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검·경수사권 조정의 전제로 경찰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자체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건 관련자에 대한 진술 강요부터 이른바 '故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까지 그동안 경찰에서 실제로 상당한 인권침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자료사진)
◇ "물대포 제한" 인권위 권고도 무시
청와대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01년부터 15년간 접수한 사건 가운데 경찰(20%)에는 구금시설(교도소·30.2%) 다음으로 많은 진정이 몰렸다.
이는 청와대가 지난 25일 경찰의 숙원인 수사권 조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인권침해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제시한 근거가 됐다.
실제로 인권위 통계를 보면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만 해도 "경찰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진정이 접수된 건은 모두 1383건에 달했다.
내용별로는 △폭행이나 가혹행위, 과도한 장구사용(336건) △폭언과 욕설 등 인격권 침해(294건) △불리한 진술 강요나 심야조사 등 편파수사(236건) 순으로 많은 진정이 나왔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전남 보성군 농민회 백남기(69) 씨에게 경찰이 멈추지 않고 물대포를 쏘고 있다. 윤성호기자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5년 11월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쓰러진 농민 백남기(당시 69세) 씨에게 물대포를 직사 살수해 숨지게 하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한 사건이 꼽힌다.
경찰은 인권위로부터 물대포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라는 권고를 지난 2008년과 2012년에 2차례나 받고도 사실상 무시한 상태였다.
백남기 씨 딸 백도라지 씨는 26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이 바깥에서 선언하는 것과 재판정에서 공권력의 피해자인 저희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다르다"고 토로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청와대 인근 집회를 일괄적으로 금지하지 말라거나 사건 관련자를 함부로 채증 촬영하지 말라는 등의 인권위 권고 상당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 장애인이나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일선 경찰관들에게 고성·폭언을 듣거나 부당하게 수갑을 차는 일도 여전하다.
지난 2015년 5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삼거리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등 4.16 국민 참여 행동 참가자들이 경찰의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맞고 있다. 박종민기자
◇ 긴급회의 "차제에 거듭나자"청와대의 요구 이후 경찰은 자체적으로 인권침해 요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보이고 있다.
"집회 현장에 물대포나 차벽 등을 배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는 발표는 그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경찰청과 각 지방경찰청에서도 이를 놓고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안팎에서는 차제에 '인권경찰'로 거듭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A 경위는 "백남기 농민 사건의 경우에도 경찰이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직사살수를 했던 게 문제였다"며 "이런 인권문제를 개선한 뒤 수사권 독립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인권센터 장신중 소장(전 강릉서장)은 25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청와대에서는 이번에 대국민 인권침해, 수사와 집회시위 등을 언급한 것 같다. 하지만 조직 내부의 인권 침해도 심각하다"고 털어놨다.
국제앰네스티 변정필 팀장은 "경찰이 인권을 보호하고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조직이란 것을 아직 입증하지 못했다"면서 "경찰조직 내외부에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인권침해의 경우 수사권조정과 별개로 경찰이 당연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