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숨진 백남기 씨의 사인을 서울대병원이 '병사'가 아닌 '외인사'로 바꾼 지 하루 만에 경찰이 사과가 담긴 공식입장을 발표한다.
그동안 백 씨 유가족 측의 사과요구에도 묵묵부답이었던 경찰이 정권이 바뀌자 입장을 급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서울대병원 이어 경찰도 덩달아 입장발표… 사과 표명할 듯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경찰이 백남기 씨 사망에 대해 사과의 뜻이 담긴 공식입장을 16일 발표한다. 서울대병원이 백 씨의 사망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바꾼 지 하루 만이자 백 씨가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지 581일 만이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철성 경찰청장은 백 씨 사인 변경에 대한 공식입장에 이어 이날 사과의 뜻도 함께 전할 예정이다.
앞서 전날 서울대병원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백 씨의 사망진단서상 사망의 종류를 '외인사'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지난 9월 "급성경막하출혈로 급성신부전이 발생해 '심폐정지'로 병사했다"는 진단에서 "외상에 의한 경막하출혈 이후 수술 등 치료과정에서 패혈증으로 인한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경찰 물대포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고 줄곧 부인하던 서울대병원이 돌연 입장을 바꾸자 이번엔 경찰이 나섰다.
그동안 경찰 역시 백 씨의 사망원인은 경찰 물대포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백 씨가 쓰러졌을 당시 경찰 총수였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인간적으로는 사과한다"면서도 "사실관계와 법률관계가 불명확하다"며 법적책임은 회피했다.
이철성 경찰청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후임자인 이철성 청장 또한 백 씨 사망에 대한 개인적인 유감만 표명할 뿐 사과는 없었다. 지난해 9월, 이 청장은 "경찰이 불법 폭력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긴 하나, 고귀한 생명이 돌아가신 데 대해서는 무척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민·형사상 문제가 해결되고 경찰의 잘못이 명확해지면 (사과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까지도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5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물대포 직사살수로 백 씨가 숨진 게 아니냐'는 지적에 이 청장은 "(살수에 관한) 규정을 제대로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는 밝혀지리라 생각한다"며 "수사 결과 잘못이 명백히 밝혀지면 충분히 유족에 사과도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기존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 "정권 바뀌니 사인도 바뀌나?"…공권력‧의료계 비판 거세져요지부동이었던 경찰이 돌연 백 씨 사인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겠다고 밝히고 사과의 뜻이 담길 것으로 전해지자 서울대병원에 이어 경찰도 정권교체에 맞춰 입장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백 씨 유족 측의 사과요구에도 불구하고 580일 동안 사과를 거부해온 경찰이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객관적 입장을 지켜야 할 공권력이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한 경찰관계자는 "유감표명은 전에도 했었고 사과 방식과 시기에 대해선 경찰 내부적으로 계속해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경찰의 이러한 입장변화는 최근 수사권조정 논의를 두고 문재인 정부가 경찰의 선결조건으로 내건 '인권경찰 구현' 지시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개혁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걸기 시작하는 시점에 맞춰 사과 입장을 내놓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에 이어 경찰이 입장을 돌연 바꾼 것과 관련해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할 의료계와 공권력까지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