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인공지능(AI)'이 꼽히면서 국내 ICT 업체는 손가락 까딱하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정보를 검색하거나 쇼핑까지 할 수 있는 AI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물론 통신사, 포털할 것 없이 '생활밀착형' AI 서비스를 출시하며 AI 선점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IT 강국이라 일컬어지는 우리 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AI 연구 개발에 늦게 뛰어든데다, 기술 선점에 필수인 특허 등록에서도 상당히 뒤쳐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AI 서비스가 앞다퉈 나오고 있지만 서비스도 대부분 비슷해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AI 전담조직 만들고 AI 비서·디바이스 앞다퉈 출시…배달앱까지 AI 탑재"레베카, 오늘 추천상품 알려줘, 결제까지 부탁해"성인 손바닥 한뼘 남짓한 길이의, SK텔레콤 AI 스피커 '누구(NUGU)'와의 실제 대화다. 모닝콜에 날씨 교통 정보는 물론 음식 배달에 쇼핑도 가능하다.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를 떠올리게 한다.
SK텔레콤은 이용자가 말하지 않아도 AI가 이용자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파악해 제안하는 '고객 맞춤형' 서비스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AI역량 집결을 위해 조직개편을 실시한 SK텔레콤은 '누구'를 발판으로 AI 생태계를 확장해갈 방침이다.
AI테크센터를 신설한 KT도 올해초 AI를 탑재한 셋톱박스 TV제품 '기가 지니'에 음성 및 얼굴 인식 기능을 고도화, 맞춤형 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자의 얼굴을 인식해 취향에 맞는 음악이나 영화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향후 인터넷 쇼핑, 실시간 검색 기능 등을 추가하고, 점차 금융과 부동산 등으로 영역을 확장할 예정이다.
가정용 사물인터넷(홈 IoT) 100만 가입자 확보를 눈앞에 둔 LG유플러스는 상반기내 IoT와 연계된 AI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에 AI 비서 '빅스비'를 탑재했다. 빅스비는 음성 명령뿐 아니라 화면 터치, 카메라 촬영 등 다양한 입력 방식으로 정보를 받아들일뿐더러 해당 정보의 맥락까지 이해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아가 사용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먼저 묻기도 한다.
LG전자 역시 전략폰 G6에 '스마트 닥터'라는 AI 기술을 담았다. 이는 스마트폰 상태를 기기 스스로 진단하고 해결책까지 제시해 휴대전화 고장 등으로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 하는 고객 불편함을 줄여준다.
'기술 플랫폼으로 변신'을 선언한 네이버는 AI 비서 '아미카'를 비롯, 음성 검색 네이버i, 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AI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인공신경망 번역을 도입한 자동통역 앱 '파파고'는 이미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라인과 함께 진행 중인 AI 연구 개발 프로젝트 'J'도 조만간 AI 스피커 '웨이브'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성과를 내보일 전망이다.
카카오도 연내 독자적인 AI 플랫폼 개발과 이를 적용한 서비스 및 디바이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카카오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 카카오톡, 다음 포털의 검색·뉴스 정보, 택시 호출과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모빌리티 서비스, 커머스·결제 서비스 등에 대화형 AI 서비스를 결합해 이용자 경험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다.
음식 배달 주문앱에도 AI 기술이 들어가고 있다. 국내 대표 배달앱 '배달의 민족'은 축적된 주문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화형 챗봇 '배민 데이빗'을 선보일 계획이다. 음식이나 맛, 취향 등 배달음식 주문과 관련된 표현을 학습해 이용자들이 보다 쉽게 주문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 AI 글로벌 특허 전쟁서 뒤처진 韓…서비스마저 '비슷' 음성인식률 낮아 만족도↓이처럼 최근 국내 ICT 업체들이 앞다퉈 AI 비서를 내놓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선 상당히 뒤쳐진 상태다.
애플은 지난 2011년 하반기에 음성 비서 '시리'를 아이폰4S에 탑재했다. 시리는 현재 영어, 프랑스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등 17개 언어를 지원한다.
아마존은 애플보다 3년 정도 늦게 AI 비서 '알렉사'를 선보였지만, 적극적으로 플랫폼 개방 전략을 택하면서 산업 전반에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1000개에 불과했던 알렉사 기반 대화형 앱이 약 반 년 만에 7000개로 급격히 불어났다. 아마존 제품이 아니더라도 7000개 이상 제품에서 알렉사를 이용해 음성 명령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구글 어시스턴트를 출시한 구글도 AI 스피커 '구글 홈'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이나 관련 디바이스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주요 IT 기업들은 일찌감치 AI 특허 경쟁에 뛰어들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자료를 토대로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주요국가의 특허청 AI 출원 건수를 분석한 결과 2753개를 기록한 미국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상위 10위권 내 미국 국적 출원인이 8개에 달할 정도였다. 그 뒤를 일본(122개)과 아일랜드(110개)가 멀리서 뒤쫓고 있다.
AI 특허 최다 출원 기업 역시 미국에서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무려 992건의 특허를 내며(자회사 포함 1142건) 2위인 구글(487건)과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IBM은 433건, 애플은 262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IT 강국이라 일컫는 한국의 AI 기술 수준은 미국의 69.5%에 불과하다. IITP 자체 평가 결과 한국의 AI 및 인지 컴퓨팅 기술력은 2015년 기준 미국보다 2.4년 뒤쳐졌고, 중국과도 0.8년 격차로 추월당한 상태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AI 특허 등록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관련 기술 선점과 특허장벽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기술을 선점하면 후속 주자가 뛰어들기도, 기술을 공유받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출시되는 AI 서비스 대부분이 음성 서비스에 밀집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AI 선두주자인 애플 아이폰의 시리 등 스마트폰에 접목된 기술을 중심으로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국내 ICT 업체들의 AI 서비스는 시작도 늦었지만, 선보이고 있는 AI 서비스마저 비슷해 차별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SK텔레콤의 '누구'나 KT '기가 지니'처럼 단독 기기의 경우 먼저 선보인 스마트폰 음성 비서와 서비스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제조사 역시 음성 인식의 진화를 최대 과제 중 하나로 꼽는다. 삼성전자 고동진 무선사업부장(사장)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투리로 말할 경우 어느 정도까지 인식하도록 할 거냐 하는 문제가 있다"며 "언어인식기능이 커버하는 범위를 90%까지 올리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한 바 있다.
AI 서비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기본인 음성 인식률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데다 음성 인식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기기를 직접 제어하는 기존 방식이 더 편하다는 분석이다.
IITP가 인공지능 음성비서 동향 및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18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58%가 '사용해 본 적은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한다(28%) ▲ 사용해 본 경험이 없다(7%)고 답했다. 겨우 6%만 '매우 자주 사용한다'고 답했다.
AI 비서 사용 목적도 응답자 49%가 '그냥 재미 삼아'라고 답했다. 만족도에 대해서는 37%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했다. 응답자 55%가 '정확하진 않지만 만족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