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평론가+기자가 '옥자'에게 던진 7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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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만난 봉준호 감독의 세계 파헤치기

영화 '옥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갖가지 논쟁으로 '옥자'의 계절은 그 어느 영화들보다 뜨거웠다. 강원도 소녀와 다국적 기업 슈퍼돼지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또 한 번 할리우드와 손잡은 작품이다.

줄거리를 들으면 다소 황당할 것만 같지만 '옥자'는 쉽지 않은 문제 의식을 품고 있다. 할리우드 자본이 담긴 화려한 시각적 효과에 봉준호 식 풍자를 더해 식량산업과 기업식 축산업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이기 전에 미국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영화다. 그래서인지 전세계 가는 곳마다 영화 산업 질서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상업적인 할리우드 영화 '옥자'는 국내에서 멀티플렉스가 아닌 개인 극장들에서 상영된다. 이제 5일 뒤면 일반 관객들도 그토록 궁금했던 '옥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옥자'가 던진 화두를 뒤로 하고, 이제 '옥자'만으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왔다. 다음은 이명희 영화평론가와의 대담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영화 '옥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 이후 무려 4년 만에 돌아온 영화다. 이번 영화는 전작들과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간단한 평을 해보자.

이명희 영화평론가(이하 이)>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보다 더 대중적이고 재미있으며, 교훈적인 감동도 남기는 영화다. 주인공과 악당, 조력자 등이 벌이는 선과 악의 대립, 사랑하는 대상을 구출하기 위한 모험 여행과 시련, 보상과 귀환 등의 이야기 얼개는 단순 명료하다. 러시아 학자인 블라디미르 프롭(Vladimir Propp)의 '민담의 형태'에서 규정하는 동화의 서사적 특징은 옥자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와 동물이 주인공이고, 옥자가 CG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며, 동화적 스토리텔링 덕택에, '옥자'는 실사화된 애니메이션을 방불케 한다. 순수한 소녀 미자와 착한 동물 옥자 캐릭터는 꼼수로만 점철된 어른 캐릭터들과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와 죠니 윌콕스(제이크 질렌할 분), 제이(폴 다노 분)와 케이(스티븐 연 분) 등, 성인 캐릭터들의 우스꽝스럽고 과시적인 연기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패러디 느낌을 강화한다.

유원정 기자(이하 유)> 기존 봉준호 감독의 감성이 옅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유쾌한 풍자 속에 어둡고 질척한 감정들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지점들을 많이 덜어낸 것 같다. 종종 감독의 본성이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지만 아주 잠깐이다. 주제의식은 선명하지만 그것이 전부이고, 더 깊게 본질을 파고들지는 않는다.

'옥자'는 기발한 동화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과 환경 문제를 다뤄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관과도 비슷하다. 분명히 실사 영화임에도 소녀 미자와 비현실적인 CG '슈퍼돼지' 옥자가 애니메이션과 같은 질감을 더한다. 영화보다는 연극 연기에 가까운 배우들의 과장된 톤과 제스처 또한 그렇다. 애니메이션 속 '악당'이 실사 영화들보다는 가벼운 무게감을 가진 것처럼, '옥자'의 악당들 또한 어딘가 허술한 매력을 풍긴다. 마치 원작 만화가 있을 것만 같은 영화다.

영화 '옥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 영화 속에서 서로 완전하면서 정상적인 관계는 '옥자'와 미자밖에 없어 보인다. 옥자를 회수하는 글로벌 기업 미란도는 물론이고, 심지어 동물보호단체까지 옥자와 미자를 이용하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어딘가 뒤틀린 이들이 영화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미란도는 원래 전쟁 살상용 상품인 무기를 생산하던 가족기업이며 자본주의 논리로만 운영되는 글로벌 기업이다. 새로이 출발한 이 회사는 동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슈퍼돼지를 양산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식품기업이 된다. 미란도는 거짓 정보와 마케팅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매스미디어 산업과도 돈으로 얽혀 있다.

이들에게는 미자와 옥자의 이야기도 선하고 유익한 기업이라는 가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광고 수단일 뿐이다. 탐욕과 이윤에 눈이 먼 자본주의 가족의 성으로 잡혀 들어간 미자와 옥자 이야기는 목가적인 동화에서 잔혹한 호러로 전환된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세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 미국의 실체를 폭로하는 듯 보인다.

유> 동물보호단체인 '동물해방전선'은 처음 미자와 옥자의 유일한 구원자이자 조력자로 등장한다. 소수 정예 집단인 이들은 숭고한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옥자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소동을 보면 그리 능력이 출중한 집단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옥자의 미국 여정은 이들로부터 시작된다. '동물해방전선'이 일부러 옥자를 놓아줘 미끼로 삼으면서 미자 또한 미국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대의'를 위해 옥자가 겪을 고통과 희생 정도는 감수하게 된다.

영화 '옥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미란도 기업에 옥자가 '성공적인 사업 아이템'이고, 소비자에게 옥자가 '맛 좋은 고기'라면 '동물해방전선'에는 '미란도의 비리를 폭로할 스모킹건'이다. 순수한 가치를 위해 뭉친 이들조차 자신의 이상을 따라 움직이면서 옥자와 미자에게 진정한 구원이 되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여기에서 그렇다면 '동물을 자유롭게 해방한다'는 그들의 작업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그 '해방'이 동물들에게 진정한 해방이었는지 인간인 우리는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인간이라는 생물은 어차피 자기 만족과 목표를 따라 움직이는 탐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탐욕을 모르는 옥자와 미자는 앨리스처럼 잔혹하고 기괴한 세계에서 다시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아 길을 헤맨다.

결말에 미자가 마련한 돌파구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세상에 무지했던 강원도 산골 소녀가 '자본주의의 법칙'을 깨닫는 순간이다. 오히려 법칙을 깨닫게 된 미자가 끝까지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면서 이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 '옥자'의 공간은 사건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함께 변화한다. 목가적인 강원도 산골에서 복잡한 도시 서울로, 그곳에서 다시 자본주의의 결정체인 미국과 잔혹한 미란다 기업의 연구소로. 이런 공간의 활용과 배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 '옥자'를 특징짓는 것은 대립적인 요소들이다. 아이와 어른의 행동도 정상적 세계와 비정상적 세계의 대립속에 전개된다. 도입부에 아름답게 그려진 강원도 산골은 선(善)이고 정상적 세계이며 낙원이다. 평화로운 시공간은 옥자가 잡혀간 이후, 속도와 긴장으로 이루어진 도시 서울 장면으로 전환된다. 미국은 다국적 기업 미란도가 이윤만을 위해 어떤 윤리적 위반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위선의 나라이며 비정상적인 세계, 즉 옥자가 겪게 될 지옥이다.

색채도 이 두 세계를 분명하게 나눈다. 강원도 산골이 녹색 낙원인 반면, 도시 소비 문화의 인물들은 몹시 알록달록한 색채를 입고 등장한다. 서울 지하상가의 알록달록한 잡동사니 소품들도 한 몫하며, 미디어와 광고물 영상처럼 연출된 장면들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시각적 유혹을 상징한다. 영화는 푸른 자연의 색채와 미디어, 소비사회의 플라스틱 색채에서 호러의 어두운 색채로 이동한다.

영화 '옥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 갑작스럽게 영화의 색채가 바뀌면서 잔혹한 축산업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최고의 슈퍼돼지로 꼽힌 옥자가 미란도 기업의 연구소로 향하면서부터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죠니 윌콕스는 음주 상태에서 옥자를 학대한다. 동물들이 집단으로 도축 당하는 도살장 또한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그들은 '생명체'가 아닌 '고기'다.

이> 옥자가 겪는 시련의 장소들은 거의 무채색이며 어두운 청회색 공간이다. 연구소와 도살장에서는 기업형 축산업의 실태가 스펙터클하게 묘사되고 있다. 돈과 인기에 미친 동물학자가 주도하는 학대가 이루어지는 실험실, 셀 수 없이 많은 유전자변형 슈퍼돼지들이 감옥처럼 갇혀 고통을 호소하는 거대한 도살장. 공장식 사육장과 도살장은 분명 동물 홀로코스트다. 미자의 시각으로, 또 다큐 영상을 방불케 하는 트래블링 기법으로 펼쳐지는 폭력적이고 비극적 공간. 봉준호 감독 특유의 주제와 작품세계가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유> 우리는 미자 감정에 이입된 상태에서 옥자가 겪는 모든 고통과 폭력 그리고 학대를 바라본다. 그 장면들은 영화를 관람한다면 가장 선명하고도 끔찍한 경험이 될 것이다. 미자를 위기에서 구해줄 정도로 똑똑한 동물 옥자가 한낱 고기로 취급되는 순간, 세상은 뒤집힌다. 옥자는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해야 하고, 스스로 고기가 되어야
하는 '무기질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옥자가 폭력에 노출될 동안, 우리는 무기력한 관찰자가 된다. 인간만큼 자기 의지와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동물이기에 오히려 그것이 더 악독한 범죄 행위로 느껴진다. 미자와 똑같은 인간임에도 죠니 윌콕스 박사와 옥자는 정서적 교감이 불가능하다. 그가 옥자를 취급하는 가치관 자체가 미자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옥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슈퍼돼지를 도살해 해체하고, 부위를 나누는 공정작업은 미자가 옥자를 찾는 여정을 따라가며 의도적으로 배치된다. 어떤 악의를 갖지 않고, 평범하게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슈퍼돼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고기'라는 결과물만 봤을 뿐, 그 과정에 무관심했던 스스로의 치부를 들추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간이 자본과 편리 속에서 외면해 온 기업형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점과 맞닥뜨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간과 똑같이 숨이 붙어있는 생명이지만 그들의 존엄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있다.

▶ '옥자'의 주제 의식은 분명하다. 생명 가치와 윤리는 무시하고, 이윤 추구만을 위해 움직이는 식품산업에 대한 저항이다. 봉준호 감독 전작들보다는 확실히 전세계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이> 독재성에 대한 저항이라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정치적 작품세계는 이번엔 다국적 식품산업의 비윤리성과 동물학대를 통해 자본과 미디어의 독재권력에 대해 저항한다. 거짓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매스미디어의 독재, 생명의 가치와 윤리를 무시하고 이윤만을 추구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독재에 대한 저항이다.

식품산업의 비극적 부조리는 위선과 거짓으로 포장된 광고 마케팅과 현혹적인 미디어 산업이 결탁한 산물이다.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미국 식품산업에 경종을 울리는 정치적 논제가 감독 영화에서 전무했던 화려한 색채감과 웅장한 스펙터클로 제공된다. '옥자'는 다양한 영화 장르에 따른 요소를 섞은 풍자 동화가 되는데 성공했다. 시종일관 귀를 사로잡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특히 명품이다.

그러나 미국 자본주의와 이를 둘러싼 인물들을 쉽게 전형화, 희화화한 것은 의도적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선한 주인공과 내용의 사실주의가 만화적이고, 풍자적인 표현주의와 대립 충돌해 가끔 부담스러운 이질감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유> 본격적인 할리우드 작업, 그 중에서도 전세계 동시 개봉하는 넷플릭스의 시스템과 어울리는 주제 의식이다. 그간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 정치·사회에 대한 비판은 한국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에 치우쳐 있었다. 그의 뿌리 자체가 한국인이고, 한국 영화계 터전에서 성장한 감독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설국열차' 때까지만 해도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영화 '옥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간 고수해 온 주제의식이나 스타일 모두를 탈피한 '옥자'는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시험대로 보인다. 이명희 평론가 말처럼 '옥자'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봉준호 감독 만의 '풍자 동화'가 되지만 과장된 블랙코미디는 작품을 좀 더 사유할 만한 깊이를 사라지게 한다. 꼭꼭 숨겨진 감독의 의도를 찾고, 해석하는 일은 불필요하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라는 생물을 통해 모든 주제의식을 집약하고, 있는 그대로 전시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시각 효과와 스펙타클한 '옥자 구출 작전'은 오락적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영화 전체는 전작들에 비해 다소 평이하게 느껴진다.

말할 것이 더 많을 줄 알았지만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 영화라고 해야 할까. 상업성과 작가주의를 겸비한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는 의외성을 찾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전세계적 공감대와 상업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다보니 그것을 고집하기 어려웠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너무 광범위한 문제라 자칫 다큐처럼 흘러갈 수도 있었던 주제의식을 가치 있는 상업 영화로 구현해 낸 점에는 박수를 보낸다.

▶ 기업형 축산업 문제는 그리 많이 다뤄지거나 익숙한 주제는 아니다. 실제 '옥자'와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을까?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는 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형 축산업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경종을 울렸고, 그 폐해는 광우병, 조류독감, 구제역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항생제, 성장호르몬 등을 사용해 생산된 의심스러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 '옥자'의 미란도는 몬산토, 카길같은 미국의 글로벌 기업을 연상시킨다. 이미 유전자변형 곡물산업, 축산업 등으로 소농과 지역농업을 망치고 있을 뿐 아니라,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지구를 살리려면 소농을 살려야 한다'. 작년에 만난 프랑스 경제학자이며 농업문제 전문가인 실비아 비토리아 페레즈가 주장하는 말이다.

문명의 이기가 인간의 논리로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걸 빨리 깨달아야 망가져가는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옥자'는 이기주의로 지구를 경영해 온 인간에게 파괴적 차원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환경, 오염, 식량문제, 빈곤문제 등에 휩싸인 지구를 살리려면, 미자는 옥자와 함께 산골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영화 '옥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유> '옥자'가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부터 이 건을 계속 취재해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한 가지는 글자 그대로 '극장과의 동시 개봉' 그리고 '배급 방식의 변화'다. 국내 극장 산업에서 90% 이상 비율을 차지하는 멀티플렉스들은 1주일이라도 극장이 먼저 '옥자'를 개봉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그게 지금까지 1차 플랫폼인 극장과 2차 플랫폼들 사이에 지켜져 온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건 제작과 배급·상영 체계 사이의 권력 구도를 전복시켜 버린 사건이기도 하다.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은 시장 지배적 위치를 선점한 이후, 배급과 상영에서 막강한 권한을 발휘해 왔다. 그런데 엄연히 '옥자'의 제작사에 불과한 넷플릭스로부터 자신들이 선택받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국내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지금껏 영화 산업 주체들의 공적인 상생에 기여하기보다는 상업적 논리에 충실하게 운영됐다. 그런 업체들이 영화 생태계 질서를 걱정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당장 매출과 관계가 없어도 시장 지배적 권력을 빼앗기는 상황 자체를 경계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당연히 넷플릭스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는 극장도, IPTV도 아닌 복합 플랫폼인 탓이다. 이들은 제작사이자 배급사이고 동시에 상영 주체다. 결국 기존 시장 질서에 없는, 새로운 플랫폼이 출현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보를 봤을 때 넷플릭스가 전통적인 질서에 순응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멀티플렉스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이 플랫폼을 위해 또 다른 질서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 나름대로 훨씬 더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형성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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