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윤창원 기자)
"막내 동생이 합동분향소에서 사진을 보고 알게 된 거에요. 저희가 세자매인데 모두 다 양승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거든요. 정말 깜짝 놀랐죠!."
기막힌 인연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큰 아들인 안주현군을 잃은 김정해(47·여)씨는 막내의 말을 듣고는 한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2014년 7월쯤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영정 사진을 보던 막내는 주현 엄마에게 "우리를 가르치셨던 그 양 선생님이 맞다"며 흐느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뭍으로 나오지 못한 미수습자 9명 가운데 한 명인 단원고 양 선생님. 알고 보니 주현 엄마가 부천여중 3학년이던 1985년, 사회 과목을 가르쳤던 스승이었다..
주현 엄마는 당시 팽목항으로 내려가 양 선생님의 '아내' 유백형(56)씨를 만났다. 유씨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상황속에서도, 어렵게 발길해준 주현 엄마를 따듯하게 보듬어 주었다고 했다.
유씨는 "모자가 제자인 경우는 흔치 않을 뿐더러 찾아와줘서 너무 고맙다. 주현 엄마가 분향소에 꽃이라도 놓아 달라"며 안타까워했다.
주현 엄마는 이후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분향소에서 양 선생님을 함께 만난다.
"꼭 선생님 먼저 뵙고 주현이를 봐요. 선생님 영정 앞에 지저분한 거 있으먄 치워드리고, 음료수 하나도 주현이 하고 똑 같이 챙겨 드리고 있어요."
◇ "체육교사 같았던 씩씩한 사회 선생님…"
안산 단원고에 남겨져 있는 미수습학생과 교사들의 책상. (사진=구민주 기자)
양 선생님은 지난 1985년 부천여중에서 처음으로 교편을 잡았다. 첫 수업 때 사회 과목을 가르친다고 소개했지만 학생들에게는 체격이 좋아 체육 선생님처럼 느껴졌다.
주현 엄마는 큰 교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졸음이 찾아올 새도 없었다고 기억했다.
"점심시간 이후라서 졸릴 만도 한데 사회 시간은 눈이 반짝반짝 했어요. 처음 부임하셔서 그런지 열정이 대단하셨던 거 같아요.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수 있는 수업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셨어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지쳐 있던 여중생들에게 양 선생님의 수업은 '활력소'였다고도 했다.
"하고 싶은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라고 하셨어요. 한 번은 춤을 잘 추는 애가 있었는데, 그 아이 춤도 보고, 공부에 지쳐있으니까 한 번씩 노는 것도 좋다고 하셨죠."
"교실 안에서 답답하게 공부만 하는 것은 싫다"고 하셨던 사회 선생님.
주현 엄마의 빛바랜 기억 속 양 선생님은 밤늦게까지 시화전을 함께 준비해 주시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참 스승으로 남아 있다.
◇ "선생님, 하늘에서도 주현이 지켜주세요"
3년만에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김씨는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뼛조각이라도 찾게 해달라고…제자의 마지막 바람"이라며 손을 모은다.
참사 전에 알아봤다면 각별한 사제의 정을 나눴을 두 사람. 주현 엄마는 아들과 옛 스승을 하늘로 보내고 나서야 알게된 이 기막힌 인연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주현 엄마는 "우리 선생님인 걸 진작 알았더라면…"이라며 두고 두고 안타까워 했다.
배안으로 바닷물이 차오르던 그 순간에도 양 선생님은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벗어 준 채 "갑판으로 나오라"고 외치면서 제자들을 구하러 다시 배 안으로 걸어 들어가 아직도 세월호에 남아 있다.
"지금도 주현이 곁에 같이 계셔주시겠지만 주현이를 지켜주지 못한 엄마로써 양 선생님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또 부탁드리고 싶어요. 선생님도 하루 빨리 꼭 가족과 제자들에게 돌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