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새 천 일이 훌쩍 지나 3주기를 향해 가고 있다. 여전히 짙은 슬픔 속에 살아가는 유가족들이 나무를 만지는 목공을 통해 마음을 달래는 곳이 있다.
세월호 합동분향소 내에 위치한 '416희망목공소' 컨테이너 모습.
◇ 안산합동분향소에 자리 잡은 ‘416희망목공방’경기도 안산 세월호합동분향소에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목공을 배우는 ‘416희망목공방’이 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기간이 길어지면서 분향소에서 머무는 유가족들에게 소일거리가 필요했고, 이를 알게 된 안산 화정교회 박인환 목사와 교회에서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던 용인 고기교회 안홍택 목사가 힘을 합쳐 2015년 7월에 목공소를 열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예장통합총회가 컨테이너를 비롯한 각종 목공용 기계들을 지원했고, 청파감리교회가 천막비용을 후원했다. 고기교회 안홍택 목사는 “여러 곳에서 힘을 합쳐 세워진 곳인데, 진행 과정에 한 번도 잡음이 들린 적 없이 물 흐르듯이 왔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목공방은 매주 목요일마다 배움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안홍택 목사에게 목공을 배우는 1기에는 6명의 세월호 가족이 함께 했고, DIY 과정에는 10여명의 가족들이 함께 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2기에는 4명의 가족이 함께 하고 있으며, 배움 과정과 별개로 10여명의 가족들이 꾸준히 목공방을 찾고 있다.
◇ 나무를 통해 위로를 얻는 세월호 가족들세월호 참사 이후 가족을 잃은 슬픔과 충격을 회복할 겨를도 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맞서야만 했던 시간 속에서 유가족들은 수많은 상처와 소외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상황을 맞았다. 그래서 가족들은 커피와 연극, 뜨개질 등을 배우며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애쓰고 있다.
1기부터 함께하고 있다는 김병준(故 김민정 양 아버지) 씨는 “철과 달리 나무는 따뜻한 성질이기 때문에 만지면서 위로를 얻는다”며, “하다보면 잡념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병준 씨는 요즘 노란 리본도 직접 깎아 독서대, 장식품 등의 소모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김병준(故 김민정 양 아버지) 씨가 직접 깎아서 만든 목공품.
이처럼 목공이 집중력을 높이는 활동이라 시작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모든 유가족들이 공통적으로 말했다. 세밀하게 기계를 다루며 작품을 완성해가기 위해 몰입해야만 하는 목공은 가족들이 잠시라도 현실의 문제에서 자유롭도록 도와주고 있다.
안홍택 목사는 “세월호는 진실 규명과 인양 수습까지 뭘 해도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다”며, “그런데 목공은 만든 그대로 결과물이 나오니까 가족들이 거기에 위로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당연한 이치가 세월호 가족들에겐 낯설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목공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안홍택 목사(가운데)와 가족들 모습.
또, 목공방 자체가 유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이 된다는 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주 목공방을 찾고 있는 김춘자(故 정동수 군 어머니) 씨는 “집에 있으면 그냥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아들 잃은 어미라 사람들 앞에서는 웃지도 못하는데, 이곳에 오면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최경덕(故 최성호 군 아버지) 씨도 “진상규명이라는 과제에 도달하고 싶어 조바심을 냈다가 2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로 많이 지치고 분향소에 나오는 것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며, “목공을 핑계 삼아 다시 가족들 옆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 지역민과 소통하며 희망을 노래하는 목공방지금까지 세월호 가족들이 만든 목공품들은 개인적으로 봉사자들에게 선물하거나, 세월호 문화장터에서 판매해 수익금으로 안산시내 3개동 지역아동센터를 도왔다. 이처럼 목공방은 지역의 이웃들을 도우며 지역민들과의 소통에 힘쓰고 있다.
‘416희망목공방’은 앞으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직장 생활을 유지 할 수 없는 가족들의 경제활동을 돕고,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목공품들을 보급하기 위해 가족들이 뜻을 같이했다.
416 희망목공방은 사회적기업으로 발전해나갈 계획이다.
목공방의 총무를 맡고 있는 이재복(故 이수연 양 아버지) 씨는 “목공방을 통해 지역민과 계속해서 소통하면서 세월호 추모공원의 평화로운 조성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시민들과의 원활한 협의를 통해 세월호를 기억하며 안전에 대한 경각심도 느낄 수 있는 추모공원의 조성을 바라고 있다.
◇ 그저 옆에 있어주는 교회고기교회 안홍택 목사는 지역민들을 위한 목공방을 운영하다가 세월호 가족들의 부탁을 받고나서는 2년 가까이 목공방을 찾고 있다. 안 목사는 “이 시대에 가장 고통 받는 분들이 세월호 가족들”이라며, “어떻게 하면 가족들의 옆에 있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참에 가지고 있는 기술을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경덕(故 최성호 군 아버지) 씨는 “참사 이후 초기에는 마음이 급하고 가슴에 차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이런 활동에 대한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며, “그런데 그저 긴 시간을 가야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목공과 같은 활동을 통해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또 “교회가 세월호 가족들을 크게 이끌고 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며, “그저 옆에서 조금만 거들어주고, 힘을 북돋아주는 역할만 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는 교회로부터 다시 ‘희망’의 빛이 깃들기를 기대해본다.