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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헌법'으로 카리스마 만들고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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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헌법의 상상력' 심용환 작가 "상상력이 삶에 뿌리내린 헌법 발전시킨다"

(사지=자료사진)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즈(미국·1916~1962)의 '사회학적 상상력'(1959)은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상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 고전으로 꼽힌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했다. 관점이 바뀌면 세상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최근 출간된 '헌법의 상상력'(지은이 심용환·펴낸곳 사계절)은 한 나라의 최고 상위법인 '헌법'을 현미경 삼아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봄으로써, 지금의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새로운 동력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헌법의 상상력'을 펴낸 작가 심용환(41)은 21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카페에서 벌인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쓰는 동안 '우리는 헌법으로 만들어진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사회는 헌법의 질서에 따라 구성된다는 말이죠. 헌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자유민주주의도 허용되잖아요. 결국 헌법은 힘 없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사회적 약자가 유일하게 강자를 컨트롤할 수 있는, 약자들의 권리보장과 다수에게 유리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틀거리가 바로 헌법이에요. 이러한 헌정 질서 덕에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부른 초법적인 강자들을 구속하고 재판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는 이 책에서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칠레 북유럽 헌법의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고, 이를 대한민국 헌법의 각 시기별 변곡점과 맞물리도록 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벌인다.

"책 속 외국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헌법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적인 경험과 역동성이 빚어내는 결과물입니다. 헌법에 그 나라의 역사가 녹아 있는 거죠. 미국의 경우 식민지 시대부터 훈련된 민주주의로 뿌리내린 고도의 평등성이 헌법에 담겨 있어요. 프랑스의 역사가 토크빌(1805~1859)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먹고 자란다'고 했잖아요. 헌법에 명시된 고도의 평등성이 현실에서 미국인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에 비해 독일은 비스마르크(독일제국 초대 총리·1815~1898) 이전 시대부터 보수파들이 '헌법에도 틈이 있다'고 항상 말해 왔어요. 비스마르크와 히틀러(1889~1945) 시대 독일은 그 헌법의 틈이 어그러진 시대였어요."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기적적일 만큼 훌륭하다"는 것이 심용환의 설명이다.

"해방 뒤 파괴적인 분위기에서 임시정부 세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배제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헌헌법은 신기할 정도로 좋습니다. 그만큼 독립운동사의 염원이 일제를 몰아내는 것에서 끝난 게 아니라, '우리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나아간 덕이죠.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좋은 제헌헌법이 나왔다고 봅니다. 6월항쟁 이후 개정된 헌법도 상당부분 좋은 내용이 눈에 띕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내용으로 따지면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그 헌법을 유지·발전시키면서 현실에서 구현해냈느냐'라는 문화의 측면으로 봤을 때 '아니'라는 거죠."

◇ "헌법, 독재정권 연장 수단으로 악용…가치 왜곡"

작가 심용환(사진=한겨레신문사 제공)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정권 아래에서 헌법은 퇴행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심용환의 분석이다. "헌법이 그들의 집권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그 가치가 왜곡됐고, 이로 인해 국민들이 헌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을 계속 해먹기 위해 개헌을 한 때가 1952년과 1954년이었어요. 1948년 정부가 수립되고 얼마 안 돼 두 번이나 개헌을 했으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헌법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습니까.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동조가 있었죠. 대통령 중심제 아래에서 장관직 등을 얻으려고 꼼수를 쓴 겁니다. 지금 정치권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최근 들어 실권을 지닌 국회의원들이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국회의원들의 장기집권을 위한 이러한 행태가 철권 통치자들에 가려져 크게 부각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헌법이 노동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관철시킬 수 있는 무기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 채 '대통령 중임제' 등 피상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갖게 됐고요."

그는 1972년 10월 유신헌법까지 만들면서 집권 연장에 대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해석을 내놨다.

"우리는 박정희를 유신시대 '철의 통치자' '절대적 카리스마'로 인식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개인의 카리스마로 정권을 유지한 이승만과는 달라요. 당대 사람들에게는 젊고 낯설게 여겨졌을 박정희가 빈약한 카리스마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헌법에 손을 대는 데서 오롯이 드러납니다. 대통령이 국무총리·국무위원 등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각 행정기관을 대통령 산하기구로 귀속시키는 식으로 헌법 구조를 대통령 중심으로 변질시키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구축해 간 겁니다. 헌법으로 제도적 카리스마를 만들어내고 키운 셈이죠."

책 '헌법의 상상력'을 통해 심용환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이러한 맥락 안에 있다. 그는 "역사에서 반복성이 강조되면 패배의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며 "개헌을 통한 권력자들의 집권 연장이 반복되는 점을 알리고,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 민주화의 흐름을 3단계로 나눕니다. 1단계로 1960년 4·19혁명을 통해 그릇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1987년 6월항쟁으로 2단계인 제도적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이제 쿠데타나 계엄령이 설자리는 사실상 없어진 거죠. 그리고 3단계로 촛불항쟁을 통해 민주주의의 질적인 성숙을 이루고 있어요. 이제 우리의 과제는 새로운 헌법 질서를 만드는 데 있다고 봐요.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뒤 시민운동의 힘이 대선 후보 단일화로 집중됐잖아요. 그 사이 개헌 논의는 당대 국민들이 무너뜨린 여당과 승리에 취한 야당이 손잡고 알아서, 정작 정권을 무너뜨린 국민들을 배제한 채 처리했어요. 촛불항쟁으로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까'보다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그러니까 '국민들이 어떤 기본권을 누릴 것인가' '어떤 복지국가를 건설할 것인가'처럼 우리네 권리,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헌법의 상상력은 우리네 생활 세계 바꾸는 강력한 힘"

책 '헌법의 상상력' 표지(왼쪽)와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 속 시민들의 모습(사진=사계절출판사·이한형 기자/노컷뉴스)

 

박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대선 국면에 접어들 경우,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위한 열망의 연장선상에서 개헌 요구가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심용환은 이에 대해 "개헌 논의는 사회권 논쟁으로 가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에게 '사회권 논쟁'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을 구했다.

"우리가 처한 심각한 곤란은 '누가 대통령이 되냐' '대통령 임기를 8년 중임으로 가냐'에 있지 않습니다. 절박한 문제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폐업이 속출하고, 대형마트에서조차 고급 아이스크림 가게가 사라진 자리에 저렴한 음료를 파는 카페가 들어온다는 데 있어요. 우리가 처한 심각성의 본질은 사회·경제적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법이 헌법 논쟁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예를 들어 대한민국 제헌헌법에는 노동자에게도 기업의 이익을 분배하는 '이익균점권'이 있어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보장돼 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잖아요. 노동자의 경제적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쟁을 통해 그것이 '헌법을 고쳐서 실현할 수 있다'고 합의 되면 개헌해야죠."

이렇듯 다수 국민의 사회권을 성취해 가는 과정은 책 '헌법의 상상력'에서 사례로 든 북유럽 헌법의 사례에 녹아 있다. 이에 대해 심용환은 "박근혜 탄핵, 이재용 구속은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 돼야 하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많은 사람들은 촛불항쟁을 두고 '정권 교체' '재벌 처벌'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어요. 광장의 열망은 그 너머 더 좋은 세상에 맞춰져 있는데 말이죠. 저는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가 박근혜·이재용 너머로 가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을 낸 이유도 더 나은 세상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결핍된 상상력의 틀을 깨고 싶은 마음에서였죠. 저 역시 기본적으로 인식의 틀이 너무 관성화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는 시기니까요."

'헌법이 우리 삶을 규정한다고 보나'라는 물음에 그는 "그렇다. 헌법의 상상력은 우리네 생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이라고 답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꾼 상상력이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촛불정국에서 최근 시민단체 토론회나 정치권 자문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런데 비극은 정치권의 경우 '대통령 만들기'에, 시민단체는 '탄핵' '처단'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을 목격했다는 데 있습니다. '상상력의 고갈 상태'라는 걱정이 들더군요. 박정희 정권 때 아이러니하게도 헌법학적으로 기본권 조항이 강화 돼요. 현실에서는 기본권을 무너뜨리고 있었으면서 말이죠. 헌법이 철저하게 사문화 되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죠."

그는 "저 역시 이 책을 쓰면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좌충우돌하면서 내린 분명한 결론은 '헌법의 탈신화'였다"고 역설했다.

"헌법을 우리 생활 세계로 끌어내려야 해요. 그것이 사문화 된 헌법을 삶의 가치로 만들어가는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헌법을 삶의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면 지금 우리가 처한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무기를 얻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우리 안의 욕망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요. 그렇게 국민들의 상상력이 커 갈수록 현실의 삶에 튼튼하게 뿌리내린 대한민국 헌법도 발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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