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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인두겁의 초상을 보라, 살생부 꾼들의 진면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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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경 개인전 '갈 곳 없어요2'

정치인B 160x90cm oil on cavnas 2016

 

내면 초상 표현에 대단한 솜씨를 지닌 화가 유현경이 정치인의 초상을 내걸었다. 그는 초상을 그릴 때 윤곽을 선명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낸다. 두려움, 불안, 고통, 슬픔,고독, 화남, 시기, 소외, 애절함, 연민, 따스한 온정, 기다림, 설레임, 상쾌함, 기쁨, 열망, 환희. 이러한 온갖 감정들이 유 작가의 초상 작품 마다 자유자재로 드러난다. 그가 표현한 정치인의 초상은 어떤 것일까?

서울대학교 우석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 작가의 전시 '갈 곳 없어요 2'에서 작품 '정치인 B', '정치인 C'가 등장한다. 이 두 작품은 같고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먼저 다른 점을 보자 '정치인 C'는 검은 양복 차림으로 팔장을 낀채 강한 어깨선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자신만하게, 거만하게. 반면 '정치인 B'는 어깨를 움츠리고 한 손을 진청색 양복 상의 주머니에 넣고 약간 고개를 숙인 채 힘빠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리숙한 듯, 비웃듯이. 이들의 모습이 작품 제목 대로 정치인의 초상임을 감안해 음미해보면 C형은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 B형은 유약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기대하는 정치인 상으로는 크게 미달한 느낌이다. C형은 너무 권위적이고, B형은 소신이 없어 보인다. 시민들이 원하는 정치인 상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작가는 '정치인 A'를 비워둔 것일까?

정치인C 212x120cm oil on cotton 2016

 

이 두 정치인 초상은 앞의 언급처럼 다르면서도, 찬찬히 보면 같은 점이 발견된다. 그건 '후흑(厚黑)'과 '교활(狡猾)'이다. 권위적인 C의 초상에서는 흑심을 감추고 가면을 몇개나 쓴 듯한 인상이 느껴지고, 유약한 B의 초상에서는 영혼이 없이 잔머리를 굴리는 교활한 모사꾼 인상이 겹쳐진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이 두개의 초상 작품은 정치인 풍이라기보다는 권력자형에 가깝다. 작가는 이 두 작품에서 블랙리스트, 살생부를 꾸민 이들의 진면목을 담고자 했던 건 아닐까? 국가 안보를 외치면서 분열-두 국민 정책-을 획책해온 공작정치의 달인, 법치를 내세우면서도 법망을 피해 최고권력자의 호위무사 역할을 해온 영혼 없는 공부의 달인, 문화 사랑으로 곱게 분칠하고 문화인들이 숨통을 끊은 문화 전도사. 그래서 유 작가의 정치인 초상은 권력자들의 초상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권력자 A'는 누구이며 그의 초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후흑과 교활이 합쳐진, 분칠을 더 짙게 한 모습이 아닐까. 이들이 공통점은 '모른다'에 능통하다. 한 인간의 정체성과 인격은 삶의 궤적을 제대로 기억하고, 좋은 기억을 쌓아 나가기 위해 현재의 올바른 선택과 끊임 없는 노력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자신의 지내온 행적을 부인하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인격의 파탄이다. 권력자의 지위가 높을 수록 그의 인격적 파탄은 국가의 파탄에 미치는 정도가 크다.

'후흑학'과 '교활'의 의미 파악에 한 걸음 더 들어가보자. '후흑학(厚黑學)'은 청나라 말기에 이종오가 제창한 것으로 그의 '후흑'에는 다음과 같은 3단계가 있다.
제1단계 : 철면피를 성벽과 같이, 흑심을 석탄과 같이 하라.
제2단계 : 두꺼우면서도 강하게, 검으면서도 빛나게 하라.
제3단계 :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이, 검으면서도 색채가 없게 하라.
후흑의 극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면피도 아니고 흑심도 없다(不厚不黑)."고 느끼게 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는 "후흑을 행할 때는, 표면적으로는 반드시 인의와 도덕이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 "말을 명백하게 해서는 안 되고 애매모호하게 끝내야 한다." 등과 같은 몇 개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교활(狡猾)은 '산해경'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이름으로, 어찌나 간사한지 여우를 능가할 정도이다. 교(狡)라는 놈은 모양은 개인데 온몸에 표범의 무늬가 있으며, 머리에는 쇠뿔을 달고 있다고 한다. 이놈이 나타나면 그해에는 대풍(大豊)이 든다고 하는데, 이 녀석이 워낙 간사하여 나올 듯 말 듯 애만 태우다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교의 친구로 활(猾)이라는 놈이 있는데 이놈은 교보다 더 간악하다. 이놈은 생김새는 사람 같은데 온몸에 돼지털이 숭숭 나 있으며 동굴 속에 살면서 겨울잠을 잔다. 도끼로 나무를 찍는 듯한 소리를 내는데, 이놈이 나타나면 온 천하가 대란(大亂)에 빠진다고 한다. 이처럼 교와 활은 간악하기로 유명한 동물인데, 길을 가다가 호랑이라도 만나면 몸을 똘똘 뭉쳐 조그만 공처럼 변신하여 제 발로 호랑이 입속으로 뛰어들어 내장을 마구 파먹는다. 호랑이가 그 아픔을 참지 못해 뒹굴다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걸어나와 미소를 짓는다. 여기에서 바로 그 '교활한 미소'라는 관용구가 생겨났다.

무슬림 여성 227x162cm oil on canvas 2015

 

유현경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23점을 선보인다. 작품 '지옥1', '지옥2' 에서는 소외된 자의 심경, 그리고 신체적 고통의 극한을 표현한다. 인물화 연작 시리즈 13점은 외국생활에서 만난 할아버지, 젊은 여성, 여러 부류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내면 심리를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작품 'HHHH'는 '난 널 좋아해, 아니야'라는 영문 문구가 담긴 큰 작품으로 연애하는 남녀의 심정을 가볍게 잘 드러내어 미소짓게 한다.

작품 '무슬림 여성'은 이란 여성 사형수의 애환을 담았다. 이 작품 속 여성의 화난 표정은 이보다 더 분노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여성 레이하네 자바리(26)이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를 위해 검은 옷을 입지 마세요. 내 괴로운 날들은 잊고 바람이 나를 데려가게 해주세요." 처연하다. 너무나도 의연한, 맺힘이 없는 기원이지만 그 위력은 모든 억압과 굴레를 휩쓸어버릴 듯이 강하다.

이번 전시에는 2106년 두산 갤러리 뉴욕에서의 개인전에서 대표 전시작 2점, 2016년 두산 레지던시 뉴욕에서 작업한 회화 7점, 2014년 스위스와 런던, 아르헨티나에서 작업한 초상화 18점이 출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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