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자'의 국내 극장 상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개봉을 한달 가량 남겨 둔 상황에서 CJ CGV 등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동시 상영'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로써 넷플릭스와 '옥자'는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 이어 또 한 번 극장들과 대립각을 세우게 됐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통상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한 후, IPTV 등 2차 플랫폼에서 공개하는 유통 시스템이 있는데 '넷플릭스'가 이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일방적으로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동시 개봉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마치 한국에 특혜를 베푸는 것처럼 동시 상영해주겠다고 하는 건 이상하다. 우리가 넷플릭스가 결정하면 모두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이야기했다.
이어 "'넷플릭스'가 '옥자'를 이용해 가입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전략이 아닌가 싶어 우려스럽다. 일정 기간 유예도 없이 바로 동시 개봉을 하는 것은 선순환적인 국내 영화 산업 생태계 자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내 배급을 맡은 NEW 관계자는 "오는 29일 개봉을 결정했고 논의 중이다.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아직까지 동시 상영이라는 조건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멀티플렉스와 2차 플랫폼에서 동시 개봉을 한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극장에 오래 걸리기 어려운 규모가 작은 영화들은 이미 몇년 째 IPTV에서 동시 개봉을 해왔다. 그러나 대규모 상업영화들은 대체로 '선극장' 원칙을 지켜왔다. 멀티플렉스에서 먼저 개봉해 짧게는 1~2주, 길게는 두 달까지도 스크린에 걸렸던 것이다. 더욱이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복귀작이니 그 상업적 가치가 상당하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지난해 개봉한 '셜록: 유령신부'가 있다. 영국 방송 BBC에서 방송된 이 스페셜 에피소드는 국내에서는 극장에 함께 상영됐다. 당시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개봉이 이뤄졌다.
김형호 영화 시장 분석가는 "사실 극장과 2차 플랫폼의 동시 상영은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방식이다. 다만 이번 사례가 다른 것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이라며 "더 큰 스크린과 좋은 사운드를 선호하는 관객들은 극장을 선택할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넷플릭스를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 '옥자'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제공)
칸영화제 당시 프랑스극장연합회 또한 '옥자'의 경쟁 부문 진출에 반대했었다. 이로 인해 칸영화제는 내년부터 프랑스 극장 내에서 상영되는 영화들만 경쟁 부문에 초청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극장 상황과 국내 극장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
실제로 프랑스 극장들은 영화 산업의 선순환 구조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0%가 넘는 영화지원기금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의 스크린 규제 원칙을 지켜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한다. 정부와 협력해 공적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며 영화 진흥에 힘써온 셈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아니라, 중소 규모의 극장들이 튼튼하게 뿌리 내렸다.
미국식 멀티플렉스 방식을 도입한 대기업들이 전통적인 극장 문화를 가진 프랑스처럼 '선극장' 개봉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SNS에는 '옥자' 상영 거부 의사를 밝힌 멀티플렉스를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의견들이 주를 이룬다.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한 국내 영화 생태계는 '선순환 구조'라고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 중심에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본질적인 문제점을 논할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형호 영화 시장 분석가는 "오히려 우리 영화 시장은 프랑스보다 미국 시장에 더 가깝다. 멀티플렉스 시스템 자체가 미국에서 가져온 것 아니냐. 저런 본질적인 이야기는 멀티플렉스가 아닌 평론가가 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3대 멀티플렉스 극장 중 하나인 메가박스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현재 개봉 논의 중이고, 개봉 한 주 전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김 분석가는 "사실 한국 시장 홍보효과를 생각한다면 넷플릭스가 '옥자'에 투자한 제작비도 그리 비싸지는 않다. 만약 멀티플렉스와 넷플릭스가 극적으로 동시 개봉을 이뤄낸다면 극장에서는 '전일 개봉'을 할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긍정적 입장을 가진 멀티플렉스에서만 개봉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