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권자의 고민은 하나일 것이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 여기에 더해 유권자라면 고민해야 할 질문이 하나 더 있다. "뽑지 말아야 할 종류의 후보는 누구인가?"
우리는 독일과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정치학자 얀 베르너 뮐러가 쓴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를 통해 이 질문에 우회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는 현상을 지켜봐온 저자는 포퓰리스트를 왜 그리고 어떻게 판별하고 다루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1장은 어떤 정치행위자를 포퓰리스트로 볼 수 있을지 기준을 제시하며, 2장은 집권한 포퓰리스트가 어떻게 헌법마저 새로 쓰는지 보여준다. 3장에서는 최근 서구 전반에서 부상한 포퓰리즘의 원인을 심도 있게 짚어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포퓰리즘에 맞설 수 있는지 구체적인 정치적 방안을 제안한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특정 후보의 공약이나 행보에 "포퓰리즘" 딱지 붙이기가 성행 중이다. 얼핏 '선심성' '인기몰이' 같은 단어와 맞바꿔도 비난의 문맥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포퓰리즘이 '대중영합주의'로 번역되어온 것에 미루어보건대 이러한 용례가 틀려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행위가 비난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차피 여론에 기대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정치인은 '대중'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최대 다수의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쓰며, 다들 자기가 '서민'의 생각과 (특히) 감정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포퓰리스트란 혹시 내가 싫어하는 정치인이 잘나갈 때 갖다 붙이는 딱지가 아닐까? 포퓰리즘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진정한 목소리"가 아닐까?(10쪽)
저자는 포퓰리즘이 국민으로부터 너무 멀어진 정치에 대한 잠재적 교정 장치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포퓰리스트로 지목된 정치인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지 실례를 통해 하나하나 파헤친다. 이를 통해 독자는 포퓰리즘이 무엇이고 포퓰리스트를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는지에 관한 실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포퓰리스트 판별법하나, “포퓰리스트는 반엘리트적이며 반다원적이다.”둘, “포퓰리스트는 자신만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포퓰리스트로 자주 언급되는 정치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의 이미지는 '거침없는 막말' '무례한 태도'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서나 무례하게 굴며 보는 이의 한계를 시험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매너'가 포퓰리스트의 특징은 아니다.(57쪽)
그렇다면 정치인 개인의 특징이 아니라 지지층의 계급적 특성으로 포퓰리즘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 또한 아니라고 말한다. 대체로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은 남성이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한다는 분석 결과는 사실이지만,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지지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조사 또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27쪽)
포퓰리스트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눈보다 귀를 열어야 한다. 포퓰리스트는 매우 특정한 종류의 언어를 구사하는데, 이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반(反)엘리트적 발언이다. 그들은 엘리트는 부패했으며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면서 '서민(국민)'을 엘리트의 반대되는 선량하고 옳은 집단으로 설정한다. 둘째, 이러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강변하면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은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 반다원적 태도를 보인다. 포퓰리스트는 끊임없이 '국민'을 찾고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하지만, 그를 지지함으로써 실제적인 정책상, 법률상 공정한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포퓰리스트의 세 가지 통치 기법 포퓰리스트는 집권하면 국민이 원한다는 명분을 등에 업고 국가를 사실상 '식민화'한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는 개혁을 주도하거나 '국익'에 반하는 보도를 삼가라며 언론을 압박한다.(65쪽) 입맛에 맞는 개헌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터키에서는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의 개헌에 관한 국민투표가 통과되어 에도르안 터키 대통령이 장기 집권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부정 투표 의혹과 무효 시위가 이어졌지만, 에도르안 대통령은 투표 결과와 관련해 "우리는 투표함이 있고, 민주주의의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우리는 그것을 국가 의지(national will)라고 부른다"며 터키가 사실상 독재 체제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국내외의 비난을 일축했다. 이것이 포퓰리스트의 첫 번째 통치 기법이다.
두 번째는 명백한 후견주의다. 포퓰리스트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대가로 유·무형의 반대급부를 지급한다. 오스트리아의 포퓰리스트이자 극우 정당 정치인 외르크 하이더는 길거리에서 지지자들에게 100유로씩을 나눠주며 국민의 후견인을 자처했다.(66쪽) 이들의 후견주의는 정책적 혜택의 '분배'가 아니다. 포퓰리스트는 자신의 지지 세력만이 '진정한 국민'이며 이들만이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왜곡된 명분을 내세운다.
마지막으로, 집권한 포퓰리스트는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사회를 탄압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만이 유일하게 국민을 대표한다는 상징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정당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득세 포퓰리스트는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연출을 선호한다. 14년간 장기 집권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은 서민들이 털어놓는 걱정거리를 들어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는데, 한 번은 동석한 국방장관에게 생방송 도중 콜롬비아 국경 지대에 10개 전차대대를 파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론 대신 SNS를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 연출이다.(63~64쪽)
저자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실제로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대의제에서 정당 정치가 약해진 틈을 타 나타나는 대의민주주의의 그림자이다. 바꿔 말해, 기존 정치 체제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때 포퓰리즘이 득세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퓰리스트를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포퓰리즘을 잠재울 수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포퓰리즘 정당의 지지층을 무시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배제의 방식 자체가 민주주의의 토대인 다원주의를 침식하기 때문이다.
얀 베르너 뮐러 지음 | 노시내 옮김 | 마티 | 160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