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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놀림받던 '떡수'에 자본권력 벌벌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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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 'AI 기술' '4차 산업혁명' 진단

(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이미 예견됐던 결과였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세계 최강 바둑기사로 꼽히는 중국의 커제 9단은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파격적인 행마 앞에서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지난 23일 열린 커제 9단과 알파고의 첫 대국은 AI의 압승, 인간의 완패로 끝났다. 앞서 이세돌 9단에게 완승했던 알파고의 실력을 훌쩍 넘어선 '알파고 2.0'의 성장은 경이로웠다.

AI·사물인터넷·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은 이미 미래 사회에 대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무인 자동차, 자동 번역기, 지문·홍채 인식 등에서 볼 수 있듯이 AI를 활용한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AI 상용화도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사회학자인 이원재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AI 상용화를 추구하는) 자본은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 AI를 다루고 있을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포드주의(Fordism)로 대표되는 대규모 제조업 같은 과거 기술과 달리, AI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AI 상용화를) '자본'으로 일반화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현재 AI를 가장 현실성 있게 실현한 기업은 구글이 유일합니다. 이들이 지닌 막대한 데이터와 그 막대한 데이터를 매우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 덕에 가능했던 거죠."

◇ "AI가 만들어낼 미래…'지성의 의외성'에 주목해야"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사진=이원재 교수 제공)

 

이 교수는 "현재 이러한 기술 인력은 정규 대학 교육이 만들어 낼 수 없는 매우 제한된 숫자의 사람들"이라며 "이에 따라 '자본'의 독점적 지위'보다는 '기술'의 독점적 지위가 더 힘을 발휘하고, 이는 결국 기존 자본 세력의 사회·경제 권력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대국을 벌일 당시 알파고는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운 바둑에서만큼은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사람들의 믿음을 여지 없이 무너뜨렸다. 알파고는 그간 인간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가치 판단력을 AI가 획득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로 인해 SF 영화에서 흔히 봐 온 'AI로 인한 인류의 위기'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혐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식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AI의 능력을 '디스토피아'(dystopia)로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며 "AI가 만들어낼 미래는 현재 여러 가능성들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1964년 스웨덴 출신 경제학자·사회학자인 구너 뮈르달(Gunnar Myrdal·1898~1987)이 참여해 작성했던 '트리플 레볼루션'(The Triple Revolution)이라는 공개 문건에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비관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시사적입니다. 먼저, 현재 우리가 4차 산업혁명 기술에 대해 비관하는 사고 방식이 1964년에 나온 이 문건에서 거의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이들이 염려한 대규모 실업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데 있어요. 이후 서비스 산업의 활황으로 경제와 고용이 다시 고점을 찍었습니다. 이는 ('트리플 레볼루션'이 나오고) 약 10년 후 발간된,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1919~2011)의 '탈산업사회의 도래'(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에서 제시된 낙관론이 맞았던 것으로 판명된 셈이죠."

그는 "우리가 AI에서 주목하는 것은 '지성이 인간의 지적·미적 기준을 벗어나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는 데 있다"며 "예를 들어 이세돌과의 대국 때, 알파고의 이상한 수를 '떡수'라고 하거나 '알파고의 모자람' 등으로 해석했다가, 시간이 흘러 '신선의 수'로 재평가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의 가능성은 이 '지성의 의외성'에 있습니다. 이는 상투적인(conventional) 지적 기준에 익숙한 인간 사회에서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예측을 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흐름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자본'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변화가 초래할 파괴(disruption)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 "AI기업들, 규제 덜한 곳으로 옮겨 다니며 '기술 잠재력' 극대화에 몰두"

영화 '아이 로봇' 스틸컷(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이 교수는 "구글 등 AI 기업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사회·정치적 구속을 가하려는 움직임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한 정책의 호불호를 떠나, 중국의 규제·유럽의 과세·서울시의 우버 서비스 제한 등이 그런 것들"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AI 기업들이 앞장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보다, 사회 전체가 이를 모니터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적 규제를 만드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겁니다. AI 기업들은 현재 제도·정치적인 규제들이 덜한 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기술의 '잠재력'(potential)을 극대화 하는 방식에 몰두하고 있어요. 현재 이들의 목표는 완성된 AI를 컨트롤(control)하는 것보다는, 실현되지 않은 기술적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것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는 SF 소설·영화 등에서 주요 소재로 쓰여 온 '로봇 윤리'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생각을 전했다.

"만약 로봇이 인간 사회의 일원이 된다면, 즉 '시민권'을 얻는다면, 당연히 윤리뿐 아니라 법적 의무도 부과돼야 하지요. 하지만 이 문제가 거론되기 전에 좀 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AI·로봇을 주체(subject)로 받아들일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극진히 사랑하지만, 반려동물은 대상(object)입니다. 이들(반려동물)에게 시민적 권리를 부여하거나, 인간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보지는 않으니까요. 이들이 행하는 인간적 관점에서의 비윤리적 행위, 예를 들어 노상방뇨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요. 윤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인간과 동등한 주체로 봐야 한다는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이 교수는 끝으로 인간과 자본, 그리고 기술이 공존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기술이 초래할 사회적 변화의 방향성을 미리 예단해 '건전' '바람직' 등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며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오히려 기존의 권력 관계가 유지되는 방향으로 유도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사회 전체의 제도적 역량 강화 이전에 '개인들의 역량 강화'(empowering individuals)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역량은 단순히 재력이나 지적 능력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개인은 생애 주기, 직업의 종류, 가족의 구성 등에 따라 매우 상이한 조건에 놓이게 되니까요. 사회적·인구학적 여건에 따라 향후 10여 년간 펼쳐질 기술·산업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 대규모 국가 사업을 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입니다. 개별 시민이 AI에 대비한 역량을 갖출 기회를 고루 제공받을 때, 인간과 자본과 기술의 공존을 위한 사회적 정치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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