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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총재의 장탄식과 개막전 점령한 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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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토종 투수 없어요' 구본능 KBO 총재는 28일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개막 기자 간담회에서 전에 없이 목소리를 높이며 한국 야구의 위기를 지적하며 향후 발전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들려줬다.(자료사진=황진환 기자)

 

한국야구위원회(KBO) 구본능 총재는 28일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개막 관련 야구 기자단 간담회에서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주위에 앉은 몇몇 기자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작심한 듯 모든 취재진이 귀담아 듣기를 바라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발언을 쏟아냈다.

일단 구 총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부진에 대한 송구스러운 심경을 밝혔다. 구 총재는 "WBC에서 충격적인 성적으로 국민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는 운을 뗀 것일 뿐이었다.

곧바로 구 총재는 현재 KBO 리그는 물론 한국 야구 전체의 위기를 지적하고 재도약의 방법을 모색했다. 먼저 구 총재는 "투수가 없어요"라고 장탄식하며 하소연했다. KBO 리그의 젖줄인 학원 스포츠에서 올라올 재목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 총재는 "어린 선수들이 부상을 안고 오기 때문에 정작 프로에서 당장 활약하는 신인들이 적다"고 지적했다.

고교 경기가 주말리그제로 치러지다 보니 에이스급 투수들의 등판이 몰려 부상을 당한다는 것이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도 "롯데 윤성빈 등 최근 신인 투수들은 입단 뒤 먼저 1~2년은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짚은 바 있다.

때문에 구 총재는 "중고교 투수들의 투구수 제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도 최근 간담회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구 총재는 "KBO와 협회가 협력해 한국 야구 발전과 전력 강화를 위한 10년 계획을 고민하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총재의 걱정처럼 최근 KBO 리그에는 대어급 신인 투수들의 등장이 드물다. 2006년 류현진(LA 다저스)과 2007년 김광현(SK) 이후 근 10년 동안 가뭄이나 마찬가지다. 투타를 통틀어서도 순수 신인왕이 2007년 임태훈(당시 두산)이 마지막이었다. 특히 투수들은 통과의례처럼 부상 치료 등으로 입단 2년차 이후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토종 전멸' 오는 31일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개막전에는 사상 처음으로 선발 투수가 모두 외국인 선수다. 토종 에이스 1선발의 부재 상황이 읽히는 대목이다.(자료사진=각 구단)

 

토종 에이스의 끊긴 계보는 올 시즌 사상 첫 개막전 외국인 선발 투수 대진표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오는 31일 5개 구장에서 펼쳐지는 개막전에는 국내 선수 선발 투수가 단 1명도 없다. 지난해는 그래도 양현종(KIA)이 토종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올해는 헥터 노에시가 처음 등판한다.

외인들을 능가할 만한 토종 1선발감이 없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로 일찌감치 진출했고, 김광현은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다. 각 구단 감독들도 기왕이면 토종 투수를 내세우고 싶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대장정의 첫 경기 필승을 위해서 가장 강력한 투수를 개막전에 세울 수밖에 없다.

최근 세 시즌 동안 1선발들의 각축장인 다승 레이스에서는 모두 외인들이 웃었다. 2014년 앤디 밴 헤켄(넥센)이 20승, 2015년 에릭 해커(NC)가 19승, 지난해는 더스틴 니퍼트(두산)가 22승으로 다승왕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타고투저 열풍이 불어닥친 지난 3년이었다. 그만큼 토종 투수들이 버티기 힘든 시즌이었다는 뜻도 된다.

문제는 이런 수급 부족의 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해영 총장은 한국 야구계에 '선수 절벽 시대'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양 총장은 KBO와 협회가 만든 프로·아마 업무공조 TF팀장을 겸임해 중고교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인구 절벽' 현상과 국제대회 부진 등의 요인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일단 양 총장은 "그래도 현재 2~3학년들 중에서는 좋은 재목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들은 이른바 '베이징 키즈'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신화를 보고 야구를 시작한 것"이라고 전제했다. 운동 신경이 있는 재목들이 이승엽(삼성), 이대호(롯데), 류현진, 김광현 등의 활약을 보고 야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승엽(왼쪽부터), 류현진, 이대호 등 한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쿠바와 결승전을 3-2 승리로 이끌며 금메달을 확정한 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감격하며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한국 스포츠는 각 종목의 국제대회 성적에 따라 저변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양 총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좋은 자원들이 축구에 쏠린 것처럼 2008년에는 야구의 인기가 좋아 붐이 일었다"고 돌아봤다. 올해 주목받는 이정후(넥센), 최지광(삼성) 등도 '베이징 키즈'다. 물론 앞선 류현진, 김광현 등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박찬호(은퇴)의 영향을 받았을 터다.

하지만 한국 야구는 이후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된 탓도 있지만 최근 WBC 성적이 나빴다. 2006년 1회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을 거둔 한국은 2013년에 이어 올해 WBC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두 차례 아시안게임과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을 일궜지만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나서는 WBC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양 총장은 "그래서 2013년 WBC를 즈음해서 재목들이 다른 종목을 선택해 야구 유망주들이 적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걱정하는 이유다. 2002년 월드컵 세대에 밀린 상황이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출산율 감소도 한국 야구에 위기감을 안기고 있다. 양 총장은 "최근 한 자녀 가정이 대세인데 힘든 야구를 시키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서 "또 한다고 해도 주말리그 정착으로 취미처럼 하는 경우가 많아 경기력이 예전만큼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제 11회 아시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오심 속에 아쉽게 대회 2연패가 무산된 한국 대표팀. 그러나 값진 3위를 거둔 대표팀은 4년 뒤 도쿄올림픽 등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자료사진=대한야구협회)

 

70개를 돌파한 고교야구팀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전체 선수와 실력은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 총재는 "중고교 팀이 늘어난다고 좋은 게 아니다"면서 "일부 감독들은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팀 창단을 백방으로 알아본다고 하더라"고 지적했다. 위인설관이 주된 목적으로 선수 육성이 뒷전에 밀릴 수 있다는 쓴소리다.

KBO 리그는 학원 스포츠에서 선수들이 공급되지 않으면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중고교 리그의 정상화와 선수 육성,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이를 위한 저변 확대는 국제대회 성적이 크게 좌우한다. 때문에 국제대회는 비단 현재 KBO 리그의 흥행은 물론 미래의 새싹들을 불러모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단 KBO가 지금이라도 이를 위해 협회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KBO와 협회는 프로·아마 업무공조 TF팀을 만들어 ▲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 일정 연기 ▲유소년 조기 부상 방지를 위한 대책(투구수 제한, 변화구 투구 금지 등) 마련 등을 검토, 추진 중이다. KBO는 이와 함께 대표팀 전임감독제도 논의 중에 있다.

올해 프로야구는 역대 최다인 850만 관중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KBO는 WBC 부진과 조기 대선 등의 변수가 있지만 무난히 목표를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올 시즌 개막전 선발을 외인들이 점령한 현실은 분명히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화려한 외적 성장 속에 허약해져가는 한국 야구의 내실을 직시하고 다져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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