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함께 해야만 그나마 길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인권단체들도 (재정 구조가) 굉장히 취약해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단체가 많다. 영상단체는 특히 더 그렇다. 다큐 감독들에게는 제작지원과 같은 예술가로서 사회적 지원이 있었을 때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 독립영화로서의 다큐는 예술이자 산업이고 사회운동이기도 해서 굉장히 섬세한 접근을 필요로 하는 매체다.

하지만 (이런 점을 온전히 이해하고)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없다. 영진위에서 제작비를 받아봐야 3천만 원 정도인데 제작진 인건비로 월 100만 원이 나간다고 해도 1년을 가지 못한다. 기획부터 개봉까지 보통 3~4년이 걸리는데 그 기간을 버티기 힘드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작품 마무리도 늦어지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다큐 제작자들 대부분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저희는 '서로 함께 해결해 보자'는 의지를 갖고 버티다 보니 13년이 됐다.

(사진=연분홍치마 홈페이지)

 

▶ 지금도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고 들었다.

작년 말부터 해서 용산참사 다큐 '두 개의 문' 후속작인 '공동정범'이 완성됐고, 쌍용차 해고자의 이야기를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안녕 히어로'와 SK브로드밴드 통신설비 하청 노동자들이 노조 만든 경험에 관한 '플레이온'이라는 다큐를 제작했다. 3편이 연달아 계속 나왔다.

한편에서는 대단하다, 작품 수 많구나 하지만 그 밝은 부분을 뒤집어 보면 서로 엄청 힘들게 만들었던 구조가 있다. 이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지 않으면 (저희가 만든) 다큐도 허울 좋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우리가 그동안 이렇게 운영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연분홍치마의 지속가능성을 사회화하고 (도움을) 요청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관한 다큐다. '플레이온'을 만든 변규리 감독과 퇴진행동(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에서 미디어팀장을 맡았던 넝쿨이 공동연출한다. 새 작업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는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오래 활동하고 싶어서 CMS 충원을 요청하게 됐다.

▶ 창작자 지원은 카카오 스토리펀딩 등 다른 방식도 있는데 이런 부분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것(스토리펀딩)도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저희는 좀 더 '지속가능성'에 주력하다 보니 CMS를 택했다. CMS를 해 주시는 후원회원들은 한편으로는 저희가 항상 만나고 싶은 '관객'이기 때문이다. 저희 다큐와 활동을 지지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고.

▶ 연분홍치마 후원을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연분홍치마가 13년 동안 다큐를 하면서 가장 공들였던 게 이거였다.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관객과 시민들에게 어떤 세상을 꿈꾸고 싶은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목소리는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자고 가장 정성스러운 제안서를 보낸다는 마음으로 제작을 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성을 들이는 데 한계에 부딪친 것 같다. 모든 분들이 그렇겠지만 매번 최선을 다했고, 더 잘하고 싶고, 더 정성을 기울이고 싶고, 더 섬세하게 고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가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시간을 같이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분들이 볼 때 저희는 좀 더 나은 조건에 있고, 더 알려진 작품이 있어서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하실 수도 있다. (저희의 이야기가) 여전히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독립다큐 제작자들의 여러 고충과 같이 이야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연분홍치마 후원 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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