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여기선 아는 대로 다 말씀하셔야 해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한창일 때 조사실 앞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온 지인과 마주친 장시호(38·구속기소)씨가 건넨 것으로 전해진 말이다. 수사 초기부터 특검 사무실에 나와 조사를 받은 장씨가 경험에서 우러난 나름의 팁(?)을 전수한 것이다.
장씨는 자신 역시 특검 수사에서 아는 것을 털어놓고 협조하면서 '도우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 조카이자 각종 이권을 노리는 과정에 가담한 '공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특검의 실체 규명에 힘을 보태 '호감' 이미지를 얻었다.
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최씨의 '외교관 인사 개입' 의혹까지 번진 미얀마 공적개발원조사업(ODA) 관련 혐의가 드러난 데는 장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장씨의 진술에 힘입어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 등에게 힘을 써주는 대가로 최씨가 'K타운 프로젝트' 사업권을 가진 회사 주식을 취득한 혐의를 잡고 소환에 불응하던 최씨의 체포영장을 발부해 조사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과 최씨, 삼성그룹을 둘러싼 뇌물 수사의 촉매제가 된 '제2 태블릿'의 존재가 특검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장씨가 최씨 집에서 옮겨 나온 짐 속의 태블릿을 기억해 내 제출한 덕분이었다.
장씨가 최씨를 압박하는 결정적 단서를 여러 차례 내놓으면서 특검팀은 설 당일인 1월 28일에도 주요 관련자 중 유일하게 장씨를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 종료 직전까지 수시로 소환했다.
자주 드나들다 보니 장씨는 특검 사무실에서 만나는 검사나 수사관 등 주변에 스스럼없이 살갑게 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등 '특별 관리'를 받았다는 일화도 널리 알려졌다.
그는 지인은 물론 일면식이 없던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을 보고 먼저 인사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구속 이후 특검 사무실에 불려 나와 조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이 부회장에게 장씨가 먼저 "부회장님"이라고 말을 걸며 인사했다는 게 주변 인물들의 전언이다.
여기에 구속 이후 만나지 못하는 어린 아들 얘기가 조사 과정에서 나오면 눈물을 짓곤 했다는 '인간적인' 면모도 알려지면서 호감 이미지에 한몫했다.
지난해 검찰 수사에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압박해 삼성전자가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천800만원을 후원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최씨,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함께 기소됐던 장씨는 특검 수사에서는 추가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