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KBS뉴스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기사 (사진=KBS뉴스 페이스북 캡처)
KBS뉴스 페이스북이 육군의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처벌 사건을 전하면서, "포르노 영화 찍냐?"라고 소개글을 달고 "우웩"이라는 댓글을 다는 등 동성애 혐오를 드러내 물의를 빚었다.
KBS뉴스 페이스북은 13일 오후 '현역 군인 30여 명 부대 안팎 동성간 성관계'라는 동영상 뉴스를 올리면서 "포르노 영화 찍냐? #언제 #어디서든 #동성 #성관계"라는 소개글을 달았다.
이후, 이 소개글은 "포르노 영화 찍냐? #언제 #어디서든 #성관계 #동성"으로 태그 순서만 바뀌었고, SNS 상에서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오자 그제야 "현역 군인 30여 명, 부대 안팎에서 동성간 성관계"라고 수정됐다.
이밖에도 KBS뉴스 페이스북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아 세상이... 좀 더 행복한 뉴스를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이해가 안갑니다.. 어리둥절", "직업군인이 많다는 점이 참... 아이고..", "우웩", "ㄷㄷㄷ" 등 다분히 혐오적인 댓글을 연달아 달았다. 한 네티즌이 "드러운 새끼들"이라고 쓴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뉴스 내용도 군 당국의 입장만 충실히 들어가 있고, 애초 비판의 대상으로 지목됐던 군대 내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 인권 침해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었다.
뉴스는 현역 군인 신분 A모 병장이 외출이나 외박 때 부대 안팎에서 동성 간 성관계와 유사 성행위를 했다고 보도하면서, 현역 군인이 동성 간 성관계를 하거나 추행을 할 경우 징역 2년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는 '군형법 92조'를 들었다.
또한 "(수사는) 인권과 개인정보를 보호한 가운데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육군은 앞으로도 동성간 성관계 등 군기강 문란행위에 대해 법과 규정에 의거, 엄중하게 처리해나갈 방침"이라는 육군 관계자의 발언만 들어갔다.
애초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소식'이 전해진 것은, 군인권센터의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군인권센터는 13일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 성향을 지닌 군인을 색출해 '추행죄'로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성 정체성만으로 수사를 개시한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자 반인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 KBS "부적절한 멘션, 댓글 사과… 특정한 의도 없어"
KBS뉴스 페이스북의 소개글 수정 내역. 페이스북에서는 수정 내역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논란이 가중되자, KBS 측은 14일 KBS뉴스 페이스북에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KBS 측은 "어제(13일) 오후 8시5분 'KBS뉴스' 페이스북 계정에 '현역 군인 30여명, 부대 안팎에서 동성간 성관계' 뉴스 리포트를 게시하며, 부적절한 멘션과 댓글을 작성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앞서 작성된 멘션과 댓글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해당 글을 작성한 담당자에 대해서는 엄중히 주의 및 경고하겠으며,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면서도 "논란이 된 글은 특정한 의도를 갖고 작성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KBS 방송강령은 '인권' 조항을 두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며 개인의 명예를 침해하지 않는다. 또한 방송이 국민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법' 제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의 5는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제6조의 9에서는 "방송은 정부 또는 특정 집단의 정책등을 공표함에 있어 의견이 다른 집단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또한 각 정치적 이해 당사자에 관한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함에 있어서도 균형성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고도 밝히고 있다.
타 언론보다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어 나갈 책임이 높은 '공영방송' KBS가 물의를 빚고도, 뒤늦게 "특정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한 것 때문에 비난 여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군인권센터, 언중위 제소 계획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14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페이스북 소개글뿐 아니라) 보도 자체도 문제가 있다. 공영방송 기자가 마치 종편스럽게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주장을 제기한 쪽과 반박한 쪽 양측의 입장을 고루 담아야 하는데, 저희 쪽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임 소장은 "편파적이고 왜곡된 기사 내용을, KBS 페이스북 멘트가 더 가중시켰다고 본다. 원 기사의 문제점이 없다면 그런 멘션이 달릴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제목과 해시태그 모두 굉장히 천박하고 모욕적인 내용으로, 담당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권센터는 오늘(14일) 내로 KBS이사회와 뉴스 관련 부서에 항의 공문을 보낼 예정이며,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계획도 밝혔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현재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다른 대선 후보들이 '차별금지법은 시기상조'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전혀 시기상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성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과 약자들이 이렇게 차별과 폭력적인 언행 때문에 매일 같이 큰 공포를 느끼며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소셜미디어에 대한 언론사의 인식 한계 드러나"
14일 오전 올라온 KBS뉴스 페이스북 사과문
이번 일이 KBS뉴스의 공식 SNS 계정에서 벌어진 일이니만큼, 언론사 차원에서 사전·사후적인 대응을 마련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 기자)는 "언론사가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인식의 지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해외 미디어에서는 오디언스(수용자) 개발 측면에서 (SNS 이용자들 역시) 적극적이고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잠재 고객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시청자, 구독자들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운영 관점과 철학을 갖고 굉장히 진지하고 수준있게 대우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독자나 서비스 외연 확장을 내세우면서도 (SNS 계정을) 상업화, 연성화하는 데 치중되어 있고, 가치와 철학도 부재한 상태"라며 "잠재 고객을 만나는 최일선 채널인 만큼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논의 테이블에 올려 보도국 중심에 놓고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특히 KBS는 공영방송인 만큼, 리드문과 댓글을 달 때 전체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이드를 만드는 사전적 정비와, 문제가 벌어졌을 때 위기관리 시스템이 신속히 작동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사후 대응 모두에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