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에서 주인공 심재복 역을 맡은 배우 고소영 (사진=킹엔터테인먼트 제공)
90년대의 대표적인 청춘스타 고소영은 '신세대', '당찬' 등의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어딘지 모르게 도도해 보이는 인상은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오랜 시간 이어졌다.
동갑내기 배우 장동건과 결혼한 후 고소영은 결혼생활과 육아에 전념했다. 그렇게 쉰 기간이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각종 기사에 '10년'이 강조되는 까닭에 부담도 컸지만, 씩씩하고 주체적인 캐릭터 심재복의 매력에 끌려 KBS2 '완벽한 아내' 출연을 결정했다.
'완벽한 아내'의 심재복은 돈, 사랑, 복이 없는 가련한 인생이지만 집안의 가장으로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씩씩함을 지닌 여성이다. 수상한 주부 이은희(조여정 분)를 만나면서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 펼쳐져 미스터리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편 구정희(윤상현 분)의 외도를 목격하기도 하고, 직장 동료인 강봉구(성준 분)와 가까워지기도 한다.
첫 방송 때부터 SBS '피고인', MBC '역적' 등 막강한 경쟁작들이 포진해 있던데다, 뒤로 갈수록 개연성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전개 때문에 '완벽한 아내'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남긴 채 시청자 곁을 떠났다.
11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완벽한 아내'의 주인공 심재복 역을 맡은 고소영을 만났다. 솔직한 성격답게 그는 작품을 하면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가감없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드라마가 종영했다. 소감은.
많이 아쉬웠던 것 같다. 재복이 캐릭터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저는 재복이 캐릭터가 좋아서 애착이 많았다. 캐릭터가 많이 죽어서(매력이 사라져서) 끝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것 같다. 마지막 한 8부 정도는 없지 않아 스트레스가 있었다.
- 심재복 캐릭터가 좋았지만 아쉽다고도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지 설명 부탁한다.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캐릭터 때문이었는데 그게 무너져갔다. 어떻게 보면 뻔하고 굉장히 평범한 아줌마이지만, '줌마파워'로 꿋꿋하게 헤쳐나가고 할 말 다하는 캐릭터라 신선하고 좋았다. 아줌마가 갖는 힘이 있지 않나. 미스(Miss) 때는 못하지만 엄마들은 할 수 있는. 억척스럽지만 그 억척스럽다는 게 나쁜 표현이 아니고, 당당한… 그런게 너무 좋아했는데 약간 주체성이 떨어지면서 연기하기가 혼란스러웠다. 은희는 확실한 개연성과 목적의식이 있는데 재복이는 그렇지 않았다. 없으면 극이 흘러가지 않긴 하지만, (심재복 캐릭터가)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인물처럼 그려지니까 너무 안타까운 거다. 개연성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씬을 요구했는데 잘 안 됐다. (드라마 자체가) 은희가 벌려놓은 판에서 벌어지는 거다 보니까. 은희에 대해선 가이드라인이 있었는데 재복이는 안 그랬던 것 같다. 또 시청률이 생각한 것보다 나오지 않아서인지 (이야기를) 세게 푼 면이 있다. 은희라는 캐릭터(의 정체)가 너무 빨리 노출되기도 했고. 처음에 가졌던 씩씩하고 당차고 속시원하게 내뱉는 말이 설득력 있었는데 나중에는 그렇지 않아서 아쉽고 서운한 점이 있다.
- 초반에 설정된 심재복 캐릭터는 어땠나. 대본은 얼마나 보고 들어간 건가.4부 정도 보고 들어갔다. 당시엔 6부 정도 나와 있었다. (제 캐릭터가 어떻게 될지) 작가님이 얘기 안 하시는 건 복합장르라서 그런가보다 싶었다. 나쁜 여자의 계략을 잘 알아서 결국 가정을 지키는 내용이라고 봤는데, 극중에서 남편 구정희(윤상현 분)이 내연녀와 바람도 피우고 그랬다. 이런 남자를 굳이 지킬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반면 봉구와의 관계는 달다구리한 커플은 아니지만 삼촌-조카 하는 그런 애정씬이 되게 좋았다. 서로한테 애정을 느낄 만한 충분한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심재복이) 뒤에 가서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되고, 구정희한테 하는 게 집착처럼 보이는데다 목적의식도 없어서 그런 부분을 연기하는 게 힘들었다.
고소영은 '완벽한 아내'에서 심재복 역을 맡아 망가지는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사진='완벽한 아내' 캡처)
- 이은희가 불타죽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결말을 어떻게 봤나.
은희는 재복이를 괴롭히지만 연민이 갈 정도로 본인도 학대를 받았던 인물이다. 재복이의 울림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은희가) 가족 품으로 돌아가서 잘못된 정신에 대해 치료받고 사랑받고, 재복이와 봉구의 멜로도 좀 더 명확하게 가길 바랐다. 작가님은 굉장히 자극적인 걸 원하셨던 것 같다. 정나미(임세미 분)가 죽고 나서 악몽처럼 나타나는 것도 공포영화처럼 연출했는데 작가님이 그걸 보고 되게 좋아하셨다고 하더라. 그런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는) 재복이가 솔직히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연기를 어떻게 해야 되나 그게 되게 어려웠다.
- 캐릭터에 공감하기 힘들면 연기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마인드컨트롤은 어떻게 했는지.제 별명이 '보조작가'였다. (극중에서) 상황 점프가 많았다. 어느 날 남의 집에 들어가 있는 거다. 아니 도대체 얘가 여길 어떻게 들어간 거지? 싶게. 상황에 맞게 카메라팀과 동선을 짰고, 너무 심할 경우에는 감독님과 얘기해서 조율했다. 작가님이 마음이 여리셔서 '(대본에 있는 상황) 이거 아니면 안 돼' 하는 분은 아니었지만, 제가 생각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러니까 너무 불편했다. 봉구나 3총사 친구들 만나는 촬영은 편했는데 그런 씬이 많이 주어지지 않으니까 나머지 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얘(심재복)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집착녀 같이 보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외로웠다.
- 후반부 심재복 캐릭터를 연기할 때 어려움이 많았나 보다.제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감독님하고도 많이 이야기 나눴다. 감독님이 많이 달래주셨다. 너무 집착으로 보일 만한 대사는 바꾸고 싶다고 의견 피력도 했다. 아, 산장 씬에서 키스씬이 있었다. 그때 성준 씨가 묻더라. 여자주인공이 울면 왜 (남자주인공이) 키스를 하느냐고. 오히려 '나랑 사귀자'는 대사했을 때는 키스가 어울리지만, 어지럽다는 이유로 아이들도 만나러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안 어울린다고 봐서 따뜻한 포옹으로 갔다. 대본에 '심쿵' 이런 표현도 있었지만 저희는 오글오글하게 하지 말고 톰과 제리처럼 하자고 했다. 반은 애드립이었다. 성준 씨가 애드립을 되게 좋아한다. 투닥투닥하다가 갑자기 수줍어하는 건 이상한다고 봤다. 캐릭터를 살리면서 멜로를 하고 싶었다. 뻔하지 않은 신선한 멜로라 좋았다.
- 그럼에도 '완벽한 아내'를 하고 나서 얻은 점이 있었을 것 같다.작품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연기 재개에) 첫 스타트를 끊었다는 홀가분함이 있다. 아줌마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 같다. 아, 온갖 장르의 연기를 다한 것도 있다. 공포, 스릴러, 코미디, 멜로 등. 하루에 울다가 웃다가 그런 게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웠다. 별걸 다해봐서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할 수는 있겠다 하는 생각은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작품 선택하는 기준도 더 명확해졌고. 앞으로는 뭘 봐야겠다 하는 것도 생겼다. (복귀작에서) 친숙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간 건 잘한 것 같다.
(노컷 인터뷰 ② 25년차 고소영도 느낀 '남초'… "작품 선택 폭 좁아진 건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