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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눈치보는 판사들…"재판 독립성 침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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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3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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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으로 판사 통제"…원세훈 사건 등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

(사진=자료사진)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잘해보자는 논의를 해야하는데 판사들 학회 모임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는 게 말이 되냐…."

대선 정국에 터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에 대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27일 이렇게 일갈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행정처가 '탄압'을 했다는 바로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었다.

그는 "재판을 지원하는 일을 해야할 행정처가 판사들에게 지시·감독하려고하는 행태에 대한 판사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며 "판사들은 진짜 블랙리스트가 있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는 상황까지 온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놨다는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대응차원의 문건이라고 결론지었다. 이 연구회는 인사 등 사법부 개혁에 대한 주제로 학술대회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법원행정처가 행사 축소 외압을 행사해 논란이 일었다.

사실 아직까지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전국의 판사들이 법관회의를 잇따라 소집하는 등 사태가 커지는 이유는 뭘까.

법원 내부 등 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의 본질은 인사권을 통한 판사 길들이기와 이에 따른 사법 독립성의 침해 위험성이다.

연구회가 지난 2월 전국 법관 3000여 명에게 보내 502명으로부터 회신받은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판사 10명 중 9명(443명·88.2%)이 "사법행정에 관해 대법원장, 법원장 등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한 법관이 보직, 평정, 사무분담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강하게 행사하다 보니 판사들이 눈치를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전했다.

대법원장은 모든 판사에 대한 임명권과 재임용권, 고법 부장판사 승진 결정권, 법원장 임명권 등을 갖고 있다.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갖다보니 '대법원장→법원장→판사'로 이뤄지는 수직적 관계가 형성되고 판사들은 윗선의 눈치를 보는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성적순으로 하다보니 인사 예측이 가능하고 보직 등 인사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는데 평정으로 인사를 하다보니 기준도 없고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다른 관계자는 "영장전담이나 형사합의부에 판사를 배치하는 기준이 뭐냐"며 "독일에서는 판사 내부에서 투표를 해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사무를 분장한다"고 지적했다.

애초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없애려고 한 고법부장판사 승진제도도 계속 유지되면서 양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세졌다.

실제로 판사들의 입지는 2012년 서기호 전 판사 재임용 탈락으로 크게 위축됐다고 한다. 한 판사는 "이제는 판사도 해고될 수 있다는 선례가 나와 판사들이 크게 동요했다"고 전했다.

서 전 판사는 '가카 빅엿'이라는 표현으로 논란을 빚어 근무평정에서 '하'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상대평가에서 '하'를 일정비율 무조건 주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재임용을 탈락시킬 수는 없다"는 반대의견도 나왔지만, 결국 서 전 판사는 법복을 벗어야했다.

한 변호사는 "일반 근로자의 경우 상대평가를 통해 해고할 수 없다는 판례도 있는데 노동법 위반 소지도 있는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장을 점정으로 사법부가 관료화되다보니 재판 독립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내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장담당이나 형사합의부 등에 말 잘듣는 판사를 배치하면 그게 바로 재판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판사 출신 변호사)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이 사법부 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된 대표적인 사례다.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은 2014년 9월 1심에서 국정원법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동진 부장판사는 대법원 내부 게시판에 "이범균 부장판사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정말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며 실명을 거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김 부장판사는 징계를 당했다.

한 법조인은 "국정원 댓글사건은 하나만 유죄 나오고 다른 건 무죄가 나올 수 있는 사건이 아닌 상상적 경합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런 결정은 대법원에서도 있었다. 201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직선거법까지 유죄로 판단한 항소심에 대해 재판부가 증거능력 판단을 잘못한 부분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공직선거법에 대해 무죄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취지로 법조계에선 해석하고 있다.

판사가 인사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면 어떻게 될까. 익명을 요구한 판사는 "'위에서 시키는대로 판결문을 써야하나' 하고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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