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예술 수업은 왜 필요한가? '노년 예술 수업'은 “잘 노는 노년의 삶과 문화는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새로운 삶을 상상하는 노년 예술 수업 현장을 찾아, 그 생생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청취하며 기록했다. 기존의 상투적인 노인복지 프로그램의 수동적인 수혜자에서 벗어나, 노년 스스로 문화 생산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는 현장을 만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생의 기쁨과 자기 긍정의 에너지로 충만한 새로운 노년을 만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년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면,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발자취를 존중하며 멋진 노년의 양식(樣式)을 만들어가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교댄스, 요가, 가요교실, 민요, 생활공예 등 공급자 중심의 각종 기능 교육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행태를 관행처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수동적인 문화 소비자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문화 생산의 주체로서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른바 에이지즘(ageism, 연령주의)에 저항하며 새로운 자아상을 연출해가는 사람들이다.
미국은퇴자협회(AARP)의 설립자인 에밀리오 파르도는 제2의 인생 설계와 준비를 위해선 단계적 이행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단순히 일에서 은퇴로의 이행이 아니라, 단계마다 새롭게 탐색-판단-계획-실행을 통해 ‘전환’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은퇴 후 제3단계로의 전환을 ‘서커스의 공중그네 타기’에 비유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왜 나는 전환을 꿈꾸는가”에 대해 자문해볼 것을 강조했다. 그 말처럼 여기, ‘공중그네 타기’와도 같은 멋진 노년의 양식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유쾌하고도 열정적인 신(新)노년을 만나보자.
[1교시 만화 수업] 만화로 쓰는 자서전
- 시니어 만화가 ‘누나쓰’가 간다
노년의 삶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스토리텔링이다. 평균 연령 73세의 만화 동아리 ‘누나쓰’는 “누구나 만화가고 누구나 스토리텔러다”라는 모토 아래, 스스로 쓰고 그리는 만화가의 꿈을 키워왔다. 그림엔 좀 서툴지 몰라도 자기 삶의 궤적을 담아내는 데는 누구보다 열심이고, 누구보다 진솔하다. 이 유쾌하고도 진지한 시니어 작가들은 영원한 주제인 남자 이야기부터 유년 시절 겪은 전쟁 이야기까지 만화 속에 켜켜이 담아낸다. 만화 자서전 그리기는 마치 타임머신 같다. 옛 기억을 끄집어내 그림으로 그려 넣기만 하면 과거가 다시 살아난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쓰라렸던 아픔이, 아련했던 추억이 하나하나 고스란히 떠오른다. 데칼코마니, 캐리커처, 스토리텔링, 캐릭터와 스토리 창조를 거쳐, 드디어 개인의 역사와 시대가 잘 겹쳐 드러나는 자서전이 완성된다. 나아가 이들은 개인 차원의 만족을 넘어 사회적인 활동까지 모색하고 있다.
[2교시 문학 수업] 시 쓰는 칠곡 할매들이 묻는다, 시가 뭐고?
- 칠곡 늘배움학교 방문기
시집 《시가 뭐고?》(2015) 출간으로 큰 화제를 모은 칠곡 늘배움학교 할매들. 평균 연령 79세, 맞춤법 띄어쓰기는 잘 몰라도 사람의 무늬를 아는 칠곡 할매들이 생애 처음 시를 쓴다. ‘시 쓰기는 삶 쓰기’임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풀뿌리 민중교육의 살아 있는 모델인 칠곡 할매들의 시에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농사일 끝내고 한밤중에 연필에 침 묻혀가며 공책에 뭐라도 몇 자 적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서 “시는 우리 할매들 마음 그대로라. 그냥 좋을 때 적으마 좋은 생각이 나온다. 내 마음에 달렸지 싶어”(본문 85쪽)라고 말한다. 배움터에 모여 함께 밥도 해 먹고, 서로 잔소리도 하고, 공부도 같이 하며 동료애를 느끼면서 마을-학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할매들의 진한 사연에 귀 기울여보자.
<시가 뭐고=""> (본문 82쪽)
-소화자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공부시간이라고
일도 놓고
허둥지둥 왔는데
시를 쓰라 하네
시가 뭐고
나는 시금치씨
배추씨만 아는데
<내 기분=""> (본문 106쪽)
-이태연
이웃집 할망구가
가방 들고 학교 잔다(간다) 놀린다
지는 이름을 못 쓰며사(쓰면서)
나는 이름도 쓸 줄 알고
버스도 안 물어보고 탄다
이 기분 니는 모르제
[3교시 무용 수업] 백년 역사 머금은 막춤, 할매는 춤춘다
- 안은미컴퍼니와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할매들의 막춤이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 유럽을 강타했다. 안은미컴퍼니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할매들이 그 주인공이다. 안은미 예술감독은 2010년부터 네 명의 무용수, 세 대의 카메라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할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춤을 권하고 그 몸짓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2011년 할머니들과 함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공연을 처음 선보인 이후, 2014년 프랑스 여름축제, 2015년 프랑스 가을축제, 2016년 프랑스 남부 7개 도시 및 스위스 4개 도시 초청공연까지 그 성취가 눈부시다. 할매들의 꾸미지 않은, 배우지 않은 동작이 춤이 되고, 주름진 몸이 만들어내는 투박한 몸짓에는 굴곡 많은 근현대사 백년의 세월이 응축되어 있다. “주름진 몸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삶이 체험한 책이었고, 춤은 대하소설 같은 역사책이 한순간에 응축해서 펼쳐지는 생명의 아름다운 리듬이었다. (…) 늘 곁에서 바라보았고 익숙한 것이라 생각했던 그들의 몸짓은 문자나 구어로 전해진 어떤 역사보다 구체적이었다.”(안은미, 본문 126쪽)
[4교시 동화구연 수업] 이야기의 힘이 살아가는 힘
- 전주 효자문화의집 북북(Book-Book) 동아리
이야기의 힘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라고 믿는, 책 읽어주는 어르신들의 모임 북북(Book-Book) 봉사단. 손주뻘인 아이들과 만나면서 격대 교육의 가능성을 찾아가고, 한편으론 동년배 노인들을 만나면서 노노케어(老老-care)의 의미를 실천해가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특히 마음이 아픈 아이가 “동화 할매 언제 와요?”라며 한껏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어르신들은 큰 보람을 느낀다고. 결국 이야기도 예술도, 우리 시대의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 아닐까.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먼저 산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끼며 다짐한다는 그들의 특별한 사연에 귀 기울여보자.
[5교시 자유 수업] 노년의 자부심으로 배우고, 도전한다
- 수원 뭐라도학교
노년에 대한 따분한 선입견일랑 비우자. 여기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스스로 실행하는 노년이 있다. ‘뭐라도 배우고, 뭐라도 나누고, 뭐라도 즐기고, 뭐라도 행하자’며 뭉친 역동적 시니어들의 베이스캠프, ‘뭐라도학교’. 왜 시니어의 활동을 시니어가 아닌 젊은 사람들이 기획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시니어가 직접 기획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뭐라도학교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시니어의 모임이면서도 학교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학교지만 동시에 일자리 문제를 고민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공중그네 타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새로운 도전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6교시 노래 수업] ‘왕언니’가 가면 길이 됩니다
- 동대문문화원 왕언니클럽
여기, 잘 노는 왕언니들이 있다. 65세 이상 여성으로 구성된 동대문문화원의 대표 동아리 ‘왕언니클럽’은 국내 최고의 실력파 실버 중창단이다. 2007년 동아리 활동을 통해 처음 결성된 후 해마다 20여 차례 국내외 공연 일정을 소화하며,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동아리이자 ‘실버 걸 그룹’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각종 방송 출연은 물론이고, 2014년부터는 해마다 한 차례씩 중국, 미국, 룩셈부르크 공연을 하는 등 활약상이 눈부시다. 춤추고 노래하면서 노년의 새로운 자아상을 형성해가는 왕언니들의 특별한 사연이 소개된다. 그들의 무한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고영직 , 안태호 지음 | 서해문집 | 272쪽 | 15,000원 조상님께>조상님께>조상님께>내>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