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리얼'에서 주인공 장태영 역을 맡은 김수현 (사진=코브픽쳐스 제공)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 주]6월 26일, 영화 '리얼'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언론 시사회에는 당연히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마치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을 보는 듯한 요란한 오프닝 영상으로 시작한 137분의 여정은 다소 지루했다. 세 번 정도 시간을 확인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을 때의 허무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리얼'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카지노를 둘러싼 두 남자의 거대한 비밀과 음모를 그린 액션 느와르로, 김수현이 카지노 조직의 보스 장태영과 투자자 장태영이라는 동명이인을 연기했다. 성동일, 이성민, 조우진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출연해 힘을 보탰고, f(x) 출신 설리도 합류했다.
영화 '리얼'은 김수현의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져 더 기대를 모았다. 김수현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원톱' 영화이자, 대형 카지노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느와르물에 설리의 수위 높은 노출씬까지 더해져 '볼거리' 면에서는 여느 영화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홍보가 끊이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눈부시고 화려한 것은 맞았다.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 채 부유한다. 으리으리한 카지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지만, 극의 흐름과 무관한 호화로운 쇼와 파티 장면이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공력을 들인 흔적이 보이는 액션씬도 마찬가지다. 극중 조직의 보스 장태영(김수현 분)은 놀라운 솜씨로 수많은 상대를 쓰러뜨리고 전진한다. 표면상으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조원근(성동일 분)과 맞붙고자 한다는 '이유'가 있지만, 극을 진행시키기 위해 '동원'됐다는 느낌이 든다.
배우에게 많은 고민을 하게 했고, 꽤 힘든 '도전'이었다던 노출씬은 확실히 수위가 세다. 그러나 보스 장태영을 모방하고자 하는 투자자 장태영의 욕망을 표현한다는 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자극적이기만 하다.
"신선한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는 이사랑 감독의 포부와는 달리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무척 고루하다. '리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두 가지로만 소비된다. 섹스 혹은 섹스어필을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손님을 맞아 게임을 진행하는 딜러는 현란한 손놀림이나 두뇌싸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각선미와 아슬아슬한 의상으로 표현된다.
보스 장태영의 여자인 송유화(설리 분)는 재활치료사로서 자기 일을 하는 모습보다는 어딘지 모를 비밀스럽고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에 치중한다.
투자자 장태영의 여자인 한예원(한지은 분)은 한 술 더 뜬다. 보스 장태영을 따라하기 위해 섭외된 그는, 이리저리 파티에 끌려다니며 장태영의 지시에 따라 연출된 행동을 하다가 전라의 상태로 죽는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리얼' (사진=코브픽쳐스 제공)
무엇보다 '리얼'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 영화가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스, 투자자, 극 후반에 나오는 르포작가까지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장태영을 통해 뭘 보여주고 싶었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내내 장태영이라는 이름의 두 인물은 서로 자신이 '진짜'임을 주장한다. 그런데 왜 그토록 '진짜'가 되려고 애썼는지 영화만 보고는 관객이 힌트를 찾아내기 어렵다. 후반부에 나오는 르포 작가의 이야기는 다소 뜬금없고 설명도 부족해 다시 한 번 관객을 미궁에 빠트린다. 한마디로 '리얼'은 몹시 '불친절한' 영화다.
카지노, 마약, 폭력, 대립, 여러 개의 인격, 섹스씬까지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빠짐 없이 들어가 있는데도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모를 허무함이 남는다. 전체 분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여러 개의 인격을 각자의 특징을 살려 소화해 낸 김수현의 연기를 떠올리면 더 아쉬운 부분이다.
'리얼'이 이 감독의 말대로 '독특한', '이제껏 보지 못했던'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감독이 심어두었다는 트릭이 여간해서는 관객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영화를 여러 차례 보면 처음에는 놓쳤던 '숨은 1cm'를 발견할 수도 있다. '리얼'이 관객을 재차 극장 앞으로 다가오게 할 만큼의 '힘'을 지녔는지는 의문이지만.
이 감독은 '정답 없는' 영화라며 관객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활발한 토론도 이야기의 틀이 어느 정도 손에 잡혀야 가능하다. 관객들이 혼란을 느낄 만큼 개연성이 부족한 것을 '이 해석도 저 해석도 맞다'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시도가 아닌가 염려된다.
6월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