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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치유 사역을 위하여'..샘병원 박상은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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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초대석] 샘병원 박상은 원장 편

■ 방송 : CBS초대석 (CBS TV : 4월14일(금) 아침 7시 30분, 15일(토) 밤 11시 10분, 17일(월) 저녁 7시, 19일(수) 저녁 8시 10분)
■ 진행 : 조혜진 앵커
■ 대담 : 박상은 대표원장 (샘병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

샘병원 박상은 대표원장

 


샘병원 박상은 대표원장이 CBS 초대석에 출연해 기독병원인 샘병원 50주년의 의미와 '기독의료원'의 정체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상은 원장은 '기독교적인 의료'가 무엇일까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행하셨던 의료인 전인치유'라며, "샘병원을 통해 전인치유를 이뤄보려 힘썼고, 아프간 피랍 사건 생존자들과 이집트 성지순례 폭탄테러 생존자들의 치료에 전인치유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CBS 초대석 박상은 원장 편은 CBS 홈페이지와 어플리케이션(CBS TV)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이하 인터뷰 전문.

◇ 조혜진 > 단순히 육체의 질병 뿐만 아니라요 마음과 영혼의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서 온전한 회복을 추구하는 한 기독병원이 있습니다. 샘 병원 박상은 대표원장님 모셨습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 박상은 > 안녕하세요.

◇ 조혜진 > 샘병원이 올해 50주년이 됐죠? 50주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박상은 > 저희가 50주년을 성경에서 희년이라고 하잖아요. 희년은 회복의 의미이구요
그동안 수고한 우리 직원들도 좀 쉼을 누리고 또 뭔가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50년을 새롭게 계획하는 그런 회복을 저희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안양 지역에서 저희가 50년 전만 해도 안양 시도 없을 때였거든요. 그래서 냉천동이라는 이름도 차가운 물이 솟아나는 동네였어요. 거기 조그만 의원으로 시작된 병원이 이렇게 50년이 되면서 안양 샘병원 또 샘 여성병원, 한방병원, 군포 G샘병원까지 많이 커지게 됐습니다.

◇ 조혜진 > 그럼 각 병원의 원장님들이 계신데 원장님은 그 병원을 총괄하는 대표원장님이신건가요? 근데 제가 앞서 기독병원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근데 처음에 50년 전에 시작할 때는 그냥 일반병원이었죠? 근데 어떻게 해서 기독병원으로 변모가 된건가요?

◆ 박상은 > 지역병원으로 그동안 30여년을 지내오다가 우리 설립자 내외분께서 주님 을 영접하게 되고 그 아드님이신 이대희선생님, 혈액종양내과신데 또 아버 님 어머님으로부터 병원을 이어 받으면서 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병 원으로 만들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저희 기독병원으로 만들고 싶 은 생각에 저에게 밤에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기독병원 선교병원을 만들면 좋겠는데 와서 도와달라고.. 제가 한참 기도하고 실은 저는 잘 지내 고 있었거든요. 저는 부산 고신의대 교수를 하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누가 회' 일을 도우면서 성남중앙병원이라고 진료부장 일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기도해보니까 정말 하나님 기뻐하시는 병원을 하나 만들면 인생이 너무 보 람이 있겠다 싶어서... 17년 전이죠.

함께 이 병원에 와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기독병원 이 어떤 병원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면서 변화를 꾀하게 됐는데요,' 뭐가 만족이 되면 기독병원일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교회나 교단이 병원 을 구입하면 기독 병원이 되는 건가, 아니면 목사님이나 선교사님 좀 디스 카운트 해드리고 단기 선교팀 보내고, 아니면 직원들을 세례교인으로 뽑고 그러면 기독병원이 되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기독병원은 그 병원에서 행하는 의료가 기독교적인 의료를 행하는 병원이어야 하지 않 는가. 그래서 기독교적인 의료가 뭘까 생각해보니까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 셔서 행하셨던 의료였지요.

그래서 육체만 치료하는, 병만 치료하는 병원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과 관 계까지 치료하는 그런 병원이 되야 되겠다. 그래서 저희가 전인치료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전인치유를 하는 그런 병원을 만들자 해서 조금 조금씩 변화를 꾀하게 됐습니다.

◇ 조혜진 > 그러니까 기독병원이 뭘까 고민하면서 출발해서 전인치유 사역까지 오게 된 것 같은데요. 전인치유라는 게 언뜻 말씀하시긴 했지만 난해하고 좀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 박상은 > 보통 일반 입원실, 중환자실 이런 건 알잖아요. 근데 뭔가 육체 질병만 치료하는 병동이 아니고 마음도 좀 터치하고 그리고 영혼과 또 관계까지 치료할 수 있는 그런 병동을 만들자 해서 2007년도에 전인치유 병동을 처음 만들었는데, 마침 그때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때 살아오신 21분이 저희 병원에 첫 전인치유 병동에 입원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동안 준비했던 프로그램들.. 음악치료, 미술치료, 또 이제 그분들의 신앙에 따라서 말씀도 읽어드리고 기도도 하고 그러면서 전인치유 그 프로그램을 저희가 잘 운영을 했었어요. 그 분들이 회복이 되고 돌아간 이후에 이집트 버스 폭탄 테러 사건이 나서 또 4명이 돌아가시고 30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그 때도 25분을 저희 병원에 모시고 오셨길래 저희가 또 전인치유 프로그램을 했었죠. 그래서 어떤 육체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터치를 하는 그런 치료였는데..

얼마 전에는 세월호 유가족들도 저희 병원에 입원을 했었거든요. 제가 주치의를 했던 제 환자 남편이 세월호의 주방장이셨어요.

근데 단원고 학생들이 돈까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200명분의 돈까스를 큰 가마솥에 튀기면서 요리를 하고 있다가 배가 기울어진 거에요. 그래서 뜨거운 기름으로 중화상을 입고소 안간힘을 써서 복도까지 기어 나왔는데 거기서 기절을 한 상태에서 그때 선원이 도망가면서 발로 툭 차고 도망 간 상황에서 다시 파도에 휩쓸려서 주방에 처박혔다가 끝에서 세 번째에 발견이 되신 거예요.. 그래서 그 딸 둘 아들 하나가 직장을 그만두고 진도 팽목항에 들어가서 들어오는 시신마다 천을 들춰보면서 행여 아버지인가 싶어서 거의 뭐 백 구 이상의 시신을 확인을 했으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 분들의 마음까지 좀 터치해주는 그런 병동.. 그런 병원을 만들고 싶었던거죠. 겉으로 봐서 종합검사에도 나오지 않는 우리 마음의 내면의 상처들이 있잖아요. 또는 죄의 문제.. 그런 것들을 좀 터치하고 좀 치유해주는 그런 병원을 만들고 싶은 게 저의 바람이죠.

◇ 조혜진 > 10년 정도 돼가는 것 같은데요, 전인치유 병동 세우신지.. 그럼 많은 효과들이 나왔겠어요?

◆ 박상은 > 그렇죠. 전인치유 프로그램을 저희가 다른 병동에도 응용을 하는데 예를 들면 호스피스 병동, 저희 병원이 18년 째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만은 전인적인 접근을 하는거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일반 환자들에게까지 조금씩 확대하고 있는데 특별히 암 환우들이 너무 많이 힘들어하시니까 암 환우분들에게는 특별히 더 전인적인 접근이 큰 도움이 되는것 같아요.

◇ 조혜진 > 사실 육체의 병이 들었다고 해서 육체만 치료해서는 싹 나았다고 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 박상은 > 그렇죠. 그래서 어떨 때는 저희가 숲으로 가요. 환자분들을 모시고.. 그럼 숲으로 가서 바이올린이나 음악 하시는 분들 같이 가서 그 안에서 음악도 들으면서 같이 노래도 하면서 웃음 치료도 하면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다양 한 방법을 통해서. 환자 분들께서 꽃꽂이도 하시고 그러면서 전인적으로 회 복이 되어가는 그런 과정이죠.

◇ 조혜진 > 한마디로 오감을 다 활용해서 치유가 되는 치료과정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에는 원장님의 개인 얘기를 해볼게요.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나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의료인의 길을 걷게 되셨을까요?

◆ 박상은 > 저희 아버님이 목사님이셨는데 개척교회를 목회하시다가 교회가 부흥이 되 면 또 다른 개척교회로 옮겨다니셨거든요. 저희가 태어났던 곳도 병원이 아니고 교회 예배당 마룻바닥에서 태어났어요. 그때가 대구 동신교회에 아 버님이 개척교회에 부임을 하셨을 때였는데 사택이 없어서 예배당 단층 예 배당이었는데 거기에 커튼을 치고 거기에서 저희 9식구가 살았었어요. 사 택이 없어서 그래서 새벽기도 하러 성도들이 오시면 커튼 젖히고 잠자는 저희를 깨우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새벽기도 드리다가 성도들이 가면 커튼 치고 조금 더 잠을 자고 그랬던 시절이었는데 제가 그 마룻바닥에서 태어난 거예요.

그런데 엄마 배가 안 꺼져서 애가 태어났는데 왜 배가 안 꺼지냐 그랬더니 5분 뒤에 제 쌍둥이 동생이 태어났죠. 제 쌍둥이 동생은 지금 목사가 되어 서 장신대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이제 기독교적인 집안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은 했지만 제가 결정적으로 의사가 되려고 하게 된 것은 저희 어머님 이 심장병을 앓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 어머니 등이 업혀있으면 등 뒤에서도 쌕쌕 거리는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조금만 걸어도 숨 차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이 분들을, 이런 분들을 도와드 리면 좋겠다. 어머님을 포함해서... 근데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님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셔서 제가 어머님을 도와드리는 의사로서는 역할을 못 하게 된 거죠. 어쨌든 그래도 다른 환우분들을 어머니라 생각하고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게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 조혜진 > 아까 쌍둥이 동생분이 장신대 박상진 교수님 이시고 다른 형제분들도 목회자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 박상은 > 네, 저희 아들.. 그러니까 형제가 여섯인데요, 세 명이 목사가 되고 두 명은 의사가 되고, 한 명은 비즈니스를 하시고... 저는 돈 버는 사람이 많으면 좋 은데 아마 저희 아버님이 원하셨던 것이 영혼을 살리는 목사 셋에, 육체를 살리는 의사 둘에, 돈 버는 사람 하나. 이렇게... 저희 아버님이 원하셨던
황금 배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칠남매 아니셨나요?) 아, 저희 누님 계시 죠. 누님은 피아노 전공하셨는데 장충교회에 지금도 새벽기도 반주를 하고 계세요.

◇ 조혜진 > 남자 형제분 6명 중에 세 분은 목회자, 두 분은 의료인, 한 분은 사업가 그 다음에 누님은 피아니스트... 근데 지금 가족 구성원을 들어보니까 그 팀으로 전인 치유 사역을 해도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 박상은 > 그렇죠. 그래서 저희가 저희 아버님이 워낙 전도하시는 걸 좋아하셨는데 저희 자녀들에게 유언으로 아버지는 이제 우리나라가 전부인 줄 아셨대요. 근데 좀 땅 끝까지 가서 선교하는 삶을 살라고... 그래서 저희가 아버님 호 를 따서 ‘영파’, 영적인 파도... 그래서 ‘영파 선교회’를 만들어서 구정 때만 되 면 인도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들을 지금 17년 째 다니고 있고요. 선교사님 도 파송을 하고 가정이 하나의 선교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이런 확신을 가 지고 그런 확산, 그런 가정이 저희 가정뿐만 아니라 여러 가정이 되면 좋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파 선교회를 해오고 있습니다.

◇ 조혜진 > 굉장히 참 아름답기도 하고 부럽다, 이런 마음도 한 편으로 드는데요. 처음부터 '나는 선교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 박상은 > 그렇진 않고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의과대학을 들어가서 조금 나름 방황 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3년 동안. 좀 뭔가 늘 교회하고 집하고 학교만 다 니는 그런 어떤 생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그런 어떤 유혹이 생겨나서요. 조금 봉사서클이지만 놀기도 하는 그런 서클에 들어가서 3년을 좀 술 마 시기도 하고 춤도 추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서클은 여름에 봉사갈 때 나이 트클럽 조명장치를 트럭에 싣고 가서 밤새 교실을 클럽처럼 만들어서 술 마시면서 춤추는 서클이더라고요. 그 서클을 제가 3년 동안 다니면서 회 장도 하고 제 별명이 ‘브루스 박’이라고 불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지내다가 어떨 때는 주일날 새벽에 좀 술도 마시고 아버지 몰래 집 에 들어왔다가 주일날 교회 와서 주일 학교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그 런 이중적인 생활을 한 시기가 있었죠. 그러다가 저에게 피부병이 생겨가 지고 정말 한 1년 가까이 고생을 했는데 서 있는 자리에 주위에 비늘이 덮일 정도로 두꺼운 각질 같은 게 생기는 그런 피부병이었어요. 저희 형님 이 그때 서울의대에서 레지던트셨고 저희 모교 병원에서도 고치질 못 하더 라고요. 그래서 마스크 쓰고 다녔었는데 이렇게 인생을 살다가 죽나보다 했죠.

그런데 교회 대학교 수련회를 갔다가 아침에 말씀 묵상을 하면서 베드로가 왜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고 낙담해서 그물을 씻 고 있을 때 예수님이 와서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그러잖아요. 그럴 때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두 배가 되는 고기를 잡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 장면에서 저는 좀 이해가 안 됐어요. 제 생각은 예수님이 잡아준 그 좋은 고기들을 팔아서 십일조를 예수님께 드리고 나머지를 가지고 ‘베드로 횟집’ 을 만들든지 해서 ‘갈릴리 호수에서 나중에 멋지게 부자로 살았더라’
이렇게 돼야 할 것 같은데 베드로가 예수님 발밑에 꿇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그렇게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두려워말라 이제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를 되게 하겠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모든 걸 버려두고 예수님 쫒게 되잖아요.

◆ 박상은 >그 장면을 보면서 ‘야 정말 의과대학 들어가고 의사 되는 게 나는 나의 노 력의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하나님의 은혜고 내가 정말 교만한 사람이 었구나’ 그러면서 그 십자가 상의 주님께 정말 엎드려서 하루종일 회개기 도를 드렸는데 그러다 문득 잠이 들었는데 그 다음날 깨어나 보니까 저의 피부병이 없어진 거예요. 저는 지금도 질병에는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 의 미를 깨닫고 나면 더 이상 그 병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그 이후에 지금까지 그 병이 다시 찾아오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게
됐는데 그러고 나서 시작하게 된 모임이 ‘누가회’라는 모임이에요.
기독의사들 모임이 시작이 돼서 35년 100여 명의 가정이 선교사로 떠나고
4~5000명의 기독 의사들이 누가회에서 배출 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정결하게 하셔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저를 구원해주셨다
그런 생각을 하죠.

◇ 조혜진 > 아주그냥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원장님을 이끄셨는데요.

◆ 박상은 > 참 뒤돌아보면 너무 감사한 순간들이죠.

◇ 조혜진 > 원장님 하나님과의 만남 이후에 장기려 박사님,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님을 만나셨잖아요.

◆ 박상은 > 그래서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남들은 모교병원에 남아서 수련을 받는데 저는 뭔가 좀 정말 닮고싶은 분이 있는 병원에서 권위적인 그런 트레이닝이 아니라 그래서 장기려 박사님이 계신 당시 부산의 작은 병원 이었어요, 부산 복음 병원이라고 그 병원을 찾아가서 장기려 박사님 가까이에서 수련을 받게 됐습니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인생에 가장 탁월한 선택의 하나였다고 생각을 하고요. 장기려 박사님으로부터 배운 그것이 저의 핵심가치 이기도 하고 그걸 우리 샘병원의 핵심가치로도 표현을 했습니다마는 저는 그걸 ‘전.생.의 비전’이라고 불러요. 전인치유, 생명사랑, 의료선교..장기려 박사님이 하셨던 그 세 가지 가치 있는 삶을 제가 좀 정리해본 것이거든요. 그래서 저의 것으로 삼고 그때부터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 삶을 살자. 그래서 전인 치유는 우리 선교원을 통해서 지금 해보고 있고요. 생명 사랑은 생명 윤리 일을 통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의료 선교는 북한이나 아프리카 쪽으로 해서 해보려고 노력 하고 있습니다.

◇ 조혜진 > 특히 의료선교 위해서 아프리카미래재단을 만드셨잖아요.

◆ 박상은 > 예전에 우리나라를 찾아왔던 선교사님들 그 생각이 나는거예요. 130년 전에 조선 땅이 마치 지금의 아프리카보다 훨씬 더 열악했을 텐데 근데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이런데에서 안락한 삶을 내려놓고 선교사들이 오셨잖습니 까. 저는 야, 이제 빚을 갚을 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우리가 할수 있는 게 제한 되겠지만 어떻게든 아프리카 일을 하겠습니다. 그러고 이제 아프리카미래재단을 만들어서 아프리카의 미래가 하나님께 있고 또 젊은 아프리카의 아이들, 그들이 아프리카의 미래가 될 거라고 보고 그들을 섬기는 일을 시작하게 된 거죠. 그게 좀 커져서 지금은 아프리카의 15개 나라에 병원도 세워지고 간호대 학도 세워지고 저희가 모자보건 사업을 외교부의 지원을 받아서 여러 나라에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 조혜진 >고기를 직접 주는 것 아니라 잡는 방법도 같이 알려주시는 거네요?

◆ 박상은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이제 일반적인 의료 선교 보다는 저희는 의료교육 선교, 그래서 그들의 문제를 그들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 그래서 슈바이처 박사님이 일했던 클리닉은 지금 가 보면 황무지가 돼 있거든요. 근데 세브란스 병원 같은 경우는 우리 나라에 왔던 알렌, 에디슨 이런 선교사님들이 그냥 진료만 한 게 아니라 우리 조선의 청년들을 의사로 키웠잖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다 떠나가고 나도 이렇게 세브란스 병원이 참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거처럼 사람들을 키워야겠다. 그 생각을 하면서 저희도 의료 교육 선교 일을 하게 되었어요.

◇ 조혜진 > 의료교육선교..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의료 분야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말 귀한 사역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시기도 하잖아요. 근데 그 생명윤리라는 단어가 줄기세포나 안락사나 여러 가지 막연히는 알겠는데 무엇이 생명윤리일까....싶은 궁금증이 들더라구요.

◆ 박상은 >쉽게 말씀 드리면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그것이 생명윤리가 아닌가. 그래서 저희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작년에 생명존중선언문을 발표했어요. 우리나라 정부 차원에선 처음 발표한 건데 예를 들면 세월호. 세월호 사건도 알고 보면 평형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서 컨테이너를 집어넣고 말이죠. 가습기 살균제 사고도 보면 훨씬 더 연구할 때, 임상실험 하기 전에, 테스트 해서 문제가 많은 약을 사용하면 안 되는데 그런 그 모든 과정들이 너무 물질, 황금만능의 생명은 오히려 더 경시 되는.. 그런 현상을 보면서 야 이 생명의 존엄성을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되겠다. 그래서 그런 선언문을 만들게 됐는데..말하자면 생명윤리는 인간이면 누구나 지켜야 될 나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만큼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는 거. 저는 그게 생명 윤리의 기본이라고 봅니다.

◇ 조혜진 > 아무래도 의료인이시니까요. 의학과학 발전과 또 생명윤리 사이에서는 좀 약간 서로가 반대되는 개념, 대치되는 사이에 놓여있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 박상은 >물론 이제 의학이 요즘 특히 인공지능도 나오고 로봇이 나오고 4차산업혁 명 이야기도 나오는데 저는 그게 나쁘지 않다고 봐요. 지금까지 우리 스마 트폰도 그렇고 디지털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받 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것을 잘못 사용하게 될 때 마치 핵 같은 게 대표적 인 예인데,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그것을
엄격하게 지켜나가면 정말 우리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과학인데 그것을 막 자의적으로 오용했을 때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것을 잘 가이드라인을 만들 고, 필요하다면 법을 만들고 그래서 올바른 생명 윤리의 틀 안에서 이 생명 과학이 발전하면 정말 아름다운 과학이라고 봐요.
제가 처음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원장을 맡게 되었을 때 제가 내걸었던 슬로 건이라고 할까요? ‘생명 과학과 생명 윤리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말을 썼거 든요. 두 개가 어떤 때는 서로 싸우는 대치되는 그런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고 생명 윤리가 있기 때문에 생명 과학이 더 발전할 수 있고 생명 과학이 발전하기 때문에 생명 윤리가 더 돋보이게 되면서, 저는 두 개 가 수레바퀴에 양 바퀴처럼 같이 굴러가야 한 쪽으로 쓰러지지 않고 똑바 로 더 잘 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 조혜진 > ‘생명윤리와 생명과학의 두 축이 같이 굴러가야 된다’ 이런 말씀이시죠. ‘아름다운 동행’... 그 사이에서는 늘 갈등이 존재할 것 같아요. 몇 가지를 여쭤보자면 난치병 환자들은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서 난치병을 치유 받고싶은데 또 규제가 많이 있고 생명윤리 면에서 억제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어떻게 봐야 될까요?

◆ 박상은 >최근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두 번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기술이 크리스 퍼의 유전자 가위기술이라고 있어요. 유전자를 가위로 잘라서 일부를 떼어 낼 수 있는 기술이거든요. 유전병 중에 염색체의 문제가 생겨서 유전병이 생기잖아요. 그 유전자를 가위로 잘라내버리면 그 유전병이 치유가 되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제 인간의 욕심이 자칫 어떤 식으로 상업화가 되나면 자기가 원치않는 유전자를 잘라내버리고 원하는 유전자로 바꿔치는 것을 조금 더 멋있는 외모나 아니면 그런 거 있잖아요 성격이나 그런 것들 로 이거를 오용하는거죠. 그렇게 될 때 소위 맞춤아기라 해서 완벽한 아기 를 갖고 싶은 욕심...
이런 거에 그런 기술이 쓰여지게 되면 온 세상 사람들이 획일화가 될 수 밖에 없는 엄청난 비극이 되잖아요. 다양성이 우리 인간의 개성이고 멋인 데.. 그런 면에서 그런 아무리 좋은 기술도 올바른 목적으로만 사용이 되고 남용은 되지 않도록 어떤 틀을 만들어야 되지 않는가 그런 것들이 저는 생 명 윤리라고 봐요.

◇ 조혜진 > 원장님 일하시는 곳이 병원이잖아요. 병원은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곳인데요. 여기서 계시다보면 아무래도 죽음을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랄까? 또 많이 생각도 하시게 될 것 같고요.

◆ 박상은 >제 환자 중에 제 가운을 잡아 당기면서 '석 달만 더 살게 해달라'는 거예요. 석달 더 살면 뭐하시게요? 롯데 빌딩을 짓겠어요, 무슨 박사 학위 논문을 쓰겠어요, 그랬더니 그런 거 필요없다는 거예요. 자기는 석 달만 더 살수만 있다면 자기 가족들 하고 일상의 삶을 더 살고 싶은 거예요. 퇴근하면 아 내는 주방에서 달그닥 거리면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아이들과 마룻바닥에서 뒹굴던 일상의 삶이 너무 그리운 거죠. 임종을 맞이할 때가 되어서 비로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 늦게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죽음을 경험하면서 중요한 것이 뭘까..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 세상은 불타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남을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데 성 경책을 보니까요 영원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영존하 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변함이 없고, 마지막 한 사람, 한 사람은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가든 사람은 영원한 존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세 가지를 위해서 우리의 없어져버릴 건강과 재물과 열정 이런 것들을 쏟아붓 는 사람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 조혜진 >갑자기 생을 돌아보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원장님 뒤를 돌아보실 때 나를 왜 의사로 하나님께서 부르셨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세요?

◆ 박상은 >글쎄 뭐 저는 아까도 말씀 드린 것처럼 단칼에 아픈 사람을 수술해내는 외 과의사도 아니고 저는 특히 혈액투석하시는 환우들, 소변을 보지를 못해서 일주일에 세 차례 와서 하루 네 시간씩 피를 거르는 그런 환우들을 보면서 참 저분들의 나쁜 혈액이 저는 주님의 보혈로 씻어서 깨끗한 피가 되었으 면 좋겠다 이런 인공신장실을 ‘보혈의 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마는 그런 환자들을 마지막까지 곁에서 섬길 수 있다는 거.. 저는 그것이 의사로 부르 신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참 곁에 있어준다는 거 그것이 가장 보람인 것 같아요.

◇ 조혜진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 직전까지 원장님과 같이 있을 수 있게 된 것. 그것이 참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이신 거네요.

◆ 박상은 >해드린 것은 없지만 곁에 있어준다는 것...

◇ 조혜진 >원장님 앞으로 계획도 있으실 것 같고요. 요즘 어떤 기도 드리시나요?

◆ 박상은 >요즘 뭐 특히 북한에 미사일 소식도 들리고 워낙 참 어수선하잖아요. 근데 저는 북한을 생각하면 같은 동족으로 참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언젠가 참 우리 조국에 통일이 될 수 있다면 통일 조국의 우리 젊은이들과 함께 땅 끝 까지, 아프리카까지 함께 찾아가서 열방을 섬기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의 우리만이 아니라 남북이 하나되어서 열방을 섬기는
그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 박상은 >그 꿈이 꼭 이뤄지기를 저희도 마음을 모으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꿈이 에요. 갑자기 가슴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는 것도 같구요. 통일된 조국의 젊 은이들과 함께 아프리카 오지로 가서 의료 봉사를 하고 싶다는 꿈.
꼭 이뤄 지기를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생명윤리와 관련된
첨예한 이슈들은 계속 일어날 것 같아요. 그때마다 올바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시기를 저희가 또 기대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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