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 몰려있는 대우조선해양이 결국 새로 도입되는 프리 패키지드 플랜(pre-packaged plan, 사전 회생계획 제도)의 1호 기업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의 열쇠를 가진 국민연금이 4월 21일 돌아오는 회사채의 상환과 출자전환 비율 및 전환가격 조정,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추가 감자(자본감축) 등을 요구했지만 산은측은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3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대우조선의 회사채 1조 3천 5백억 원 어치의 30% 가까이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17일과 18일 이틀간 5차례에 걸쳐 열리는 채권자 집회에서 정부와 산은이 제시한 ‘채무 재조정후 신규자금 투입’의 정상화 방안에 반대할 공산이 커졌다.
국민연금은 11일이나 12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최종 입장을 결정할 방침이지만 현재로선 부정적 분위기가 우세하다.
금융위원회 측은 “문제와 답이 다 나와 있는데 국민연금의 반대 분위기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연금 측은 “고통분담을 통해 지원해주더라도 대우조선해양이 과연 회생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입장이다.
대우조선해양이 끝내 회생하지 못하면 국민연금으로서는 채무재조정으로 빚을 절반 정도 탕감해줬다가 모두 떼이게 되는 상황보다는 P플랜으로 가서 빚을 탕감해주는 비율이 90%가 되더라도 10% 정도는 건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금융위는 채권자들의 자율협약 형식인 ‘채무 재조정후 신규 자금 투입’안이 채권자 집회에서 부결되는 즉시 곧바로 회생법원에 P플랜을 요청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초 정부와 산은이 마련한 대우조선 회생방안엔 일종의 법정관리인 P플랜으로 가더라도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2.9조 원의 신규자금을 공급하기로 돼 있다.
따라서 대우조선은 유동성 위기는 일단 넘길 수 있을 전망이지만 문제는 법정관리로 돌입할 경우 이미 수주한 계약들이 취소되고, 이로 인해 신규 수주도 위축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점이다. 수주 부진이 이어지면 회생은 어려워진다.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
금융위가 대우조선의 회생계획을 짜면서 수주 목표를 20억 달러(약 2조 2800억 원)로 ‘보수적’ 기준을 세워 뒀고, 이미 수주 계약이 10억 달러는 넘긴 상태여서 이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정부가 2015년 10월 대우조선에 대해 청와대 서별관회의를 통해 4조 2000억 원의 지원을 결정할 때 근거로 삼은 2016년 수주 전망이 115억 달러였지만 실제론 15억 4000만 달러에 그쳤다.
당시 이런 전망은 세계적인 조선업황 분석기관인 클락슨(Clarkson)의 분석을 기초로 했으나 유례없는 ‘수주절벽’이 도래하면서 예측은 크게 빗나갔다. 그만큼 세계 조선 및 해양 업계의 업황 전망이 힘든 상황이다.
여기다 ‘법정 관리’로 수주가 더 어려워진다면 회생 가능성도 낮아지게 된다.
NH투자증권의 유재훈 연구위원은 P플랜이 대우조선에 적용될 경우 회생가능성에 대해 “지금으로선 논평하기가 어렵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P플랜이 회생절차에 준하는 것이어서 캔슬(계약 취소)이 나올 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이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긍정적 신호들도 있다. 클락슨은 2016년을 바닥으로 대형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대형 원유운반선 등 국내 조선업체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수주 상황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부터 선박 연료의 황산화물(Sox) 함유량을 3.5%에서0.5%로 낮추도록 하는 등 환경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세계적으로 낡은 선박의 교체 수요가 기대된다.
따라서 대우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신규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형식인 P플랜에 의지해 당분간 버텨내면 ’작고 단단한 회사’로 거듭날 기회를 맞을 수도 있다.
현재로선 P플랜에 들어가더라도 수주 계약 취소가 최소화되고 신규 수주도 목표치만큼 이어지면서 세계 조선 및 해양업계의 업황이 개선되는 추세로 돌아서는 것이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최선의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