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발언은 '표현의 자유'도, '불가침의 영역'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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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③] 표현의 자유 편

특정 인종·성별·지역에 대한 비난과 혐오표현이 난무하는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2010년 이후 일베에서의 혐오표현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예쁘고 마르고 젊은 여성에게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예쁨'의 기준에서 벗어났다 판단하면 웃음거리로 만드는 예능. 여성을 끝없이 대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너무 멋진 나'의 소유물 정도로 바라보는 노래가사, 여성 유저임이 드러나면 공격받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게임판… 한국여성민우회가 미디어에서 마주하는 '여성혐오'에 제동을 걸고 바꿔나가기 위한 연속특강을 마련했다. 18일부터 4주 동안 진행될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특강을 옮긴다. 매주 토요일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여혐' 가사 나와도 노래만 '좋으면' 괜찮은 걸까
② 게임과 게이머는 어떻게 '여성혐오'하고 있을까
③ 혐오발언은 '표현의 자유'도, '불가침의 영역'도 아닙니다
<계속>

'표현의 자유'. 말 그대로 어떤 말과 생각을 '표현'할 때 보장되는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말이 마치 어떤 말을 해도 '자유'로서 존중받거나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1일 오후 열린 한국여성민우회 연속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3강 '표현의 자유' 편의 강의를 맡은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결코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 표현의 자유는 무한정 보장되어야 할까, 적절히 규제돼야 할까

한국사회의 표현의 자유는 국가보안법 철페 운동 등 민주화 과제의 하나로서 등장했다. 2000년대에는 인권의식의 성장으로 독자적 의제로 부상했고,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일간베스트 등을 주축으로 혐오표현이 크게 늘면서 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갈린다. 우선, 표현의 자유 근본주의는 물리적 위험에 임박했거나 그것이 명백하지 않는 한 국가 개입을 일관되게 불허하자는 입장으로 나쁜 표현에 맞서 더 많은 표현으로 싸우자는 '전투적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반면, 규제 옹호론은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소수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표현이나 자유·평등·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표현을 금지하자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혐오표현'을 규제하자는 주장이다.

혐오표현이란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감정으로서 인종주의, 호모포비아, 제노포비아, 반유대주의, 성차별주의 등 이데올로기 에 기반한 표현을 의미한다.

홍성수 교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을 △실제로 얼마나 큰 해악(harm)을 초래했는가 △교정가능성·피해회복가능성은 있는가 △위축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없는가 3가지로 들었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은 물리적 폭력에 비해) 사회적 해악을 측정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면서도 "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규제하려고 할 때에는 말하기 힘든 고통을 실체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자는 입장에서는 '교정가능성'과 '피해회복가능성'을 우선시한다. 홍 교수는 "표현을 규제하다 보면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기에, 자정이 될 수만 있다면 사회에 맡기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표현 규제에 따라 '위축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미국에서는 여성 직원을 상대로 한 언어적 폭력을 금지하려고 하자, 남성 직원들이 아예 여성 직원들과의 대화를 기피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됐고 또 다른 의미의 차별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 결코 '불가침'이 아닌 표현의 자유, '규제' 가능

1일 오후, 한국여성민우회 연속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3강 '표현의 자유' 편을 맡은 홍성수 교수가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하지만 최대한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인 미국에서도 어느 맥락에서 어떤 발언이 나왔느냐에 따라 규제와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어떤 말을 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오스트리아, 독일, 벨기에, 프랑스, 핀란드, 그리스, 헝가리, 체코, 덴마크, 영국, 포르투갈, 스웨덴, 폴란드, 브라질, 캐나다, 우루과이, 뉴질랜드, 러시아, 터키 등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홍 교수는 "표현 자체의 과격성이 중요한 건 아니다. 표현의 수위가 낮다고 하더라도 중대한 혐오표현이 되기도 한다. 스웨덴의 한 정치인이 지지자들 집회에 가서 '튀니지인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자 지지자들이 '내쫓아 내쫓아!'라고 했고, 정치인은 '그 정책을 추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단 두 마디를 했을 뿐이지만, 특정 국가 소속 이주자들을 쫓아내자는 과격하고 중대한 차별적 표현이었고 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에 기소됐다. 누가 어떤 맥락에서 얘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19대 대선 토론회 당시(4월 25일)에는 당선이 유력했던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의 질문을 받고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TV라는 공간과 정치인의 위치는 중요하다. (그의 발언이 사회적) 표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표현을 규제하지 않는 게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불가침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지만, (규제할) 이유가 있으면 한다"며 "해외에서도 어떤 맥락 안에 들어올 경우 (혐오표현을) 처벌한다"고 말했다.

혐오표현을 들으면 사람들은 두려움, 슬픔, 지속적인 긴장감, 자존감 손상, 소외감, 무력감 등을 느껴 심리적 영향을 받는다. 소수자들은 학업이나 일 같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고립과 단절을 경험할 수도 있다. 또한 소수자들에 대한 낙인·편견, 사회적 배제와 차별이 강화될 위험성이 있으며 프라이버시 침해에 이르게 될 수 있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 규제의 방향으로 △맞받아치기, 대항 표현, 더 많은 표현 등으로 맞서기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방향으로의 규제 △차별받는 소수자를 옹호·지지하는 규제 △차별시정기구(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한 구제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은 공통의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향해 말해지고, 해악을 끼친다. 반대로 특정인을 비난한다 하더라도, 그 말은 집단이 대한 비난이 된다"며 "재특회 시위에 맞선 '카운터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일 한국인을 고립시키려 한 인종주의자 집단인 재특회를 거꾸로 고립시킨 성과를 거뒀다. 여기에는 차별시위 확산을 저지하고 축소하는 효과도 있었다. 혐오세력은 반격을 가하면 위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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