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가 내홍에 휩싸였다. 교단이 생긴 이래 사실상 처음이다. 신도들은 5주째 주일마다 서울주교좌성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고 7월에 은퇴 예정이던 주교는 이달 4월 25일 은퇴식을 갖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2009년부터 성공회가 위탁운영해온 구리요양원과 같은 해인 2009년부터 성공회 소유의 세실빌딩에 입주한 요식업체가 논란의 중심이다.
◇ 구리요양원 운영사고에 상납 논란까지
구리요양원에서는 지난해 요양보호사에 대한 미지급 수당 3억 원을 비롯해 건강보험공단에 과다 청구된 요양급여비용의 환수 등 모두 11억 원의 재정 문제가 불거졌다.
여기에 요양원장인 박 모 신부와 이모 사무국장이 요양원에 식자재 등을 납품하는 업자로부터 정기적인 상납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 현재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김근상 주교의 직접적인 책임은 없으나 관리 감독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박 모 원장이 김근상 주교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2010년과 2012년 2014년 세 차례에 걸쳐 현금 7백만 원을 주교관 등에서 김 주교에게 건냈다고 자필 진술서를 남겼다.
◇ ‘ㄷ’ 요식업체와의 계약..아무도 모르게 10년 연장? 또 다른 논란은 성공회 소유의 세실빌딩에 입주한 ‘ㄷ’ 요식업체와 성공회의 계약 건이다. 성공회는 2009년 해당 업체와 2019년까지 10년 동안 공동경영협약을 체결하고 수익금의 49%를 배당받기로 돼 있다.
그러나 서울교구의회 자료를 보면 교구에 들어온 배당수익은 2010년 5천만 원, 2011년 6천만 원, 2012년~2014년 각각 4천만 원, 2015년에는 5천만 원 등 배당비율과 상관없는 금액이 들어왔다.
특히 30억 원이 넘는 업체의 매출액에 비해서 배당금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등의 의혹이 2015년부터 제기됐다.
결국 작년 11월 열린 교구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공동경영협약서가 제대로 이행돼 왔는지와 주변 시세보다 임대 계약이 낮은 이유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그런데 올 초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업체와의 공동경영협약이 2019년에서 2029년으로 10년 더 연장된 사실이 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서 드러난 것이다.
계약이 갱신된 시기는 2015년 3월. 하지만 지난 해 11월 교구의회에서는 이같은 계약연장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사제와 신도들 입장에서는 이면계약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 사제, 신도 “주교 사퇴해야“ 한 목소리
지난 9일 서울 주교좌성당에서 진실규명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공회 신자들.
의혹이 해소되기도 전에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제들과 신자들은 인사권자이자 교구의 대표자인 김근상 주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성직자들은 지난 2월 '김근상 주교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작년 11월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피정에서 "김 주교가 직접 돈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사과하지는 않았다"면서 김 주교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또, "상임위원회가 구리요양원에 대한 해결방안 없이 납입금(미지급수당, 부당수급 환수 등) 마련을 위해 5억원을 대출을 결정함으로써 의혹은 불신으로 변했다"면서 김근상 주교에게 서울교구장직과 관구의장직의 사임을 요구했다.
성직자에 이어 평신도들도 주교의 교구장직 사임과 함께 직·간접적으로 사건과 관련이 있는 교구 스텝과 의회를 제외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상임위원회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평신도들은 5주째 주교가 있는 주교좌성당 앞마당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주교의 진심어린 사과, 관련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성공회 계양교회 신자인 황우진 씨는 "원장 등 직접 관련자들 뿐 만 아니라 간접적인 관련자들도 있고, 그 가운데는 주교도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투명한 진상조사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가지 않으면 앞으로의 미래는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 김근상 주교 “돈 받은 적 없다” , ‘ㄷ’업체 계약연장은 건물 공사비 보전 차원
(자료사진 = 김근상 주교 )
이에 대해 김근상 주교는 인사권자이자 행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김 주교는 특히 "'성직자 피정에서 요양원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없다"면서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요식업체와의 계약기간 연장에 대해서는 2014년 당시 노후화된 건물 지하층을 ‘ㄷ’업체가 수리 개발해 사용하게 하면서, 업체가 공사비 보전을 위해 10년 계약 연장을 요구해온 것이라면서 이중계약이나, 리베이트 등의 의혹을 일축했다.
김 주교는 계약 연장 건은 재정을 담당하는 관재부장에게 일임해 자세한 계약 내용을 챙겨보지 못한 점은 인정했다.
김근상 주교는 지난 3월 사순절 사목서신을 통해 교구장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사제와 신도들의 사임권고를 받아들여 당초 7월로 예정돼 있던 퇴임시기를 후임주교 서품식인 이달 25일로 앞당기기로 했다.
◇ 서울교구 “조사활동 보장, 향후 시스템 개선할 것“
한편, 서울교구 교무국은 이경호 후임주교가 성직자와 평신도 대의원들을 각각 만난 자리에서 '구리요양원과 관련해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향후 관계자에 대한 처벌과 사제들의 연대책임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 ‘ㄷ’업체 계약과 관련한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낮게 책정된 임대료도 현실화하는 등 계약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산과 재정을 담당하는 관재부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성직자 인사시스템도 개선할 예정이다.
◇ 신자-사제 간 불신으로 이어져.. “교단 발전의 기회 되길“
그러나 신자들은 여전히 그냥 덮고 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구리요양원에 대한 상납비리는 경찰조사를 받고 있지만, 원장이 주교에게 돈을 주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내부적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상 주교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 외에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후임주교와 사제들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황우진 씨는 “후임주교가 믿고 맡겨달라고 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건 하나도 없고, 사제들도 성명서만 냈을 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제들이 사건의 내용을 신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서, 신자와 사제들 사이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9일 일부 성공회 신자들이 서울주교좌성당 마당에서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건의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근상 주교가 퇴임해서는 안된다면서 4월 퇴임을 저지하겠다는 움직임도 있어 앞으로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 지 관심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번 논란이 오히려 교단이 발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비리를 감추기 보다는 적극적인 자정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교단 규모에 비해 위탁 운영하는 사회선교기관이 너무 많다면서 재점검의 필요성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황우진 씨는 “성직자라고 하면 선교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저희는 교회보다 복지기관에 더 많은 사람과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면서 사제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주문했다.
무엇보다 모든 권력과 권한이 집중된 주교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회와 교인을 돌보는 사목과 교단의 재정, 인사, 행정의 권한이 주교에게 집중돼 있는 제도개선은 이제 후임주교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