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 지역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몰리는 명산 가운데 하나인 광교산이 과도한 등산로 정비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멀쩡한 바위를 뚫어 철골 구조물을 세우는 등 자연을 훼손하고 경관마저 해치고 있어 등산객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 등산객 "철골 구조물 보러 산에 오르는 건 아니지 않나"
광교산내에도 '형제봉'은 자연 경관이 훌륭해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유정렬(57·수원)씨도 퇴직 후 거의 매일 이곳을 찾아 자연과 함께 마음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형제봉은 유씨에게 더이상 '안식처'가 되어 주지 못하고 있다.
'광교산 등산로 재해예방 공사'라는 플래카드가 나붙더니, 봉우리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철골 구조물로 된 계단을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유씨는 "(계단이 없다고 해서) 못 올라오는 게 아니다. 좀만 돌아오면 된다"며 "산은 자연을 밟고 운동 삼아 오르는 건데, 이걸 구태여 막대한 돈을 써가면서 만들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철골 구조물을 보러 산을 오르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눈살을 찌푸렸다.
경기도 용인시가 광교산 형제봉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철골 구조물 계단을 설치해 자연경관을 해치고,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윤철원 기자)
형제봉으로 가는 방법은 줄을 잡고 바위 절벽을 오르는 길과 보다 완만한 경사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14일 경기 용인시 등에 따르면 형제봉 구간을 관할하고 있는 용인시는 올해 초부터 예산 1억8천만 원을 투입해 형제봉 등산로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비사업은 지난해 3월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바위에 낙뢰가 떨어져 한켠에 균열이 생기면서 낙석이 발생해, 우회하는 등산로에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용인시는 해당 등산로에 대해 '별도의 우회 등산로 구축이 바람직하다'는 안전진단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바위 절벽을 오르는 철골 구조물로 된 계단 설치 공사에 착수했으며, 다음달 1일 완공 예정이다.
◇ 멀쩡한 자연 훼손하고, 낙뢰 위험성은 오히려 ↑하지만 바위 위에 계단을 설치하려다보니 '멀쩡한' 바위를 뚫어 철재 빔을 박고, 고정시키기 위해 콘크리트 붇는 등 자연은 훼손됐다.
등산객 이윤옥(42·여·수원)씨는 "계단을 설치하기 위해 바위에 구멍을 뚫고, 나무도 제거했을 테니 그만큼 자연이 훼손됐을 것"이라며 "돌아가면 되는데, 굳이 (계단이) 필요해 보이지 않는데, 조금 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용인시가 명분으로 내세운 등산객의 안전 문제가 계단 설치로 과연 해결될 수 있느냐다. 낙뢰에 의한 바위 파손으로 등산로 정비를 시작해 놓고, 철골 구조물을 설치한 것이 오히려 낙뢰 위험성을 높인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시가 광교산 형제봉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철골 구조물 계단을 설치해 자연경관을 해치고,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윤철원 기자)
등산객 이보미(42·여·서울)씨는 "바위를 딛고 올라가는 것과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걸 비교해 봤을 때 (계단이) 덜 위험하다고 단정짓기는 힘들어 보인다"며 "경관상으로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데, 산을 이렇게까지 해서 올라와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용인시는 계단 공사가 끝나는대로 기존 등산로는 폐쇄한다는 방침이다.
용인시 관계자는 "등산로는 최대한 (자연을) 손을 안대고 만드는 게 좋긴 한데, 등산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다 보니,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경관상 목재 데크도 고려해봤지만, 유지 보수 수요를 최소화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철골 구조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산림훼손뿐 아니라 등산객들의 의견도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수원환경운동연합 윤은상 사무국장은 "기존 등산로가 위험하다고 하면 위험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루트를 찾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며 "용역 과정에서 어떻게 의견수렴을 했는지 모르지만, 과정이 어찌됐던 구조물 자체로 너무 과도하게 자연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