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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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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경 장편소설

 

추정경의 장편소설 '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 자매'가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부모를 잃은 어린 세 자매가 무허가 컨테이너촌에서 출발해, 대안화폐를 쓰는 낯선 공동체로, 어린 소녀들이 철야 노동을 하는 휴대폰 공장으로 과감히 이동하면서, 가난에 옭매인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서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여기, 가난하지만 굳센 세 소녀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의 벽을 부수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려고 시도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강렬한 첫 장면, 폭설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속에서 세 자매 중 둘째이자 주인공인 ‘온다정’이 컨테이너 지붕 위를 바쁘게 옮겨 다니며 넉가래로 눈을 치우고 또 치우는 장면이 암시하듯이, 이들은 현실의 힘이 아무리 강력하고 끈질기게 짓눌러도 무릎 꿇지 않는다.

이처럼 추정경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무허가 컨테이너촌과 대안 공동체와 대량 생산 공장이라는 세 공간을 빠르게 통과하면서, 자본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세상, 자본의 힘에 짓눌린 사람들의 행로, 가난의 대물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세상, 그리고 이 모든 난관과 불길한 조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들을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보여 준다.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세 자매가 당도한 새로운 세계도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대안을 꿈꾸며 힘겹게 쌓아 올렸던 세계는 어느 날 처절하게 무너지고, 이제 세 자매는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간 현실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폐허 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울러 희망이란 언제나 미완성 상태로 우리 앞에 새롭게 등장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죽은 경제학자의 이상한 돈과 어린 세 자매'는 돈이 돈을 낳고 사람 위에 군림하는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소설이다. 부모와 할머니를 잇달아 잃은 어린 세 자매가 대안 공동체인 ‘돈나무 공동체’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돈에 지배받지 않는 혁신적인 세계를 꿈꾸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돈나무 공동체’는 게젤과 슈타이너의 정신을 토대로 세워진 마을이다.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감가화폐를 채택해 돈의 축재를 막고 그 대신 제때 필요한 곳에 돈을 씀으로써 소수가 아닌 다수의 행복을 도모해 보자고 합의한 사람들이 강원도 두메산골에 공동체를 일구었다. 이들이 쓰는 감가화폐의 이름은 ‘재노시’인데, 돈의 가장 큰 존재 목적인 ‘재화와 노동과 시간을 교환한다’는 의미다.

“돈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릴 만치 돈이 많아서 그래 지은 기 아이라 거기서는 돈이 나무처럼 자라다가 때가 되믄 열매를 맺고 이파리도 떨자 뿌고 장작도 되고 다시 재가 돼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캐서 돈나무란다. 돈이 늙어 가는 곳이라데. 희한하제?” _본문 29쪽

한계와 허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대안을 찾아가기 위해 집단지성을 발휘하던 돈나무 공동체는 어느 날 예기치 못했던 사건을 맞아 처절한 파탄을 맞게 된다. 그리고 폐허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싹을 틔운다. 저자는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현장으로 돌아온 다정의 모습을 통해 실패를 딛고 다시 일구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어둠 속에서 ‘야광별’처럼 빛나는 삶,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책 속으로

여름에는 찜통 같은 더위와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 얼어 버려 똥탑이 쌓이는 공동 화장실까지 무엇 하나 사는 게 녹록하지 않은 이곳에서 가난을 배웠다. 돈이 없다는 건 그저 불편함일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은 그 말을 듣는 그 순간까지였고 현실 속 가난의 불편함은 유통 기한이 긴 참치 통조림 같았다. 개봉하기 전까지는 부패하지 않는 상식. 그러나 뚜껑을 열고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썩기 시작하는 건 가난과 통조림 속 참치가 똑같다. 가난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일찍 철이 들어 버린 언니의 말이었다. _본문 13~14쪽

추정경 지음 | 돌베개 | 275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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