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연애 유무로 어떤 사람의 상태를 '구분'한다. 누가 정했는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지만 여하튼 '연애 적령기'로 여겨지는 20~30대일 경우, '왜 연애를 안 하니?'라는 질문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창비학당과 한국여성의전화가 도대체 그놈의 '연애'란 무엇인지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살펴보는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강의를 마련했다. '괜찮은' 연애를 하고 싶은 사람에서부터, 대안적 연애에 관심을 두는 사람까지 연애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3월 24일부터 5주 동안 매주 금요일에 펼쳐질 이야기를 들어본다. 기사화를 반려한 2강 '이성애를 고민하다'(3/31)를 제외한 4편의 기사가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① 연애·결혼 중인데도 연인이 떠날까봐 불안하신가요?② 벽 밀치기, 강제키스, 폭언…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③ "언니, 데이트폭력 쓰는 그 오빠랑 만나지 마요"④ 미레나, 에브라 패치, 누바링… 당신이 몰랐던 피임법<끝>
21일 오후,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5번째 강의 '우리에겐 피임이 필요하다: 함께 고민하는 피임 그리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랩 콘돔'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할 때 다양한 이유로 콘돔을 구하지 못해 랩을 콘돔처럼 쓴다는 기사가 보도됐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피임'. 말 그대로 임신을 피하는 일을 의미하나, 외국에서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을 통제(birth control)하고 가족 계획(family planning)을 한다는 더 넓은 의미로 쓰인다.
양육비 부담으로 아이를 원치 않는 부부가 늘어가고 있음에도, 주말드라마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는 피임약 먹는 장면이 숨겨야만 하는 죄를 지은 것마냥 묘사되기 일쑤일 정도로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피임 요구에 대해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다', '섭섭하다'는 식으로 반응함으로써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21일 오후, '사랑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5번째 강의 '우리에겐 피임이 필요하다: 함께 고민하는 피임 그리고 성적 자기결정권'이 열렸다.녹색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과장은 여전히 피임에 대한 인식이 낮은 현실을 짚은 후, 다양한 피임법은 물론 피임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찬찬히 설명했다.
◇ 70%가 계획되지 않은 임신… 왜 피임을 안 할까?윤 과장은 전체 임신 중 70%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며, 15~44세 가임기 여성 중 임신중절 경험율이 34%에 이른다고 말했다. 임신중절 경험이 1번인 경우는 24%, 2번 이상인 경우는 10%였고, 기혼은 58%, 미혼은 42%(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6)였다.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2015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피임실천율은 남학생 44.1%, 여학생 42.2%로 절반에도 이르지 못했다. 임신경험율은 0.2%로 낮은 편이었으나, 임신이 확인됐을 때 중절율은 71.6%로 높았다. 성관계 시작연령은 14세(2007년)→13.6세(2011)→12.85세(2013)로 낮아지는데도 피임실천율은 높지 않았다. 15~24세와 25~29세의 피임실천율도 각각 39.5%, 50.1% 정도로 낮았다.
그렇다면 왜 피임을 안하는 것일까. 피임 방법(약, 장치, 콘돔 등)에 대한 공포나 부작용을 우려하고, 건강을 염려하거나, 아무 방법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개인적·종교적 신념 때문에, 접근이 어려워서(처방받고 구입하는 데의 어려움+비용 문제) 등의 이유가 따라나왔다.
윤 과장은 국가 정책·의학적 가이드라인·비용·보험 정책 등의 '접근성'과 임신을 원하는지 여부·제대로 된 정보와 지식·사회적인 환경 같은 '필요성'이 맞닿는 지점에서 '피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생각보다 더 다양한 '피임법'
가장 일반적인 피임방법 중 하나인 경구피임약 (사진=pixabay)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알려진 피임법은 남성용 콘돔 사용이다. 피임 성공률은 82~98%로 구입하기 쉽고 의학적 부작용이 없으며 HIV와 성매개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재사용이 불가하고 오일 윤활제와 함께 쓸 경우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경구피임약 역시 흔한 피임 방법 중 하나다. 배란과 착상을 막아줘 91~99%의 성공률을 보이는 경구피임약은 여드름 완화, 난소암 예방, 생리통 완화, 비침습적 방법이라는 점이 장점이다. 그러나 성병을 예방할 수 없고 매일 같은 시간을 먹어야 하고 35세 이상 여성이나 흡연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허벅지나 복부 피하에 놓는 피임주사(DMPA, 사야나)는 티나지 않고 성관계에 지장이 없으나, 성병 예방이 되지 않고 2년 이상 사용하면 골밀도가 감소하는 단점을 지녔다. 비용은 7만~10만 원 정도다.
임플라논(99%), 자궁 내 장치인 미레나(99%)와 구리루프(99%)는 요즘 들어 젊은 여성들에게 알려져 주목받고 있는 방법이다.
임플라논은 팔 안쪽 피하에 성냥개비 크기의 막대기를 이식해 프로제스틴 호르몬 분비와 배란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언제든지 제거 가능하고 3년 동안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성병 예방이 안 되며 전문의 시술이 있어야 하고 삽입 시 통증이나 염증이 있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비용도 3년 유지에 30~40만 원(비급여)으로 높은 편이다.
자궁 내에 삽입하는 미레나도 프로제스틴 호르몬 분비와 배란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자궁내막을 얇게 만든다. 언제든지 제거 가능하고 성관계에 지장이 없으며 생리량이 주는 장점과 성병 예방이 안 되고 첫 3~6개월 간 부정출혈이 있을 수 있으며 연 6% 정도이긴 하지만 자연배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5년 유지에 30~40만 원(비급여)이 든다.
자궁 내에 삽입하는 구리루프는 구리이온이 내부에서 염증을 일으켜 착상을 방지한다. 언제든지 제거 가능하고 호르몬을 건드리지 않으며 응급피임이 가능하나, 성병 예방이 되지 않고 삽입 시 통증이나 염증이 있을 수 있고, 생리량이 증가할 수 있다. 5년 유지에 8~10만 원이 든다.
◇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피임법은 뭐가 있을까
여성 콘돔 페미돔 (사진=pixabay)
윤 과장은 해외에서는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접근하기 힘든 피임법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팔, 아랫배, 엉덩이 등에 붙이는 에브라 패치는 91~99%로 높은 피임율을 보인다. 3주 간 붙이고 4주째 휴약 기간에 생리를 하는 방식으로, 배란과 착상을 방지한다.
여성의 질내에 삽입하는 누바링(91~99%)은 1주일에 한 번씩 3주 간 한 개씩 넣고 4주째에 휴약하는 방식으로 배란과 착상을 방지한다. 여드름 완화, 골다공증·생리통 등에 좋으며 호르몬 용량이 낮은 게 장점이나, 체중이 90kg 이상일 시 효과가 감소하며 성병 예방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관계하기 최대 8시간 전부터 삽입 가능한 여성 콘돔 페미돔은 남성이 사용하는 콘돔처런 정자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성관계 전 자궁경부에 씌워 정자를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질 격막(다이아프람)의 피임성공률은 84~94%다. 2년 내에 재사용이 가능하며, 미리 삽입하면 성관계 중단할 필요가 없고, 의학적 부작용이 없다. 다만 성병 예방이 안 되고 적절한 크기를 찾기 위해 병원에 방문해야 하며 관계 도중 빠져나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개당 5달러 정도다.
◇ '피임'과 관계 맺기피임의 의미와 종류에 대한 이해가 낮고 실천율도 낮은 편인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피임을 비롯한 성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윤 과장의 설명이다.
윤 과장은 "핀란드는 7살부터 성교육을 하고 15세에는 콘돔과 피임교육이 의무이며, 고등학교에서는 쾌감을 얻는 과정이나 성적 기호의 차이까지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6살부터 성교육을 하는 네덜란드의 경우 10대 임신율이 가장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어, "스웨덴은 성교육으로 유명한 나라"라며 "4세부터 성교육, 15세부터 피임교육을 하며 1956년부터 아동 성교육을 의무화했다"고 전했다. 스웨덴에서는 교사가 되려면 성교육학을 필수로 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윤 과장은 "즐거운 성을 위해서도 피임은 필요하다"며 △파트너와의 관계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평소에 몸이 어떤지 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피임과 관련해 의료 전문가를 만났을 때에는 △친절하지 않더라도 주눅들지 말 것 △원하는 것은 말하고 궁금한 것은 구체적으로 물을 것 △진료나 상담 경험을 주변 여성들과 나눌 것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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