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오오엔육육닷컴의 물류창고. (사진=고무성 기자)
"개성공단 입주기업들만큼 정권 교체를 간절하게 바란 중소기업들도 없을 겁니다. 거래처들부터라도 살려주세요."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의 한 의류업체.
물류창고는 주먹만한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창고 안에 들어서자 팔지 못한 멀쩡한 옷들이 어지럽게 가득 쌓여 있었다.
예전 같으면 5t짜리 탑차 3대가 창고 앞에서 온종일 돌아가며 짐을 싣거나 풀면서 분주했었다. 현재는 탑차 2대도 헐값에 팔아넘겼다.
23명의 직원으로 가득했던 본사 사무실은 현재 3명이 텅 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관계 회사까지 36명에 달했던 직원은 8명 만이 남았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아직 80억 원의 피해가 보상되지 않았다.
북측 근로자 990여 명을 고용하며 연 80억 원의 매출을 올렸던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오오엔육육닷컴은 개성공단 폐쇄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신용등급도 A+에서 CCC로 곤두박질쳤다.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로 원자재를 대부분 놓고 오면서 설상가상으로 거래처들에게 10억 원대에 달하는 12건의 줄소송도 이어졌다.
그래도 강창범(52) 오오엔육육닷컴 대표는 거래처들을 걱정했다.
개성공단에 6년간 입주했던 강 대표는 "거래처들부터 살리지 않으면 피해가 확대돼 재생산된다"며 "앞으로 이런 피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강화해 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 입주기업들, 소송 시달려…소수 직원만 남아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의류가공업체인 만선은 개성공단 폐쇄 전 북측 근로자 1300여 명을 고용하며 연 16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금은 만선도 믿고 납품한 업체들에게 돈을 못 줘서 35억 원 상당의 소송 15건이 들어온 상태. 보상받지 못한 원자잿값만도 31억 원에 달한다. 매출은 현재 꿈도 못 꾸고 있다.
40명이던 직원은 6명만 남고 모두 퇴사했다. 향후 기업 재건을 위한 기초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직원들만이 대표를 믿고 남아있다.
개성공단에 10년간 입주했던 성현상(62) 만선 대표는 "지난 박근혜 정부 때 많은 회의를 느꼈는데 새로운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하니 굉장히 마음이 훈훈하다"며 "가슴도 뜨겁게 차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일성레포츠도 북측 근로자 740명을 고용하며 연 15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일성레포츠.
하지만 일성레포츠도 예외는 아니었다. 39억 원 상당의 유동자산을 개성공단에 남기고 나오면서 28명이던 직원들은 3명을 제외하고 모두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개성공단에 9년 동안 입주했던 이은행(64) 일성레포츠 대표는 "회사가 잘될 때는 상도 주더니 안 좋으니까 이제 가압류도 곧 들어온다"면서 "속상해서 잠도 안 오고 우울증도 걸려서 약을 먹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북한 전문가 "개성공단 정상화가 근본적인 해법"개성공단 입주기업 124곳이 정부에 신고한 피해액은 9446억 원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투자자산, 유동자산 외에도 거래 취소 등으로 물게 된 위약금과 개성 현지 미수금, 지난해 영업손실 등을 모두 포함할 경우 총 피해액은 1조 5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전문 회계법인 검증을 통해 입주기업들이 총 7779억 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하고 이 가운데 5079억 원을 지원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현재 정부에서 확인된 피해액만이라도 모두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방북을 추진하기 위해 통일부와 협의에 들어갔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회장이 된 뒤 2주 동안 80여 곳의 기업을 방문했는데 앉아서 듣는 것 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개성공단의 재개 시점까지 기업들이 연명할 수 있도록 지난 정부에서 확인한 금액만이라도 풀어줬으면 하는 것이 우리 기업들의 간절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최근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따른 입주기업들의 피해를 추가로 지원하는 방안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보고했다.
전액 보상 방침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오면서 기업들은 큰 기대를 걸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추가 지원을 어떻게 할지 확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 전문가는 개성공단 정상화가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조언했다.
개성공단에서 4년간 대북협상을 담당했던 김진향 전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큰 틀에서는 개성공단 정상화가 근본적인 해법"이라며 "그러면 다른 피해 보상들도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잇따른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는 개성공단과 전혀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북핵 미사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되고 북한과 만나야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